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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젊은이를 위한 세계사

입력
2018.04.01 11: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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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나온 아들이 낡은 책 하나를 들고 나와 어디가 좋아 읽기를 권했는지 물어온다. 오래 전 발간된 문고판 ‘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다. 글쎄, 내가 저 책을 통해 아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자 랑케는 서구세계 최대의 사상혁명이라는 역사주의를 주도했고, 모든 역사와 문화는 로마로 들어갔다가 로마에서 다시 흘러나왔다는 실증적 역사관을 제시해 추앙받던 인물인데. 아들은 내가 그 책에서 느꼈던 감동을 선뜻 공감하지 못한 표정이다.

지금은 유명한 ‘작가’가 된 대학친구가 서클 신입생 환영회에서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하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인용했다가 운동권 선배들을 무척 당혹시켰는데 그 책을 읽고 랑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바람에 나왔던 무지의 소치였다고 나중에 반성한 일화가 있다. 아들의 표정이 좀 누그러진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어릴 때는 특히. 그래서인지 아들이 ‘무엇이 돼도 좋다’는 노멀크러시 보다는 올바른 세계관을 갖고 똑바로 살기를 바란다.

문제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아들과 한집에서 살아가지만 기껏해야 디지털 이주민인 나는 아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다르면 문화도 다르기 마련이다. 젊은이의 문화나 세계관은 물과 같아서 계속 흐르지만 때론 뒤섞이고 밀어내다가 급기야 역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들과의 생각의 차이가 그저 책 한 권에 머문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요즘 들어 세대 간 전쟁이 자못 심각해 보인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번 기성세대를 뛰어 넘을 탈출구로 코인 세대는 가상화폐를 찾는다.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 역할을 했던 대학 졸업장을 투자수익률로 환산해 보니 1987년 12.5%에서 2015년 6.7%로 뚝 떨어졌다는 보고서까지 있다. 듣다 보니 아들은 할 말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젊은이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30년 후에는 1.4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단다. “미래 계급 전쟁은 빈자와 부자의 대결이 아니라 젊은이와 노인간의 싸움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했던 레스터 더로 교수 말대로다.

세대전쟁으로까지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세대간의 간극은 사실 공감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삶이 각박해져 가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문제를 청년과 기성 세대의 갈등 탓으로 돌리는 것이 불편하다. 어떻게 하면 세대간 제로섬 게임을 서로 윈윈하는 포지티브섬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고착화된 저성장구조를 벗어나 나라 전체의 파이를 키우자는 모범답안 외에도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담아낼 세대간 연대 내지 공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영화 ‘신과 함께’로 더 유명해진 주호민은 웹툰 ‘무한동력’에서 젊은 주인공을 내세워 꿈이 있으나 꿈을 꾸지 않는, 꿈을 상실한 세대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준다. 일본만화 ‘진격의 거인’은 꿈을 잃은 젊은 세대의 박탈감을 생활보수주의로 진단한다.

꿈을 잃으면 감히 공감이 일어날 재간이 없다. 군대 간 아들과 얼추 나이가 비슷한 아마존은 아들이 그 간 벌어들인 소득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업 후 24년째 순이익이 제로에 가깝다. 그럼에도 1~2년 안에 구글, 애플을 제치고 시가총액이 1조달러를 넘는 첫 번째 기업이 될 전망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시가총액의 92%는 2020년 이후 예상되는 이익을 반영한 것이라 분석한다. 개인이나 기업의 미래는 그 꿈의 크기에 달렸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미처 갖지 못했던 큰 꿈을 갖고 지금 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났으면 좋겠다. 큰 꿈과 특별한 영감은 공감에서부터 탄생한다. 저 낡은 책 속에 켜켜이 쌓인 세계사를 통해 내 아이들이 공감능력을 키우고 그 공감에 비례해 더 큰 꿈을 꾸길 바란다.

구자갑 롯데오토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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