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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노벨상 시즌 증후군

입력
2017.10.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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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라이고(LIGO)라는 검출기를 통해 사상 처음으로 중력파를 검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미국의 라이너 바이스, 배리 배리시, 킵 손에게 돌아갔다. 중력파는 시공간의 출렁임이 만드는 파동으로서 1916년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예측했다. 중력파를 검출했다는 첫 공식발표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2016년 2월11일이었다.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두 개의 블랙홀이 합쳐져 새로운 블랙홀을 만들면서 태양 질량의 3배에 달하는 에너지가 중력파로 방출되었다. 이 신호를 포착한 것이 2015년 9월14일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총 4회에 걸쳐 두 개의 블랙홀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중력파를 검출했다. 첫 중력파 검출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약 2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중력파 검출의 역사는 꽤나 지난했다.

인상적이게도 라이고의 핵심 설비인 레이저 간섭계(라이고의 LI는 Laser Interferometer의 머리글자)의 원조를 만들었던 앨버트 마이컬슨은 꼭 110년 전인 1907년 미국인 최초로 노벨 과학상(물리학)을 수상했다. 간섭계는 빛의 간섭현상을 이용해 어떤 신호를 포착하는 기구이다. 마이컬슨은 1887년 자신이 새로 고안한 간섭계를 써서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중요했던 실험을 수행했다. 130년 전의 일이다. 미국 최초의 노벨 과학상과 미국 최신의 노벨 과학상이 이렇게 연결돼 있으니 학문의 역사와 전통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중력파를 검출했다는 발표가 처음 나왔을 때 중력파가 대체 무엇인지 그 모태가 되는 일반상대성이론은 또 무엇인지 물어오는 분들이 많았다. 질문의 끝에는 항상 최대한 쉽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는 요구조건이 붙는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돌아오면 비슷한 질문을 연례행사처럼 듣는다. 이런 요청을 받을 때면 무척 난감하다. 직관경험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은 사실상 19세기에 모두 끝났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두 기둥으로 삼고 있는 현대물리학은 그 출발부터 직관경험을 넘어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대성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물리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학생들도 어려워한다. 만약 그런 비법이 있다면 상대성이론이 나온 지 100년이 지나는 동안 이 세상 누군가는 바로 그 비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대성이론을 쉽게 가르치지 않았을까?

이런 요구의 이면에 나는 일종의 ‘지적 한탕주의’가 있다는 의심이 든다. 한국의 입시교육 체제에서는 문제유형별 ‘마스터 키’가 하나씩만 있으면 어떤 문제라도 순식간에 풀리는 경험을 아마 한 번씩은 해 봤을 것이다. 상대성이론에는 그런 마스터 키가 없다. 세상 모든 이치에 유형별 맞춤형 풀이법이 있으리라, 그 ‘절대반지’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손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하는 기대는 학문과 지식의 세계를 얄팍한 야바위놀음으로 착각하는 한탕주의에 불과하다. 나는 지적 한탕주의가 한국 입시교육의 가장 큰 폐해가 아닐까 싶다. 좋은 대학에 가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요구 자체가 어차피 더 큰 한탕주의의 판을 벌려 놓았음에야.

노벨상 시즌마다 자주 듣는 또 다른 질문이 있다. “그게 우리 먹고 사는 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나요?” 글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경주 석굴암을 두고도 똑같은 질문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으나 질문자가 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원자 속의 전자를 발견한 것이 1897년이고 트랜지스터를 만든 것이 그로부터 약 50년 지난 1948년이었다. 원자핵을 처음 발견한 것이 1911년이었고 34년 뒤인 1945년 사상 최초의 핵무기가 실전에 투하되었다. 전자를 발견한 톰슨 경도, 원자핵을 발견한 러더퍼드도, 훗날 자신의 발견이 전자혁명이나 대량살상무기로 이어지리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런티어의 가치는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인터넷 시대 이전의 잣대로 그 이후를 가늠하거나 재단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라이고의 위대한 발견이 중력파 천문학의 새 시대를 연 것만 해도 엄청난 가치가 있지만, 혹시 아는가? 아주 오랜 세월 뒤에 우리가 마침내 중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출발점을 역사가들은 2015년의 중력파 검출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시대의 화두가 돼 버린 4차 산업혁명도 한탕주의나 ‘먹고사니즘’에만 갇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인공지능이든 자율주행자동차든 믿을 만한 기술 한 방으로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환상은 위험하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산업의 구조를 뒤엎을 ‘혁명’이 다가온다면 개별 기술 한두 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구조의 변화를 놓쳐서는 안 된다. 또한 경제논리에만 매몰되면 과학기술의 진짜 가치를 놓칠 수도 있다. 우린 왜 아직 노벨 과학상이 없는지, 4차 산업혁명에서도 그 교훈을 한 번 돌아볼 때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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