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시험결정 사회’ 한국… “공모전 출신 아닌 작가도 공정히 평가돼야”

알림

‘시험결정 사회’ 한국… “공모전 출신 아닌 작가도 공정히 평가돼야”

입력
2018.05.15 04:40
23면
0 0

‘당선, 합격, 계급’ 낸 작가 장강명

인터뷰ㆍ설문조사 등 기반으로

시험제도의 과도한 영향력 비판

장강명 작가가 지난 11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를 찾아 최근 낸 책 '당선, 합격, 계급'을 들고 웃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장강명 작가가 지난 11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를 찾아 최근 낸 책 '당선, 합격, 계급'을 들고 웃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취재와 집필에 약 3년, 인터뷰한 관계자 70여명, 인터뷰 녹취 파일 크기 약 1,750 메가바이트(MB), 설문 조사한 관계자 1,332명, 책 분량 200자 원고지 1,500여 장… 장강명(43) 작가가 르포 ‘당선, 합격, 계급’에 들인 쫀쫀한 공을 숫자로 정리하면 이렇다. 문학공모전, 대기업 공채 같은 좁디 좁은 관문 통과에 성공하면 행복이요, 끝내 실패하면 불행인 ‘시험 결정 사회’의 부조리를 책은 들춘다. 장 작가는 서문에서 “막연한 이야기보다 수치, 통계, 실명으로 말하는 증언을 찾고 싶었다. 가능한 한 지루하지 않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했고, 그 노력은 통했다. 술술 읽히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눈이 밝아진다.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진 않아 마음까지 후련해지는 건 아니지만. 장 작가를 11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합격이 제일 쉬웠어요”라고 장 작가가 으스댄다고 해도 웬만한 사람은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삼성고시’에 합격해 삼성 계열사를 다니다 ‘언론고시’를 통과해 동아일보 기자로 11년 일했다. 2011년 문학공모전에 당선돼 소설가가 된 뒤엔 문학상을 7개 받았다. 할 말은 시스템의 피해자에게 많은 법인데, 수혜자가 나선 이유가 뭘까. “성(城)의 내부에 접근할 수 있어서 시스템을 제대로 취재할 수 있었어요.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를 쓴 건 스스로 미국 대공황으로 실직해 서부로 내몰렸기 때문은 아니죠. 그 시대를 보고 쓴 거예요. 조지 오웰은 전화기 같은 발명품을 보고 빅브라더 사회를 상상해 ‘1984’를 썼고요. 그런 류의 촉을 지닌 사회파 혹은 참여파 작가는 늘 있었고, 저도 그 중 하나예요. 먼저 비명을 지르는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역할을 소설이 해야 한다는 사회의 기대도 있고요.”

주차 요원을 뽑는 게 아닌데도 대기업 입사시험에서 ‘정육면체에서 아래 같은 도형을 제거했을 때 나올 수 없는 도형은?’ 같은 걸 묻는 건 왜일까. ‘글씨체는 신명조체, 글자 크기 10포인트, 장평 90%, 자간 마이너스 7%로 한다’는 지침이 신춘문예 당선 공식으로 통하는 건 또 왜일까. ‘LG가 선호하는 직원 얼굴’ ‘KBS 아나운서 형 얼굴’로 바꿔 준다는 성형외과가 성업하는 건 대체 왜일까. “시험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그래요. 한국사회에서 시험은 사실상의 사회계약이에요. 무조건 공정해야 하니까 변별력을 높이려고 괴상한 문제를 내요. 불안한 수험생들은 미신에라도 매달리고, 그런 수험생 돈을 뜯어내는 시장도 열리죠.”

그래서, 어째야 하나. 장 작가는 공채 제도, 대학 간판, 문학상을 없애자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시험만으로 사람을 뽑아선 안 돼요. 예컨대 공모전 출신이 아닌 소설가들도 같은 선상에서 평가 받을 수 있어야죠. 간판을 한 번 따기만 하면 너무 오래 가는 구조도 바꿔야 해요. 성 안에도 경쟁을 도입해야죠.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들어가는 문도 넓어지니까요. 영어 교사는 토익 450점을 받아도 오래도록 간판을 누릴 수 있어요. 임용고시 준비생 중엔 토익 만점자가 수두룩한데도요. 나중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런 차별을 받는 건 사회적 낭비이고 부조리예요.”

장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 ‘댓글 부대’ 같은 사회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이번엔 문학상 제도에 ‘차별’ ‘계급’ 이라는 흥행 코드를 얹었다. 시대를 영리하게 읽는 안목은 어떻게 길렀을까. “기자 하면서 ‘지금 시대정신이 뭐야? 그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지?’를 토론하는 기획 회의를 매주 한 번씩만 했다 쳐도 500번 넘게 했어요. 아주 강압적 분위기에서요(웃음). 그게 작가의 자산이 됐어요. 논픽션을 쓴 게 소설가의 외도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논픽션 작가도 되고 싶어요. 조지 오웰도 ‘1984와 ‘카탈로니아 찬가’를 써 소설과 논픽션 모두에서 일가를 이루지 않았나요.” 그는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초대된 탈북자 지성호씨를 다룬 논픽션 2탄을 봄에 낸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황수정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