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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칼럼] 명예혁명 갈 길이 멀다

입력
2016.12.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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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촛불시위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자랑스러운 역사를 썼다. 국민이 나서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막고 민주주의 질서를 지켰다. 국민이 나라 곳곳에 모여 촛불을 밝혀 주권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것은 물론 정경유착 비리까지 저지른 정권을 규탄했다. 그리하여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를 이끌었다. 평화시위가 권력의 폭력을 이겨낸 명예혁명이다. 그렇다면 이번 명예혁명이 나라를 올바르게 바꿀 것인가. 한마디로 갈 길이 멀다. 이제 새로운 변화를 시작했을 뿐이다. 자칫하면 사회갈등과 분열로 무위로 끝날 수도 있다. 이번 명예혁명은 성공해야 한다. 실패하면 나라의 불행이고 역사의 후퇴이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 여부가 관건이다. 헌재는 국회가 제시한 탄핵소추 사유를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 대통령의 권한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의 유형으로 정리하고 본격심리에 들어갔다. 대통령 변호인 측은 5가지 유형 모두 탄핵사유가 아니라는 반론을 강력하게 펴고 있다. 법리 다툼이 치열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자 탄핵찬성 측과 탄핵반대 측의 갈등이 크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탄핵찬성 측은 진보, 탄핵반대 측은 보수로 나뉘어 이분법적으로 분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명예혁명은 길을 잃는다.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보수나 진보의 가치와 관계없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헌재는 법적 기준에 따라 엄정한 심판을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국민은 헌재의 결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경유착을 척결하지 않으면 명예혁명은 의미를 잃는다. 정경유착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결탁하여 나라를 부당하게 지배하며 부정부패를 마음대로 저지르는 불법공생체제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정경유착은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끊임없이 진화했다. 이승만 정권의 중석불 사건, 박정희 정권의 4대 의혹 사건, 전두환 정권의 일해재단 사건, 노태우 정권의 율곡비리 사건,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 게이트, 김대중 정권의 이용호-진승현 게이트, 노무현 정권의 박연차 사건, 이명박 정권의 저축은행 사건 등 수 없는 사건들이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경제와 사회를 파괴했다. 박근혜 정권의 최순실 사태는 정경유착의 흑역사를 다시 이었다. 기업의 자금은 주주들의 것이다.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이사회나 주주총회 승인 없이 특정재단에 출연한 것은 배임이나 횡령이다. 기업들이 대가 없이 기금을 출연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설령 불이익이 두려워 출연했다 해도 포괄적인 뇌물죄에 속한다. 특검의 역할이 중요하다. 철저한 수사를 벌여 비리의 실체를 밝히고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경유착 비리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나라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이다. 대통령이 중앙집중화한 권력을 갖고 있어 얼마든지 국정을 농단하고 비리를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정파 간에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대선후보 측은 개헌에 소극적이다. 대선후보 지지율이 낮은 측과 개헌을 정권연장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측은 적극적이다. 자칫하면 개헌이 순수성을 잃어 나라를 다시 정치적 희생물로 만들 수 있다. 개헌은 국민의 뜻을 모아 국가발전의 대계로 추진해야 한다. 과거 대통령들이 정경유착에 연루되어 예외 없이 불행한 말로를 맞았다. 이를 막기 위해 개헌을 차기 대통령 선거 전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 여건상 올바른 개헌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차기 정권에서 개헌을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명예혁명을 완성하려면 국민은 촛불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국민주권회복, 정경유착단절, 헌법개정 등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일에 순수열망을 모아 평화적인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번 촛불 시위는 뚜렷한 지도부가 없다. 폭력도 없다. 국민 스스로 거리로 뛰어나와 명예혁명의 대장정을 연 것이다. 이 엄청난 역사의 변화를 중간에 멈추면 안 된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ㆍ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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