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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환
선임기자

등록 : 2014.07.06 18:12
수정 : 2014.07.07 07:10

붓 대신 쇳가루로 그린 풍경들

등록 : 2014.07.06 18:12
수정 : 2014.07.07 07:10

김종구 '형태를 잃어버렸어요…' 展

"다음엔 탱크 갈아 삽 만들고 싶다"

'하얀 공간', 쇳가루로 쓴 글씨를 바닥에서 수평으로 찍은 영상이 벽에 명상적 풍경을 그려 낸다. 김종영미술관 제공

가로 980㎝ 세로 270㎝의 대작 ‘쇳가루 6000자 독백’. 가변설치. 쇳가루, 광목, PV접착제, 2014. 김종영미술관 제공

나무나 돌을 깎듯 무거운 쇳덩어리를 갈아서 인간 같이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온 작가 김종구는 1997년 영국의 한 도시에서 야외 전시 중 작품을 도난 당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온 작업실에는 통쇠를 갈 때 나온 쇳가루만 수북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쇳가루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쓸어모은 쇳가루를 조금씩 솔솔 뿌려서 글을 쓴 다음 바닥에 설치한 폐쇄회로(CC) TV 카메라로 쇳가루 글의 단면을 찍었더니 수묵 산수화 같은 신기한 풍경이 나타났다. 쇳가루가 많이 쌓인 곳은 높게, 조금 쌓인 곳은 얕게 굴곡을 이루면서 바다에 점점이 뜬 섬이나 운해에 가린 높은 산의 연봉 같은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종구 개인전 ‘형태를 잃어버렸어요_쇳가루 산수화’는 쇳가루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글과 이미지를 조합해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쇳가루로 쓴 6,000자 독백, 폭 9m가 넘는 캔버스 전체를 쇳가루로 덮고 녹슬게 해서 완성한 대작 4점은 크기만으로도 압도적이다. 대형 쇳가루 캔버스에 쓰인 쇳가루 무게는 300㎏이나 된다. 쇳가루 캔버스로 벽을 세워서 만든 방에 쇳가루 산수화를 설치한 작품도 볼 수 있다.

그는 쇳가루로 글씨를 쓰기 시작한 뒤로 ‘전직 조각가’를 자처하고 있지만 조각을 포기한 건 아니다. 전시장 첫머리에 놓인 모니터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을 소개하고 있는데 전에 쓰던 통쇠보다 더 큰 통쇠를 갈아서 작품을 만들 계획이다. 탱크를 갈아서 삽을 만들고 싶다는데 탱크 구하는 게 쉽지 않겠다. 2000년 홍대 앞 쌈지 스페이스 전시 당시 그는 전시장 내 작업실에서 전시 기간 내내 방진복을 입고 하루 다섯 시간씩 그라인더로 통쇠기둥을 갈았다. 중노동이 따로 없다. 삽이 될 때까지 탱크를 갈려면 얼마나 걸릴까.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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