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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이면 본전의 2배 챙긴다" 뭔가에 홀린 듯 다시 게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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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이면 본전의 2배 챙긴다" 뭔가에 홀린 듯 다시 게임장으로

입력
2015.10.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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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마카오 엠지엠 카지노 1층 퍼블링 게임장에서 본보 기자(테이블 가운데)가 바카라 게임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기자는 이날 한 시간도 안 돼 준비해 간 50만원을 모두 잃었다. 마카오=박주희기자
24일 마카오 엠지엠 카지노 1층 퍼블링 게임장에서 본보 기자(테이블 가운데)가 바카라 게임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기자는 이날 한 시간도 안 돼 준비해 간 50만원을 모두 잃었다. 마카오=박주희기자

“소액 환전은 차비도 안 나오는데….”

지난 24일 마카오에서 환전업자로 일하는 한 남성은 휴대폰 너머로 볼멘소리부터 했다. 한화 50만원을 홍콩달러로 바꿀 수 있냐는 질문에 “이왕 오셨으면 더 큰 금액으로 놀다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했다. “50만원밖에 없다”는 기자의 답변에 잠시 망설이던 환전업자는 “10분 후에 만나자”며 전화를 끊었다.

얼마 뒤 20대 남성 A씨가 엠지엠 카지노 입구에 나타났다. 그를 따라 2층 정킷방(카지노 내 사설도박장)으로 올라가자 한국 금융기관의 계좌번호를 보여줬다. 모바일 뱅킹을 통해 50만원을 계좌이체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 사이 입금을 확인한 A씨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다시 5분이 지나 이번에는 40대의 B씨가 오더니 3,200 홍콩달러를 건넸다. 그는 “1달러 당 수수료 2,3원을 붙여 계산한다”고 말했다. 당일 환율기준으로 2만3,000원 가량 손해를 봤으니 수수료는 4%인 셈이다. B씨는 “큰 돈이 오갈 때는 계좌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대손 환치기’ 방식을 쓴다”고 했다. 손님의 지인과 도박업자 직원이 한국에서 만나 현금을 주고 받은 뒤 마카오로 연락을 주면 환전업자가 돈을 손님에게 건네는 수법이다. 수수료를 많이 챙기려면 이 같은 큰 거래가 필수적이다.

환전을 마친 기자는 1층 퍼블릭 게임장으로 내려가 3,200달러를 칩으로 교환했다. 1,000달러 칩2개, 500달러 칩 2개는 모두 색깔과 크기가 제 각각이었다. ‘최소 베팅 500달러’라 적힌 바카라 게임 테이블에 앉아 딜러에게 1,000달러짜리 칩 2개를 건네주자 다시 500달러 칩 4개로 교환해 줬다. 10초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옆자리의 중국인은 “왜 게임을 빨리 진행 안 하느냐”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테이블의 ‘뱅커’와 ‘플레이어’ 둘 중 어느 한 곳에 베팅을 하는 바카라 게임의 속도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첫 판에 중국인 겜블러를 따라 500달러 칩을 뱅커 쪽에 걸자마자 딜러가 뱅커와 플레이어라는 글자 위에 각각 카드 2장을 분배했다. 카드를 뒤집어보니 플레이어에게는 Q와 K카드(모두 10으로 계산)가, 뱅커에게는 숫자 8과 4 카드가 놓여 있었다. 플레이어 카드 합의 끝자리는 0, 뱅커카드는 2가 됐다. 양쪽 모두 8 또는 9가 되지 않을 경우 카드를 더 받아야 하는 규칙에 따라 다시 1장씩 카드가 분배됐다. 플레이어 카드는 7, 뱅커카드는 8이었다. 말 그대로 ‘한 끗’ 차이로 뱅커가 승리했고, 기자는 500달러를 땄다. 게임 한 판에 걸린 시간은 정확히 30초였다.

문득 게임장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서 관광객들의 고함과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는 둔탁한 소리가 섞여 실내는 아우성이었다. 방금 전 짜릿함을 떠올리니 그런 아우성에 이해가 갔다. 하지만 곧 게임에 빠져들어 암산에 집중한 뒤로는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30여판이 쏜살같이 진행됐고, 기자 테이블 앞에는 1,000달러짜리 칩 두 개가 더 놓여 있었다. 15분 만에 28만원을 번 것이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 생각에 호텔 라운지에서 기분 좋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찰나, 옆에 서 있던 한인 앵벌이가 추임새를 넣었다. “운이 좋아 보이니 베팅을 높여보라“며 자신이 노하우를 알려주겠다고도 했다. 게임장을 나와 잠시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1,000달러 베팅 한 판이면 본전의 두 배가 된다.” 한 번 시작된 상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 뒤 기자는 누군가에 홀린 듯 다시 퍼블릭 게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아예 최소 베팅 1,000달러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나 연달아 2번 돈을 잃었고 본전 생각에 마음은 조급해졌다. 결국 베팅액수가 1,500달러, 1,700달러 식으로 높아지면서 기자도 ‘한판’을 기다렸다. 도박하는 이들이 마지막 카드를 잡는 심정이나 앵벌이들이 말하는 마지막 한판 승부 이야기가 더는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운은 더 이상 따르지 않았다. 20분 뒤 5,200달러는 딜러 손에 들려 있었다.

이날 현지 에이전트(호객꾼)가 카지노로 향하던 기자에게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더블(본전의 두 배) 욕심을 내면 다 잃으니 적당히 본전치기만 하고 오세요.”

마카오=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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