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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미디어사업 접은 오리온.. 中 입맛 사로잡으며 성장동력 회복

입력
2017.04.0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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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케이블TV 장악

과도한 경쟁에 관련 산업 정리

말차맛 초코파이, 고래밥 등

中, 러시아 공략 성공해 재기

지주사 전환 지배구조 재편과

동양사태 소송 마무리가 숙제

오리온 본사 사진 전경/2017-03-30(한국일보)
오리온 본사 사진 전경/2017-03-30(한국일보)

"가슴에 평생 안고 갈 빚이 될 것이다. 어떤 비난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

2013년 9월 23일 이화경(62) 오리온그룹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부도위기에 몰린 동양그룹의 자금지원 요청을 거절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에는 피를 나눈 자매(이혜경 동양그룹 전 부회장)의 요청을 거부하는 데 따른 이 부회장의 무거운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당시 2조원대 규모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 상환 압박을 받던 동양그룹은 최후의 수단으로 동생 회사인 오리온에 손을 내밀었으나 거절당하고 파산의 길로 접어들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동양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해 독립 경영체제를 유지해온 오리온은 이화경 부회장의 결단으로 동양그룹 사태의 불똥을 피할 수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동양그룹의 자금난 사정을 감안하면 오리온이 지원을 결정했더라도 동양이 회생한다는 보장은 없었다"며 "가족 관계를 고려할 때 다소 냉정할 수 있겠지만 회사 경영자로서는 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미디어 산업 강자서 다시 과자회사로 U턴

오리온의 뿌리는 동양그룹이다. 고(故) 이양구 회장이 설립한 동양은 1950년대 시멘트와 제과사업을 양대 축으로 사세를 키워 1980년대 금융(동양증권ㆍ생명), 1990년대 생활가전(동양매직)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재계 30위권 기업으로 성장했다.

아들이 없었던 이양구 회장이 1989년 타계하자 장녀 이혜경(66) 전 부회장의 남편인 현재현(69)씨가 2대 회장에 취임하며 본격적인 사위 경영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동양의 또 다른 한 축인 제과사업은 차녀 이화경 부회장 몫이었다. 이화경 부회장과 그의 남편인 담철곤(63) 회장은 2001년 동양제과를 중심으로 한 16개 계열사를 들고 동양을 나와 오리온그룹을 출범 시켰다.

식음료 회사였던 오리온이 국내 대표 미디어 기업으로 발돋움 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1990년대 중반 케이블TV 시장에 진출한 오리온은 2000년 온미디어를 설립하며 국내 케이블 TV시장을 완전히 장악한다. 온미디어는 오리온의 TV사업을 총괄하는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로서 당시 12개 채널을 운영하며 오리온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리온은 이후 멀티플렉스 상영관 메가박스와 영화 배급사 쇼박스를 잇따라 설립하며 영화산업에도 진출해 국내 대표 미디어 기업으로 위상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미디어 기업 강자’ 오리온의 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CJ그룹이 2002년 CJ미디어를 세우고 오리온을 빠르게 추격하면서 시장 상황은 변해갔다.

오리온은 독주하던 케이블TV 시장에서 CJ와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했고, 비교적 싸게 들여오던 외국 방송 콘텐츠도 CJ와의 수입 경쟁으로 비싼 값을 주고 사와야 했다. 물론 CJ가 단기간에 오리온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2000년대 중ㆍ후반까지는 미디어 산업의 주도권은 여전히 오리온에 있었다.

하지만 CJ가 적자를 보면서도 투자를 멈추지 않는 ‘치킨게임’에 나서자 상대적으로 자금력에서 열세인 오리온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광고시장이 크게 위축되자 오리온은 결국 미디어 사업 정리를 결정한다. 오리온은 미디어 사업 정리를 전후로 새롭게 진출했던 외식(베니건스), 유통(바이더웨이), 복권(스포츠토토) 사업에서도 손을 떼며 본업인 제과사업으로 사실상 회귀한다.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당시 미디어 산업 상황이 좋지는 않았지만 미래 성장성을 놓고 본다면 다소 성급한 판단이었다"며 "다만 위기를 버티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오리온 그룹이 자금을 지속적으로 댈 만한 형편이 아니었던 것이 매각의 주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해외서 찾은 성장동력

미디어 산업에서 철수한 오리온은 본업인 제과 사업의 글로벌화에 주력한다. 특히 중국에서의 성공이 두드려 졌는데, 2013년에는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중국에서 매출 1조원의 벽을 넘는 기록을 세운다.

오리온 말차초코파이/2017-03-30(한국일보)
오리온 말차초코파이/2017-03-30(한국일보)

오리온의 중국 성공은 국민과자 초코파이가 있어 가능했다.

오리온은 중국인들이 인간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 착안해 초코파이 명칭을 좋은 친구라는 뜻의 ‘하오리여우 파이’로 바꾸며 현지화를 시도했다.

또 현지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현지 기호식품인 말차와 초코파이를 접목한 ‘초코파이 말차’ 등을 내놓으며 중국 파이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후 오리온이 내놓은 ▦오! 감자 ▦스윙칩 ▦고래밥 등도 연달아 히트를 치며 중국 제과업계 내 오리온의 위상을 높여줬다. 현재 중국을 포함해 베트남, 러시아 등지서 글로벌 사업을 펼치고 있는 오리온의 해외 매출은 지난해 기준 1조 6,117억원으로 오리온그룹 전체 매출의 68%를 차지할 정도이다. 미디어산업 매각 후 잃어버린 성장 동력을 해외시장 발굴로 어느 정도 회복한 셈이다.

하지만 국내 매출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게 문제다. 2013년 7,922억원 수준이던 오리온의 국내 매출은 2014년 7,517억원, 2016년 7,074억원으로 점점 감소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6,794억원으로 2010년 이후 6년 만에 6,000억원대로 회귀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드 이슈로 중국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국내 매출 감소는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문제”라며 “오리온으로서는 제과 외에 별다른 신사업 포트폴리오가 없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주사 전환 속 돌출된 동양사태 그림자

오리온그룹의 올해 최대 현안은 지배구조 재편이다. 오리온은 오는 6월 1일까지 오리온을 ‘지주사(오리온홀딩스)’와 ‘사업회사(오리온)’로 인적분할해 회사 지배구조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리온이 밝힌 지주사 전환의 목적은 경영 효율성과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다. 하지만 오너들은 통상 지주사 전환을 통해 기업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 오리온 최대주주인 이화경 부회장(14.48%)과 2대주주인 담철곤 회장(12.90%)도 인적분할로 신설되는 사업회사와 존속하는 지주회사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담철곤 회장이 올 들어 잇따라 법적 소송에 휘말리고 있는 것도 오리온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지난 2월 동양그룹 피해자 모임은 담 회장이 동양그룹의 은닉재산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도 부친이 자신에게 상속했던 오리온의 과자 포장지 회사인 ‘아이팩’을 담 회장이 가로챘다는 이유로 그를 검찰에 고소했다. 모두 동양그룹 피해사태와 연관된 고소ㆍ고발건이다. 이혜경 부회장 측은 아이팩의 지분 가치를 최대 1,000억원으로 평가하며 담 회장에게 돈을 돌려받는 데로 피해자 변제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리온 관계자는 “아이팩은 담 회장이 인수한 개인 회사로 상속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이혜경 전 부회장의 고소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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