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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네이버만 때리면 길이 열릴까

입력
2018.05.23 19: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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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조작서 불거진 포털뉴스 개편 논란

뉴스 생태계의 근본적 혁신 논의는 실종

위기 자초한 언론사들 통렬한 자성부터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가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네이버 뉴스 및 댓글 개선 방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 유통을 좌지우지해 온 네이버의 정책 변화에 언론계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뉴스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홍인기 기자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가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네이버 뉴스 및 댓글 개선 방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 유통을 좌지우지해 온 네이버의 정책 변화에 언론계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뉴스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홍인기 기자

“○○가 궁금해? 네이버에 물어 봐.” 오래 전 유행한 말이다. 기자들도 포털 검색을 취재에 적극 활용하면서 별 생각없이 쓰곤 했다. 인터넷이란 바다로 들어가는 ‘관문’(포털의 원뜻)으로 출발한 네이버가 뉴스를 비롯한 모든 정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디지털의 절대강자로 군림한지 오래, 이젠 우스개로라도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말이 됐다. 그러나 숱한 언론사들이 네이버란 괴물에 의해 뉴스 생태계가 왜곡되고 무너졌다고 목청 높여 개탄하는 요즘에도 여전히 네이버에 갈 길을 묻는 부조리극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학자 이준웅은 포털 중심의 뉴스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악순환을 ‘공유지의 비극’에 비유한 바 있다. 플랫폼으로서 지위를 잃고 수익성이 악화한 언론사들은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드는 뉴스 제작에 투자하기보다 포털의 검색 및 노출에 기댄 낚시성 기사를 양산하게 되고, 이는 이용자의 실망과 외면으로 이어져 수익구조가 갈수록 악화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포털 역시 뉴스 및 검색의 질 저하로 이용자들, 특히 10~20대 젊은층이 이탈하면서 광고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엄연히 이익을 좇는 사기업인 포털의 뉴스판을 공유지에 빗대는 것이 마땅하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포털과 언론사들이 네 탓 공방만 거듭하는 사이 수익성 악화와 뉴스의 질 저하가 각기 원인이자 결과로 얽히고설킨 채 뉴스 생태계가 황폐화돼 가고 있는 이 비극의 작동구조를 적확하게 짚어낸 진단이다.

드루킹 같은 정치 브로커들의 댓글 및 여론 조작 논란은 이런 기형적인 뉴스 생태계가 배태한 숱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댓글 조작은 그 자체로 중대 범죄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대상이 된 기사들, 더 나가 언론계 전반에 대한 신뢰가 세계 최하위(로이터연구소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7’)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문제의 뿌리가 포털의 뉴스유통 독점구조에 있다는 진단은 일견 옳지만, 기사를 포털 안에서만 소비하도록 한 ‘인링크’ 서비스를 개별 언론사 사이트로 넘겨주는 ‘아웃링크’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이 주된 해법이라거나 아예 아웃링크를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뒤늦게나마 뉴스 생태계의 고질적 문제와 해법을 놓고 갑론을박을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모처럼 불붙은 논의가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정치권까지 가세한 네이버 때리기에 편승하면서 한편으론 네이버에 해법 제시를 닦달하며 결국 ‘네이버에 갈 길을 묻는 부조리극’부터 끝내야 한다. 네이버는 지난 9일 뉴스 개편 방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70개 주요 언론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의견을 유보한 가운데 단 한 곳만이 아웃링크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 한 곳마저 공개된 결과에 놀라 의견을 번복했다고 한다. 언론사들 스스로 서로의 발목을 잡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은 물론 뉴스 소비자와 전문가들을 불러내, 모두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재 뉴스 생태계의 구조를 낱낱이 해부하고 재조립하는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너무도 진부하지만, 언론의 뼈아픈 자성이어야 한다. 네이버에 종속되는 것도 모른 채 뉴스를 헐값에 넘겨버릴 만큼 세상의 변화에 아둔했거나 오만했던 것부터 종이신문이나 메인 뉴스에는 절대 내보내지 못할 어뷰징 기사들로 트래픽 올리기에 급급하고, 넘쳐나는 베끼기 기사들로 공들인 특종이 묻히는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타사가 애써 발굴한 특종은 거리낌없이 베끼고, 우리 독자가 누구이며 어떤 뉴스를 원하는지 따지고 살피는 노력없이 떠나간 독자 탓만 했던 일까지. 뉴스 생태계의 변화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적어도 정론을 표방해온 언론사들부터 이런 구태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너나없이 벼랑 끝에 매달려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마당에 ‘자성’과 ‘연대’라니, 참 순진한 얘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달리 길이 없다.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는 동안, 독자들은 떠나고 있다. 아이슈타인의 말로 알려진 잠언에 귀 기울일 때다. “미친 짓이란 똑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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