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으론 의료비 역부족
천식 등 인정범위 확대 요구
지난 3월 기관절제술을 받은 뒤 목에 산소호흡기 꽂은 박영숙(57)씨는 이동형 침대에 누운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 1년만인 2008년 “숨이 안쉬어진다”며 병원을 찾은 그는 이후 열 두 차례 중환자실을 들락날락했지만 2013년 정부는 박씨에게 살균제와 연관 가능성이 낮다는 ‘3단계’ 판정을 내렸다. 폐 기능이 14%밖에 남지 않아 폐이식이 필요하지만 수술비만 8,000만원, 약값 등 병원비를 포함하면 최소 1억5,000만원 이상이 들어 망설이고 있다. 정부는 국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환자 중 박씨를 비롯한 세 사람에게 3,000만원씩 긴급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턱없이 부족하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1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인정 범위 확대를 촉구했다. 특별법이 시행됐어도 폐손상 3ㆍ4단계 환자와 천식환자는 여전히 공식 피해자가 아니다.
박씨와 더불어 긴급의료비 지원 대상에 선정된 안은주(50)씨는 2015년 폐 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항체거부반응이 생겨 3,4개월마다 한번에 1,500만원씩 드는 혈장교환술을 받아야 한다. 안씨는 “지원이 필요하지만 3,000만원 조차도 못 받는 분들이 많아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며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긴급 지원이 아니라 구제위원회가 피해자로 인정하고 ‘구제’ 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식 환자들은 특별법 시행 이후 10일 열린 첫 구제위원회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천식 피해 인정기준 마련은 미뤄졌다. 환경부가 “폐손상과 달리 의학적 관련근거가 약해 소송에서 패소할 우려가 있다”며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 1999년 산후조리원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천식에 걸려 18년째 약에 의존하고 있는 강은(48)씨는 “지난해부터 1년 넘게 천식 인정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조사를 했다는데 뭘 한 건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진상규명과 피해범위 확대를 약속했고 김은경 장관도 피해인정 단계를 폐지하겠다고 말한 만큼 환경부와 구제위원회는 피해인정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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