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윤필
선임기자

등록 : 2017.04.15 04:55

가정폭력의 절망을 불살라 사회를 바꾼 여인

등록 : 2017.04.15 04:55

[가만한 당신] 프랜신 휴즈 윌슨

프랜신 휴즈는 16세에 결혼해 14년을 가정폭력 피해여성으로 살다가 77년 침대에 불을 질러 남편을 살해한 '1급 살인범'이었고, 무죄로 풀려난 뒤에는 가정폭력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용감한 고발자로 피해여성의 수호천사로 불렸다. 그는 ‘일시적 정신장애'를 인정받아 형을 면했지만, 피고석 서야 할 것은 그 뿐만이 아니라 배심원단을 포함한 미국 시민 전부와 당시의 법 제도임을 알게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모든 과거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고자 고군분투했다. 80년대 실습간호사 시절의 그. 유튜브 영상.

지난 3월, 잭 롤랜즈(Jack Rowlands)라는 영국 런던경시청 가정ㆍ청소년 담당 경찰관이 자기 트윗 (@earlyyearscop )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한 동료가 가정폭력 현장에서 찍었다는 그 사진에는 20여 개의 식칼과 과도가 나무계단에 나란히 꽂힌 장면이 담겨 있었다.

칼날 아래 붉은색 카드들은, 피를 연상시키는 소품이었을 것이다. 스릴러 연극포스터 같은 그 사진에서 시민들은 ‘가정폭력의 충격적 진실’을 또 한 번 환기했다. 롤랜즈는 “(가해자) 남성은 체포돼 기소됐”지만 “가야 할 길은 한참 멀다(how much more is needed to be done)”고 썼다.

영국 런던경시청의 경찰관이 지난 3월 자신의 트윗((@earlyyearscop)에 올린 사진. 한 가정폭력 가해남성이 자기 집 계단을 저렇게 '장식'해 두고 있었다고 한다.

40년 전인 1977년 미국 미시건 주 랜싱(Lansing)의 30세 여성 프랜신 휴즈(Francine Hughes)가 감당했던 폭력이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겐 보호를 기대할 경찰도 법도 없었고, 기댈 만한 이웃도 훨씬 적었다. 16세에 두 살 많은 제임스 ‘미키’ 휴즈(James ‘Micky’ Hughes)라는 남자와 결혼해서 3녀 1남을 낳으며 산 14년 동안 프랜신은 남편의 일상적인 언어 학대와 물리적 폭력에 시달렸다. 그러던 77년 3월 9일, 그는 갖은 패악 끝에 술 취해 골아 떨어진 남편의 침대 주변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당겼다. 그 길로 경찰에 자수한 그는 1급살인 혐의로 기소됐지만, 배심원단은 그 해 11월 만장일치로 그의 무죄를 평결했다.

누구는 사건 자체와 재판 결과에 경악했고, 배심원단처럼 또 누구는 그 엽기적 범행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사연에 더 깊이 감응했다. 절망을 불살라 가정폭력의 ‘충격적인 진실’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수많은 피해자들의 삶을 바꾸고, 가정폭력에 대한 나태한 사회 인식과 법ㆍ제도를 바꾸는 데 기여한 프랜신 휴즈가 3월 22일 별세했다. 향년 69세.

중등학교를 다니던 프랜신이 미키를 만난 건 15살이던 62년 무렵이었다. 두 살 위 미키는 다소 거칠고 냉소적인 청년이었지만, 그런 면이 프랜신에겐 세련돼 보였고(sophisticated), 또래 누구에게도 없던 승용차를 갖고 있던 점이 또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술과 도박, 툭하면 가족에게 손찌검을 일삼던 농업노동자 아버지와 “침대가 거칠어도 내가 고른 거라면 거기 누워야 한다”고 믿고 살던 어머니의 6남매 중 셋째(1947년 8월 17일생) 프랜신은 유년의 불행에서 벗어날 길을 미키에게서 찾았다. 이듬해 11월 학교를 중퇴하고 둘은 결혼했다.

폭력은 신혼여행 때부터 시작됐고, 부부의 삶은 가정폭력의 전형적인 양상으로 전개됐다. 블라우스 노출이 심하다며 옷을 찢고 폭행한 뒤 금세 용서를 구하고…, 폭행과 사과가 거듭될수록 빈도와 강도는 잦아지고 강해지고…, 64년 첫 딸 크리스티를 시작으로 2, 3년 터울로 이어진 임신과 출산이 프랜신의 발목을 잡았다. 시댁과 친정 어른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고, 가정폭력의 범죄성 인식조차 흐릿하던 때여서 경찰도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다. 프랜신은 점점 폭력의 일상에 길들여져 갔다. “처음엔 놀라고 상처도 받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점차 자존감도 사라져갔죠. 나는 겁먹어 움츠러든 짐승이었고, 도움을 청할 곳은 아무 데도 없었어요.”( washington post, 1980.11.5 )

일용직 건설 잡역부 미키는 일을 하다 말다 했고, 그나마 돈이 생기면 빵보다 술을 먼저 찾았고, 노골적으로 바람을 피워댔다. 부부는 71년 4월 이혼했다. 아이들과 먹고 살려면 그 수밖에 없어서, 이혼이라도 해야 복지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사회복지사의 권유에 따른 선택이었다. 프랜신이 말한 적은 없지만, 휴즈가 선뜻 이혼에 동의한 걸 봐선 위장 이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몇 주 뒤 미키는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다. 프랜신은 근 40일 동안 병원을 오가며 그를 간병했고 퇴원 후 집에 들여 수발했다. 다 나은 뒤로도 미키는 떠나지 않았고 폭행도 이어졌다. 휴즈의 하소연을 들은 복지사는 “발각될 경우 복지수당 사기로 기소 당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dailykos.com, 2014.9.15)

사건 무렵 프랜신은 아이들과 자립하기 위해 비서전문학교에 다니던 중이었다. 그날 만취해서 집에 온 미키는 늘 그랬듯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다짜고짜 프랜신을 폭행했고, 공부하는 책들을 찢어선 ‘네 손으로 태우라’며 프랜신에게 집어 던졌다. 차려놓은 식탁을 엎었고, 치운 음식물을 프랜신의 머리에 치덕치덕 바르며 다시 차려놓으라고도 했다. 경찰이 왔지만, 명백한 폭행 정황에도 불구하고 뻔한 말 몇 마디만 하고 돌아가 버렸다. 가정 폭력에 관한 한, 직접 폭력 장면을 목격하지 않는 한 가해자를 영장 없이 긴급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던 때였다.( timesdaily.com ) 프랜신은 경찰이 떠난 직후 미키가 했다는 말- “이제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야.(…) 정말 끔찍한 게 뭔지 보여주지”-을 프랜신은 재판에서 증언했다 .(WP, 2017.4.1) 그 발광 끝에 강간까지 한 뒤 미키는 골아 떨어졌고,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비열한 하루가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날, 긴 세월을 참고만 살던 프랜신은 아이들을 내보낸 뒤 혼자 기름통을 들고 2층 침실로 올라갔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게 만들었는지는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의도가 뭐였든 이혼이라는 선택이 허락한 짧지만 달콤한 해방감이, 새로 공부를 시작하며 느낀 자립의 희망과 자신감이, 또 그것들이 다시 짓밟힌 데서 받은 절망과 분노가 불길보다 격렬했을지 모른다.

검찰 출신의 관선 변호사(Arjen Greydanus)는 ‘정당방위’ 대신 ‘일시적 정신이상(temporary insanity)’을 변호 전략으로 택했다. 전남편의 폭력을 피할 곳도 의지할 데도 없던 여성이 살아남고자 벌인 일이라 말하기에는, 그의 판단으론 범행 정황이 너무 불리했다. 어쨌건 미키는 무방비 상태였고, 프랜신의 방화는 스스로도 자백한 바 충동적이긴 했지만 의도적이었다. 젠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여성 10명 남성 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을 기피신청 하지 않은 까닭도, 사건 자체가 너무 뻔하고 당시의 상식이 자명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재판 과정을 통해 가정 폭력의 참담한 실상이 아이들의 증언과 더불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무조건 도망을 쳐야 했다는 이야기, “어머니가 그를 죽인 건 자신과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였고, 그러지 않았다면 언젠가 우리가 죽었을 것”이라는 증언.( lansingstatejournal.com ) 페미니스트 단체의 열정적인 응원도 있었다. 법원 바깥에서 그들은 “미국 여성 10명 중 최소 1명이 남편이나 연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people.com, 1984.10.8 )

배심원단은 그 해 11월 3일 프랜신의 무죄를 평결했고, 검찰도 항소를 포기했다. 프랜신을 처벌을 모면한 살인자로 묘사(시사 주간지 ‘Time’)하거나 법원이 보복살인을 정당화했다고 비판(‘Newsweek’)하는 보도도 있었다. ‘여성살인자와 대중문화’라는 부제를 단 ‘The Murder Mystique(2013)’라는 책의 저자 로리 낼러퍼(Laurie Nalepa)는 살인사건에 연루된 여성에 대한 당시의 보편적 인식, 즉 순결한 희생자(victims, 명백한 정당방위)거나 ‘암여우(vixens, 교활한 범죄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난 첫 사례로 프랜신을 꼽았다. 저자는 프랜신이 ‘평범’한 배경을 지녔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고자 노력했고, 가족과 남편에게 끝까지 ‘성실(바람을 피우지 않았다)’했다는 점이 여론의 동정을 산 요소였다고 분석했다.

프랜신 휴즈의 사연을 다룬 1984년 미국 NBC TV영화 'Burning Bed' 포스터. 패러 포셋이 주연을 맡았다.

장미 꽃다발과 함께 “다시 필, 꺾인 장미에게(To a battered rose which blooms again)” 같은 격려 카드를 보내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에게 프랜신은 여전히 악녀였다. 미키 형제들은 프랜신에게 “다음은 네 차례”라는 쪽지를 보내기도 했다. 출옥 후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얹혀 살던 프랜신은 한동안 혼자 마트에도 못 갈 정도로 취약했고 공황발작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잠깐 술과 ‘스피드’ 같은 합성 마약에 의존하기도 했다고 그는 ‘people’ 인터뷰에서 말했다. 아이들도 고통 받았다. 학교에서는 놀림- “니네 집엔 놀러 안가. 네 엄마가 우릴 태워 죽일지 모르잖아”( WP, 1980 )-에 시달렸고, 12살이던 둘째 지미는 장기 심리 상담을 받아야 했다.

프랜신은 81년 컨트리 싱어였던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재혼했다. 그가 강도 혐의로 30년 형을 선고 받고 10년 만에 모범수로 가석방된 지 6개월 만이었다. 옥중에서 심리학을 공부해 학위까지 받았다는 윌슨은 프랜신의 ‘전력’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프랜신과 가족들이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people’ 기자는 썼다.

84년 초 ‘뉴요커’ 기자 페이스 맥널티(Faith McNulty)가 프랜신의 이야기로 ‘The Burning Bed 불타는 침대’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고, 10월 8일 NBC가 책을 각색해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방영했다. 톱스타 패러 포셋(Farrah Fawcett)이 프랜신을 연기한 그 드라마는, 그 해 대선(11월 6일 선거, 로널드 레이건 당선) 후보토론과 겹치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동시 시청자 1/3(alternet.org, 뉴욕타임스는 7,500만 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훗날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포크송 컬렉션 목록에 든 린 하디(Lyn Hardy)의 The Ballad of Francine Hughes’를 비롯, 마티나 맥브라이드(Martina McBride)의 ‘Independence Day’, 숀 콜빈(Shawn Colvin)의 ‘Sunny Came Home’ 등 노래가 만들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프랜신의 사연은 사건과 재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널리 알려졌고, 그를 가정폭력의 용감한 고발자 혹은 피해여성의 수호천사 같은 존재로 여기는 이들이 늘어났다.

프랜신-로버트 윌슨 부부는 책 선인세로 받은 1만1,000달러로 잭슨시 외곽에 집을 샀다. 부동산회사 비서로, 지게차 운전수로 일하던 프랜신은 “벼락부자가 된 줄 아는 이웃들의 눈을 피해” 테네시 주 윌슨으로 이사했고, 한 간호학교에 등록해 84년 1월 실습간호사(LPN, 일정교육 이수 후 면허를 얻어 간단한 자율간호와 간호사ㆍRN 감독하에 간호업무를 수행) 자격증을 땄다. 그는 말년까지 가정 노인간병인 등으로 일했다.

그 사이 사회도 조금씩 나아져갔다. 미 의회가 직장 내 성차별을 법으로 금지한 게 1965년이었다. 여성이 남편이나 아버지의 동의 없이 은행 대출이나 부동산 담보대출, 즉 경제적 독립의 최소 발판을 마련한 건 그로부터 10년 뒤였다. 가정폭력 사범에 대한 긴급체포 불가 관행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프랜신 사건과 재판 직후부터였다. 77년 당시 전국에 불과 몇 곳 안 되던(mere handful) 가정폭력 피난시설은 드라마가 방영되던 84년 무렵엔 700곳 가량으로 늘어났다.( NYT, 2017.3.31 ) 흑인 여성의 수난사를 그린 앨리스 워커의 소설 ‘The Color Purple’이 출간된 건 1982년이었다. 가정폭력 예방 및 처벌 강화 의회 청원운동이 본격화한 것도 80년대부터였지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여성대상폭력법(VAWA)’에 서명한 것은 1994년 9월 13일이었다. 그 법을 입안해 의회에 상정한 게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이던 전 부통령 조셉 바이든(Joseph Biden)이었다.

가정폭력에 대한 의미 있는 이슈들이 불거질 때마다 프랜신은 페미니즘의 한 상징처럼 호명되곤 했지만, 정작 그는 찬사도 관심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모든 과거를 잊기를, 세상으로부터도 잊히기를 그는 원했던 듯하다. 프랜신 부부가 이주해 살던 앨라배마 주 쇼얼스(Shoals)의 한 친구는 그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이 프랜신이란 사실조차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고 말했고(TimesDaily, 위 기사), 프랜신 부부의 입양 딸(손녀라는 보도도 있다) 몰리 역시 “10, 11살 무렵에야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몰리는 “프랜신은 그 일을 결코 자랑스러워하지 않았고, 정당화하지도 않았다. 얼마간 수치스러워했던 듯도 하다. 늘 자중하듯 산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Lancing State Journal, 위 기사) 84년 ‘피플’ 인터뷰에서 프랜신은 “사람들은 그들이 보고자 하는 식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싶지 않다. 동정도 연민도 필요 없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양녀의 말처럼, 프랜신은 과거의 기억과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피해 다니느라 썩 평온한삶을 살지 못했다. 투옥과 재판- 출옥 후의 방황, 이어진 재혼과 이사 등 사정이 겹쳐 그는 아이들, 특히 장녀와 내내 불화했다. 남편과 함께 간병 에이전시 사업을 잠깐 벌인 게 뜻대로 되지 않았던지, 말년의 그는 경제적으로도 궁핍했다. 그가 폐렴 합병증으로 숨진 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Go Fund Me’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장례비용 모금 캠페인을 벌였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지난해 말 통계 에 따르면 세계 여성 3명 중 1명(35%)이 생애 중성폭력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을 경험하며, 여성 살해범의 38%가 (전)남편이나 (전)연인이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 는 매 분마다 20명의 미국 여성이 친밀한 파트너 폭력(IPVㆍIntimate Partner Violence)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2001~2012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장에서 숨진 미군은 6,488명이지만, 같은 기간 IPV로 살해당한 미국 여성은 1만1,766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미국 아동청소년 지원 민간단체인 ‘Wingsprgram’은 매일 2만여 건의 가정폭력 호소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저 숫자들은 대부분 경찰이나 민간단체 등에 접수된 고소나 호소 사례에 근거한 데이터다. 미국 사법통계국(BJS) 분석에 따르면 2015년 현재 미국의 폭력 범죄 가운데 경찰이 파악하는 건 약 47%에 불과하다.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가정폭력은 아직 “집안 일이어서” 아니면 “남의 집안 일이어서” 고소ㆍ고발 비율이 현저히 낮은 범죄로 꼽힌다. 한국 여성가족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6 가정폭력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6%가 폭력 상황에서 “그냥 있었다”고 답했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2016년 ‘한국여성의전화’가 한국 여성 1명이 최소 1.9일마다 남편이나 애인으로부터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받는다고 발표한 건 , 2015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사례만으로 분석한 데이터였다.

새로 쓰일 여성 인권운동사에 결코 빠뜨려선 안 될 정치인 조 바이든은 2013년 4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 인권관련 정상회담에서 “이 행성의 모든 여성이 폭력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에 대해 말하지 않는 한, 인권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고 말했다 . 지난 1월 퇴임 직전 오바마 전 대통령의 깜짝 선물이던 ‘대통령 자유메달’을 목에 걸고 울먹이던 그를 보며, 따라 울컥한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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