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이정모 칼럼]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입력
2017.11.14 14:12
29면
0 0

멸치 아가씨와 오징어 총각이 사랑에 빠졌다. 둘이 결혼을 하려고 양가를 번갈아 방문했다. 오징어 집안에서는 “멸치가 체구는 작아도 뼈대는 있는 집안이니 그 집 규수를 한번 얻어 봅시다.”라며 환영했다. 그런데 멸치 집안에서는 “예로부터 뼈대 없는 집안 사람들은 지조가 없어요”라며 반대했다. 거절당한 오징어 집안은 그래도 자신들은 먹 글씨 쓸 먹통도 있는 선비 집안이라며 애써 멸치 집안을 무시한다. 소설가 한승원의 동화 ‘뼈대 있는 집안, 뼈대 없는 집안’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는 오징어보다는 멸치에 가까운 존재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나뉘는 척추동물은 모두 뼈대가 있는 집안이다. 우리가 쉽게 접한 동물들이 대개 뼈대가 있는 동물이다 보니 뼈대가 있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뼈대가 있는 동물은 절대 소수다. 전체 동물의 3퍼센트에 불과하다. 우리는 동물계의 소수자인 것이다. 전체 동물 종수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곤충도 당연히 뼈대가 없는 동물이다. 그런데 소수자인 뼈대 있는 동물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까?

뼈대가 없는 동물들 가운데 상당수는 뼈대 대신 단단한 껍질이 있다. 이것을 외골격이라고 한다. 게나 가재의 껍질을 생각하면 된다. 곤충도 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정도의 외골격을 가지고 있다. 뼈라기보다는 피부의 일종이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몸을 다치지 않고 보호하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외골격은 한 번 형성되면 성장하거나 바꿀 수 없다. 몸을 키우려면 탈피를 해서 외골격을 바꿔야 하는데, 허물을 벗는 동안 외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게다가 외골격 동물들은 굉장히 굼뜨고 크기에도 한계가 있다. 개미는 자기 무게의 여섯 배를 들어 올릴 수 있고 벼룩은 자기 키의 100배 이상을 뛰어오를 수 있지만 크기가 커지면 외골격이 자기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아무리 큰 곤충이라고 하더라도 손바닥 크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뼈대 있는 동물들의 태곳적 조상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다. 어차피 모두 작은 동물이었다. 이때 단단한 껍질이 있는 동물들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뼈대 있는 동물의 장점은 크기가 커지고 나서야 드러났다. 뼈대는 근육으로 움직이는데 근육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이 없으니 발달할 여지가 충분하다. 서로 마디로 연결되는 외골격과 달리 근육과 힘줄로 연결되어 운동성이 뛰어나다. 게다가 촉각이 발달한 피부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세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먹물 통이 있는 오징어 집안이 아니라 뼈대 있는 멸치와 가까운 집안이라는 것은 다행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고 하지 않던가. 외골격 동물에게도 배우고 따라할 것이 많은 법이다. 요즘에는 무척추동물의 외골격을 본 딴 일종의 로봇 시스템인 엑소스켈레톤(‘외골격’이란 뜻)이 각광받고 있다. 몸에 걸치는 장비로 특수한 환경에서 착용자를 보호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한다.

항상 그렇듯이 시작은 군사적인 용도였다. 러시아의 라트니크 3와 미국의 탈로스 슈트가 대표적이다. 병사의 군장 무게를 줄이는 대신 외골격 장치를 착용하게 함으로써 힘을 더해줘서 많은 장비를 지탱하고 더 빨리 더 오래 더 강력하게 활동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과학과 기술이 군사적인 용도로 출발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대부분 일상생활용으로 개발된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체장애자나 노인의 운동을 보조하는 장치로 개발된 일본의 할(HAL)은 장착자가 본래 가질 수 있는 무게의 다섯 배의 중량을 지탱할 수 있는 성능이 있다. 한양대학에서 개발하여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헥사(HEXAR)는 근력을 10배 이상 증폭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외골격 장치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줄 것이다. 장애와 노화로 생긴 동작의 불편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이고 여성이 진출할 수 없던 노동의 장벽을 철폐할 것이다. 실제로 BMW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상체 외골격 장치를 장착하고 일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의도대로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이때 필요한 힘은 자신의 근육이 아니라 외골격 장치에서 온다.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산업재해의 위험이 줄어든다. 여성 노동자들이 근력의 한계를 벗어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뼈대 있는 동물인 사람이 스스로 뼈대 없는 동물을 따라하고 있는 셈이다.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우리의 커다란 두뇌. 그런데 정작 뇌를 지탱하고 있는 뼈대는 뇌 안에 없고 뇌 바깥에서 감싸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뇌는 외골격 시스템을 갖추고 있던 셈이다.

멸치 아가씨의 부모님은 뼈대 없는 오징어 집안을 지조가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일제에 투항하고 독재에 봉사했던 이들은 누구였던가. 대략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칭송받던 이들 아니었던가.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너무 자랑하지 마시라. 그리고 뼈대 있는 우리는 모두 생태계의 절대 소수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