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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실패와 시련 겪으며 성장한 스미소니언 동물원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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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실패와 시련 겪으며 성장한 스미소니언 동물원에서 배운다

입력
2018.05.18 14: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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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미소니언 동물원에서 죽순을 뜯고 있는 판다.
미국 스미소니언 동물원에서 죽순을 뜯고 있는 판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동물원인 스미소니언 동물원에 갔다. 이곳은 자연사박물관, 연구기관 등이 있는 스미소니언협회에 속해 있다. 1889년에 문을 열었고 입장료도 무료라 왠지 낡았을 것 같았지만 예상과 달랐다.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의 인증을 받은 동물원다웠다. AZA는 미국 동물원과 수족관의 발전을 위해 1924년에 설립된 비영리기관이다. 모든 분야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한 기관에 인증을 준다. 동물 관리부터 보전, 교육, 연구, 시설, 안전, 방문객 서비스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관의 철학과 그에 따른 실행 여부다.

스미소니언 동물원이 내세운 강령은 ‘동물에 대한 경험을 제공하고 지식을 전파하여 야생동물과 서식지를 보호하자’다. 동물원에는 아시아코끼리, 황금사자타마린, 검은발족제비, 판다 등 멸종위기종이 많았다. 판다가 있는 곳에 가니, 모니터를 보며 판다의 행동을 분석하는 연구실이 있었다. 이곳은 홈페이지를 통해 판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동물원 연구자들이 판다를 포함한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에 가서 생태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동물원이 단순히 동물을 보여주고 개체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철학에 따라 동물과 서식지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 스미소니언 동물원 관계자가 판다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미국 스미소니언 동물원 관계자가 판다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 보니 이 동물원에 대한 보고서(Animal Care and Management at the National Zoo: Final Report)가 하나 나왔다. 2003년 레서판다 두 마리가 쥐약을 먹고 죽은 사건을 계기로 당시 동물원의 민낯이 드러난 내용이었다. 사건 직후 대중들은 분노했고, 정부는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에 조사를 요청했다. 그들은 1년간 모든 동물원 직원을 인터뷰하고 서류를 확인하고 동물원을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얼룩말은 저체온과 영양실조로 죽었다. 외부에서 침입한 야생 여우가 동물원의 대머리수리를 공격했고 쥐는 프레리도그를 먹었다. 백신, 결핵 검사, 건강검진도 제때 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은 감춰져 있었고 동물원 측은 기록을 조작하기도 했다. 관리자들의 감독 능력은 부족했으며 사육사와 수의사 간의 소통 문제도 드러났다.

미국 스미소니언 동물원에 살고 잇는 멸종위기종 검은발족제비.
미국 스미소니언 동물원에 살고 잇는 멸종위기종 검은발족제비.

결국, 동물원장은 사임했고 동물원은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동물을 위한 식단을 수정했고 정확한 교육과 문서관리 지침을 만들었다. 부족한 시설도 고쳐나갔다. 이러한 노력 끝에 보류되었던 AZA의 승인을 다시 받고 더 나은 동물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동물원은 겉만 봐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동물원법이 잘 만들어져야 하고, AZA 인증기준처럼 동물원이 따를 수 있는 모범사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도 AZA의 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를 시작으로 국내 동물원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가, 동물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게 되고 동물원이 종 보전에 더욱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글ㆍ사진 양효진 수의사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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