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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러 스미스 “번역 따른 차이는 정상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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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러 스미스 “번역 따른 차이는 정상적인 것"

입력
2018.01.15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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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공동수상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국내에서 제기된 오역 논란에 대해 "번역 따른 차이는 정상적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016년 방한해 기자회견을 연 스미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공동수상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국내에서 제기된 오역 논란에 대해 "번역 따른 차이는 정상적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016년 방한해 기자회견을 연 스미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가 번역한 영역본 ‘채식주의자’가 한국어 원작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말하는 건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전적으로 옳다. 문자 그대로 옮긴 번역 같은 것이 완전히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6년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공동수상한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가 국내에서 제기된 오역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19~22일 서울과 강원 평창군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 계기 국제인문포럼(국제인문포럼)에 참석하는 스미스는 발제문 ‘번역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에서 “(번역에 있어서) 차이, 변화, 해석은 완벽하게 정상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충실함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우선 한국어와 영어 사이 단어와 문법이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가 없으며, 구두점조차도 서로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건 모호함과 반복성, 평범한 산문체로 이루어진 언어에서 정확성, 간결성, 서정성이 선호되는 언어로 옮기는 작업을 포함한다”는 설명이다. 스미스는 “(한강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갖는 의미는 언어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것을 번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기준언어(한국어)의 관습들이 그대로 대상언어(영어)로 옮겨진다면, 그것은 작가의 독특한 표현이나 훨씬 더 나쁜 경우, 나쁜 글쓰기 방식으로 오인되기 십상”이라고 덧붙였다.

스미스의 영역본 ‘채식주의자’는 맨부커상 수상 후 여러 차례 오역 시비에 시달렸다. 일부 단어가 번역 생략되고, 원본에는 없는 영어 문장이 생기기도 했다는 지적이다. 정과리(연세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지난해 1월 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발제문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가능한가?’에서 ‘채식주의자’ 첫 문단을 비교하며 남편이 아내 영혜의 외모에서 평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원문에는 없는 두 문장 ‘told me all I needed to know’ ‘I couldn’t help but notice her shoes’를 집어넣었고, 그 결과 ‘평범하던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고 특별한 사람이 됐다’는 원작의 취지가 ‘영혜는 특별할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조재룡(고려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더 나아가 문학동네 2017년 봄호 ‘번역의 무엇으로 승리하는가’에서 “한국어를 번역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문장의 생략된 주어 찾기에서 스미스는 번번이 실수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어 문법, 통사, 구문, 어휘 등에 대한 장악력에 신경쓰기보다 원문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 맞도록 낱말을 배치하는데 집중해 없는 문장을 덧붙이는 등 창조적 변용을 가했다는 것이다. 한국적 가부장제에 짓눌린 수동적이고 몽환적인 원작 캐릭터 영혜를 번역에서 능동적이고 이성적인 여성으로 그리는 등 원작과 다른 ‘리라이팅’ 수준의 번역이 나왔다는 평가다.

스미스는 “번역 규범이 나라마다, 맥락에 따라 얼마나 많이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개개인의 접근법을 어떻게 다르게 형성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는, 그저 단순히 지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차이점을 향해 가는 일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의 시적(詩的)인 문체를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특유의 스타일이 훼손됐다는 지적에 대해 스미스는 “과도하게 수사적인 영어 문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독자와 비평가는 번역본 문체가 ‘미묘하고(인디펜던트)’, ‘정확한 동시에 군더더기 없으며(아이리쉬 타임즈)’, ‘뼈대만 남긴(뉴 스테이츠먼)’ 문체라고 묘사했다. 동시에 그 시적인 특성도 언급되었다”고 반박했다. 스미스는 일부 비판과 정반대로 “어떤 이들은 제 번역이 시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문체의 원작을 지나치게 시적으로 변형시켰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작가 스타일을 영어로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는 지적은 “견해차이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없는 문장을 넣고, 원문 일부를 빼거나, 원문에서 생략한 주어를 다른 주어로 바꿨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제 제가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지 4년이 되었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는 7년 정도 되었다”며 “그 당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일부 실수를 인정했다. 그러나 “만약 제가 그 불가능한 완전무결함에 더 근접했다고 하더라도, 비평가들은 그 원작 자체에 좀 더 천착”했을 것이라며 “(한강 작가는) 제 번역을 읽었고 제 번역이 그녀의 글쓰기가 가진 고유의 톤을 포착하고 있음을 가장 좋아한다는 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지속적으로 할애해왔다”고 강조했다.

서울대와 코엑스, 평창 한화리조트 일대에서 열리는 국제인문포럼은 ‘세계의 젊은 작가들, 평창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다’를 주제로 국내외 문인 200여명이 참석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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