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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ㆍ담]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진보 프레임 벗고 더 현실주의로 가야”

입력
2018.06.21 20:00
수정
2018.06.21 20:2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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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전 노사정위원장

김대환 전 노사정위원장은 2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특정 이익집단의 조직이기주의에 흔들리지 말고 국민에 직접 호소해 힘차게 나아가는 개혁다운 개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김대환 전 노사정위원장은 2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특정 이익집단의 조직이기주의에 흔들리지 말고 국민에 직접 호소해 힘차게 나아가는 개혁다운 개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6ㆍ13 지방선거의 여당 압승은 야당의 지리멸렬 덕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그대로 보여준다. 정부ㆍ여당은 다음 총선까지 적어도 2년 간 여러 정책들을 더 힘있게 추진해갈 동력을 얻었다. 그러나 이 같은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정책 실행도, 향후 이해 조정도 쉽지 않을 분야가 있다. 바로 ‘노동’이다.

지방선거 기간 민주노총이 여당 지도부가 나타나는 유세 현장 곳곳을 따라다니며 항의 시위를한 것은 상징적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등 노동 현안을 두고 “노동자의 존엄, 노동의 가치를 세우겠다”고 약속한 정부가 노동자에게 욕을 먹고 있다. 반대로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큰 폭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시간 단축하느냐는 경영자 쪽 불만도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 박근혜 정부에서 노사정위원장을 지낸 김대환(69) 인하대 명예교수를 21일 서울 방배동 개인사무실에서 만나 노동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좋을지 들었다.

-최저임금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상폭이 커서 영세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 부담이 가중되고, 부득이 인력을 줄이는 바람에 노동자들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인상 폭과 속도다. 올해 16.4%가 과도하다는 것은 그 상당 부분을 재정으로 보전하기로 한 정부 스스로가 인정한 셈이다. 대선 공약에 따라 2020년까지 1만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속도에서도 문제가 있다. 저임금 근로자를 지원하는 취지는 좋으나 경제적 충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 충격이라면 고용 감소 말인가. 고용 감소를 오로지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아닌가.

“우선 고용주, 특히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부담이 된다. 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폐업이나 고용 감축을 택한다면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의 고용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최근 주변에서 왕왕 목도하는 현실이다. 6개월 이상 지나야 의미 있는 분석이 가능하므로, 고용 감소를 오로지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거나 최저임금은 쏙 빼고 다른 요인만 둘러대는 것은 실없는 논쟁이다. 하지만 경제행위는 예측 가능하다. 특히 최저임금은 이번 한 번 인상에 그치지 않고 향후 2년 동안 대폭 인상이 예정돼 있다. 종전처럼 숨고르기를 바라며 버티기 보다 그런 미래 상황에 대비해 사용자들이 예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종업원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여의치 않으면 폐업을 택할 것이다. 임금상승 효과에 상응하는 생산성 증대가 없으면 고용과 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은 과거에도 큰 폭으로 오른 적이 있지만 고용에 크게 영향이 없었던 것은 전후 숨고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KDI 보고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최저임금 부작용에 대한 재정 지원은 얼마나 효과적일까.

“당장 고용 감축을 제어하는 효과는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하지 않다. 재정 지원은 한시적이어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데 그 지원이 끝나는 시점에 고용주 부담이 한꺼번에 가중된다. 재정 지원으로 겉과 끝만 맞추려 하지 말고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이미 국회도 지난번 추경을 통과시키면서 다른 방법을 강구하라고 정부에 권고한 상태다. 최저임금 결정은 노-사-공익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의 자율에 맡겨 속도 조절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정 지원으로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을 견인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한다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저임금, 임금격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근로장려세제(EITC) 확충을 통해 저임금 가구를 지원하는 방식을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다. 재정은 최저임금 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소요되겠지만 이를 점진적으로 늘려나가야 한다. 정확한 실태 파악이 선행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임금 격차 문제는 더 담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 없이 대기업, 중소기업과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중첩된 격차 문제 해결은 백년하청(百年河淸)으로 보인다.”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으로 노동계가 일제히 최저임금위원회 대화 거부를 선언했다. 최저임금법 개정을 너무 서두른 것 아닐까.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익집단 눈치보기에 이골이 난 국회에서도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을 텐데 이 문제를 오래 고민해온 의원들이 사명감을 발휘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한다. 최임위로 다시 가봐야 결론이 안 날 게 뻔하지 않은가. 결정을 서두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늦었다는 생각이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놓고 난 다음에 상여금 등을 포함하는 산입범위 조정을 한 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다. 그러니 노동계에서 ‘꼼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왕 할 바엔 당당하게 산입범위 조정부터 하고 그에 기초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옳았다. 물론 시간 제약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식견과 의지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복리후생 목적이라 해도 근로자에게 개별적ㆍ정기적으로 제공되는 현금과 현물도 포함해 이를 바탕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여당에서는 최저임금과 유사한 형태로 통상임금을 조정해 법제화하자고 나섰다.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이미 대법원에서 판결로 통상임금의 기준을 제시했다. 최저임금과 통상임금의 기준을 맞춰 가는 게 맞다. 복수의 판례에서 상충되는 부분도 있고 모호한 부분도 있지만 거듭된 노사정 논의의 결과물인 2015년 ‘9ㆍ15 사회적 대타협’에서 정리됐다고 본다. 그 범위 안에서 구체적으로 입법을 하자는 것이 당시 노사정 합의였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논리로 최저임금 인상에 의욕을 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소득주도성장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와 국제노동기구(ILO)가 각각 2010, 2012년에 제시한 임금주도성장론을 원용해서 확대한 것이다. 내수를 진작해 성장으로 연결시킨다는 발상이 배경에 있다. UNCTAD 보고서에서 전범(典範)으로 삼은 시기가 자본주의 황금기라는 1950년부터 1차 오일쇼크 전까지 20여 년이다. 이때는 기업의 활발한 투자가 성장을 이끌었고 그와 함께 복지 확대와 임금 상승이 내수를 키워 성장을 가속화시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임금 상승이 성장을 견인했다기보다 성장이 임금 상승을 낳은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허구라는 말인가.

“용어 자체가 순환모순이다. 앞서 언급한 두 국제기구의 보고서에서도 ‘소득 주도’라는 용어는 찾아볼 수 없다. 이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임금에 더하여 자영업 소득이 늘어나면 이들 저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소비가 증대되어 성장에 기여한다는 정도이지 실제 ‘주도’는 아니다. 정책적으로는 이들의 소득을 늘려주는 (재)분배의 논리가 나오는데, 실제 내용에 군살을 붙여 몇 배나 크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패션으로 만들어 혼동을 초래하고 있다.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늘어난 취약계층의 소득이 내수성장에 기여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계부채, 글로벌경제 등으로 제한적이며 더구나 내적으로 상충되기도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이나 생계형 자영업자 등 다른 취약계층에 타격을 주고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장은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는가.

“성장의 견인차는 기업이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기업 투자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주면서 그 힘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나갈 때 지속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중요하다. 규제 풀라고 하면 사용자 논리라는 인식이 있는데 ‘합리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안전 분야는 강화하고 다른 것은 풀어주는 게 기본 방향이다. 산업 합리화 이야기가 진영 논리로 비치는 것도 잘못이다. 규제 개혁을 말하면 보수고 분배나 복지 이야기하면 진보라는 건 진부한 얘기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노선이 달라도 상대 정당의 정책을 서로 공유한지 오래다.“

-7월부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드는데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근로시간 단축도 오래된 숙제로 이미 2015년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4단계 시행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럼에도 사용자들이나 근로자들이 준비 않고 있다 덜컥 법이 통과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 됐다. 어쨌든 되돌려서도 안 되고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니 충격을 분산시킬 고민을 함께 해야 한다. 결국 경제주체 모두가 고통 분담 각오를 해야 한다. 사용자는 여력이 닿는 한 고용을 늘리는데 적극적이어야 하고, 근로자들은 일정 부분 임금 감소를 감내하고, 노사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가격 상승이나 다소의 불편은 소비자들이 감당해야 하고 정부는 연착륙을 위해 가능한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해 이제부터는 정책 실패를 누구 탓으로 돌릴 수도 없게 됐다. 정부ㆍ여당이 앞으로 노동정책을 어떻게 펴가야 할까.

“진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자가 되기를 바란다.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특정 이익집단의 조직이기주의에 흔들리지 말고 국민에 직접 호소해 힘차게 나아가는 개혁다운 개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지형으로 봐도 여당의 집권이 이번 한 차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으니 좀 더 넓게 멀리 보고 무엇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에 심혈을 기울여주기를 당부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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