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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인생 최고의 일탈은 배우가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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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인생 최고의 일탈은 배우가 된 것”

입력
2017.06.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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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귓속말’을 마친 이상윤은 “이 드라마에서 내 연기는 50점”이라며 “이번에 공부가 됐으니 다음엔 더 잘 준비해서 새로운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SBS 드라마 ‘귓속말’을 마친 이상윤은 “이 드라마에서 내 연기는 50점”이라며 “이번에 공부가 됐으니 다음엔 더 잘 준비해서 새로운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아유, 정말 힘들었습니다.” 몇 번이고 거듭 얘기하는 걸 보니 괜한 엄살은 아닌 듯하다. 그럴 만도 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데,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귓속말’의 주인공 이동준(이상윤)에겐 ‘해당 사항 없음’이었다.

이동준은 정의롭고 소신 있는 판사였으나 법비(법을 악용하는 무리)의 덫에 걸려 청부재판을 하게 되고, 단 한번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해 삶이 어긋나 버린다. 맹수 같은 법비가 우글거리는 로펌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반격을 도모하지만 오히려 수세에 몰리기를 반복했다. 헤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에 놓인 이동준을 연기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다. 배우 이상윤(36)은 “몇몇 배우들이 이 역할을 거절했다던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며 “조금 어렸을 때 출연했다면 나 역시 나가떨어졌을 것”이라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래도 배우라면 누구나 탐낸다는 사회파 작가 박경수의 드라마답게 결실은 알차다. ‘귓속말’은 법비들이 법과 정의를 농단하는 현실을 이식하듯 담아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악은 성실하다”는 명대사는 부정할 수 없는 명제였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정신이 바짝 들면서 경각심이 마구 샘솟았다. 치밀한 복선과 허를 찌르는 반전, 속도감 있는 전개는 시청자들의 몰입을 극강으로 끌어올렸다. 시청률은 방영 내내 10% 후반대를 유지했고 최고시청률은 20%를 넘겼다.

그럼에도 “워낙 기대치가 높으니 시청률이 조금 더 나와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했다”는 이상윤은 “이 드라마로 배운 게 많다”고 했다. 담금질을 통해 한층 단단해진 그에게선 이전과는 또 다른 기운이 생동하고 있었다. 30일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상윤과의 일문일답.

이보영(왼쪽)과 이상윤은 KBS ‘내 딸 서영이’에 이어 SBS ‘귓속말’에서 두 번째 연기 호흡을 맞췄다. SBS 제공
이보영(왼쪽)과 이상윤은 KBS ‘내 딸 서영이’에 이어 SBS ‘귓속말’에서 두 번째 연기 호흡을 맞췄다. SBS 제공

-지난 몇 개월간 이동준 캐릭터로 살아온 소감은.

“도입부부터 수세에 몰린 상황이 끝까지 계속되니 연기하면서 힘들었다. 반격의 기회를 잡기 위해 버티고 버티면서 때론 지칠 때도 있었다. 내가 상대하는 법비들은 너무 거대한 악이었다.”

-어떤 장면에서 그렇게 힘들었나.

“모든 장면들이 강렬해서 뭘 하나 꼽기도 어렵다. 전개에 ‘강약’이 없고 줄곧 ‘강’과 ‘극강’만 있었다. 그 안에서 ‘강약중강약’을 찾아 연기해야 했다. 특히 회의실에서 마주하고 대화하는 장면들이 힘들었다. 서로 마음을 숨긴 채 날 선 신경전을 벌이면서 얽히고 설킨 관계들을 표현해야 하니까. 촬영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선 정말 재미있었을 거다.”

-국정농단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들이 많았다.

“현실을 활용해 이야기를 끌고 간 드라마이지만, 실제 현실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연기에 담아내진 않았다. 인물들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 물고 뜯는 상황들에 집중했다. 욕망과 생존 본능은 사람 사이에 쌓인 세월과 의리보다 더 강하다는 걸 느꼈다. ‘악은 성실하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캐릭터들이 갈등하는 관계라 맞붙는 장면에서는 기싸움도 있었을 것 같다.

“극중에서 서로 제압하려고 하는 상황이니까 에너지가 팽팽하게 맞설 수밖에. 인물에 몰입한 상대 배우를 마주하는 게 힘들었다. 실제 그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말이다. 나 역시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으니 그들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겠다. 연기는 연기일 뿐인 줄 알았는데…. 하하.”

-실제 성격이 유순해서 더 그랬나 보다.

“성격이 유연한 편이긴 하다. 아주 말이 안 되는 상황만 아니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으로 산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욕심 내고 매달리지 않는다. 그거 놓쳤다고 내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인생 길게 보려 한다. 내 삶의 방식이 그렇다.”

-게다가 인상까지 선해서 바른 생활 사나이, 엘리트 이미지가 강하다.

“내겐 그런 이미지도 하나의 무기다. 어쨌든 호감 쪽에 가깝지 않나. 한편으로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기회도 찾고 있다. 정리하면 무기이자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귓속말’에서 이상윤은 판사 시절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변호사 이동준으로 분했다. SBS 제공
‘귓속말’에서 이상윤은 판사 시절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변호사 이동준으로 분했다. SBS 제공

-인생에서 가장 큰 일탈은 뭐였나.

“공부를 버리고 배우가 된 것? 하하하. 처음 연기를 시작하던 때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연기로 벌어먹고 살 수는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연기에 재능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뛰어든 건 나름의 일탈이었다. 물론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떻게 설득했나.

“설득 못했다. 끝까지 고집 부리는 수밖에…. 어머니는 어느 순간 ‘그래 네 인생이다’라며 포기하셨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걱정하셨다. 연기하기로 결심을 굳힌 뒤로 굳이 대학을 졸업해야 할까 고민도 했다. 공부에 쏟는 에너지를 연기에 쏟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이 문제로도 아버지와 갈등했다. 어쨌든 졸업은 했지만 돌아갈 곳을 만들어놓기 위한 건 아니었다.”

-그 정도로 연기에 빠진 이유가 뭔가.

“연기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어떤 인물에 푹 빠져 있는 그 순간에 희열을 느꼈다. 연기는 내가 살아온 방식과 달라서 재미있었다.”

-벌써 데뷔 10년이 넘었는데 ‘귓속말’은 어떤 의미인가.

“정말 크나큰 공부가 됐다. 내가 나오지 않는 장면의 긴장감까지도 이어가야 하는 경험이 새로웠다. 이런 장르의 작품에선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연기를 어떻게 봤을지 더 궁금하다. 내 앞에서는 솔직하게 평가해주진 않으니까. 나는 스스로 아주 잘해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시 기회가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좋은 점은 계속 이어가고 부족한 점은 만회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쉬면서 자신감을 찾고 에너지도 회복해야 할 것 같다. 다음엔 조금 편하고 가벼운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 밥 먹는 장면을 예로 들면, 입안 가득 음식을 밀어 넣은 채 우물거리며 대사를 해도 되는 작품 말이다. ‘귓속말’에선 밥상에 앉아서도 먹지는 않고 서로 대화만 했다. 하하하. 물론 나 자신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묵직한 작품에도 계속 도전할 거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이상윤은 “배우로서 성장을 보여줄 중요한 시기라 생각한다”며 연기 욕심을 내비쳤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이상윤은 “배우로서 성장을 보여줄 중요한 시기라 생각한다”며 연기 욕심을 내비쳤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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