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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경칩의 천둥소리

입력
2018.03.07 14: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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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은 연중 세 번째 절기인 경칩(驚蟄)이었다. 놀랄‘경’에 겨울잠 자는 벌레‘칩’자를 썼으니, ‘겨울잠 자던 벌레(뱀 등)들이 놀라 깨어난다’는 뜻 정도일 것이다. 예로부터 초목에 새싹이 돋아나는 때라고 했는데, 꼭 그 말대로 아파트 단지 목련나무 가지에 솜털 고운 꽃망울이 처음 눈에 띈 게 그 하루 전이었다. 하기야 지구의 날씨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태양이고, 24절기도 따져보면 연간 태양의 조사(照射)각과 시간의 패턴을 24등분한 것이니, 절기가 신통하게 계절의 추이와 맞아 떨어지는 건 당연할 것이다.

▦ 꽃망울도 꽃망울이지만,대체 벌레들이 무엇에 놀라 깨어난다는 얘긴가 싶어 유래를 찾아봤다. 포털의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옛사람들은 이 무렵에 (그 해의)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요컨대 벌레들을 놀래는 건 겨울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하고 봄비를 부르는 기압골이 오가면서 이따금 천지를 울리기 시작하는 천둥소리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목련 꽃망울 돋기 전 보슬비 내리던 밤, 어디선가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들린 듯도 하다.

▦ 어쩌면 올해 경칩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천둥이 내리쳤던 셈 아닌가 싶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에 대한 김지은 정무비서의 고발 얘기다. 김 비서관의 고발은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본격화한 국내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운동’의 기운 찬 분수령이 됐다. 그 동안 미투 운동은 검찰 조직문화의 낙후된 일면을 꼬집은 데 이어, 문화계와 대학의 가공할 성폭력 실상을 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갔다. 김 비서관의 고발은 더 나아가 권력의 정점인 정치권 성폭력의 뇌관을 터트린 셈이 됐다.

▦ 미투 운동은 이제 개인의 범죄에 대한 고발 차원을 넘어서게 됐다. 그건 거창한 나랏일이나 고매한 예술, 심오한 학문 한답시고 권위와 권력을 얻게 되자 뭔가 자신은 특별하고, 특별한 만큼 여성의 의사에 반해 성적인 행위를 해도 상대로부터 용납되지 않을까 하는, 오래되고 아둔한 착각을 일깨우는 일대 경종이 되고 있다. 아울러 미디어에 비친 가공의 이미지와 얄팍한 세평을 좇아 무슨 ‘잠룡’이니 ‘대가’니 하며 죽 끓듯이 우상을 떠받들고 추종해온 우리 모두를 향한 고함이기도 할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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