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성 기자

등록 : 2018.07.13 04:40
수정 : 2018.07.13 08:25

손열음 “어릴 때 즐겨 읽던 릴케ㆍ헤세…그땐 독일로 유학 갈 줄 꿈에도 몰랐죠”

등록 : 2018.07.13 04:40
수정 : 2018.07.13 08:25

[무슨 책 읽어?] <10> 피아니스트 손열음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그는 고향 원주 출신 오빠의 시집을 들고 나왔다. 신상순 선임기자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에서의 이름 ‘열음’. 게다가 성은 나 같은 김도 아닌 손. 엄마가 직접 지었다는 이 귀한 이름의 소유자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만났다.서른셋, 그 나이의 삼삼한 숫자가 간으로 배어 연주자로서의 성숙에도 깊음이 깃든 듯한 그녀는 무엇보다 활달한 웃음을 잘 내뱉는 이였다. 어머 진짜요? 어머 정말요? 추임새 끝에 보이는 반달눈의 유연한 허리. 손에 들고 있는 그게 뭐냐고 하니 시집이라고 했다.

김민정(이하 김)= “열음씨 음반들에 사인을 받아야지, 챙기다가 불현듯,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보니까 출간한 책이 있는 거예요. 어제 부랴부랴 사서 읽었어요.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요.”

손열음(손)= “으악 그걸 사셨어요? 어머 그걸 읽으셨어요? 너무 부끄러워가지고요. 근데 저한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드릴 수 있는데.”

김= “책은 사서 보는 겁니다요(웃음). 슬렁슬렁 읽으려는 자세였는데요, 도입부에서부터 자세를 고쳐 앉았지 뭐예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주제 파악을 잘하는 것’이라고 썼던데요.”

손= “저는 그거 되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상당히 방어적인 거죠. 어릴 때부터 나서는 일을 나대는 일로 안 데다가 낯가림이 엄청 심했어요. 과도하게 내성적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이다 싶을 만큼의 경외심이 컸어요. 전 피아노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잖아요. 아마도 엄마의 영향이 컸을 거예요. 엄마가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김= “열음씨에 대해 말하던 어머님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나요.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고, 결단이 느린 게 단점이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손= “엄마라면서 어떻게 저렇게 내 편을 안 들어줄 수가 있지, 싶을 정도로 엄마는 내게 단 한 번도 잘했다는 칭찬을 해준 적이 없어요. 늘 이거는 이랬고 저거는 저랬고 분석한다든가 사유하게 했어요. 그렇죠. 객관적이어서 참 좋은 리포터였던 건 맞아요.”

김= “핏줄인데 그런 역할을 해주는 사람 있는 거요, 그거 얼마나 큰 복인데요.”

손= “엄마가 35년 동안 국어 선생님을 하다 작년에 명예퇴직을 하셨는데요, 엄마는 나를 위해 당신을 희생한다는 식으로 저만 따라다니신 것도 아니어서 결과적으로 제 부담도 줄여주셨던 것 같아요. 웃긴 게 연애할 남자도요, 엄마의 성향과 닮은 그런 사람을 찾더라고요. 제게 매력이 없는 남자는요 무조건 제 연주를 두고 잘했어, 최고야, 그러는 사람이요. 왜 들키고 싶지 않은 지점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좀 지잖아요. 어떤 상황에서든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주는 그런 사람에게 끝내 지는 것 같아요, 저는.”

김= “엄마 덕분에라도 자연스럽게 책은 많이 접했겠어요.”

손= “말을 일찍 배웠어요. 한글도 네 살 때 다 쓸 줄 알았고요. 또래보다 몸집도 좀 커서 네 살 때 미술학원이랑 피아노학원에 갔는데 피아노학원에서는 안 받아주더라고요. 그래서 피아노는 다섯 살부터 했어요. 그 무렵 집에 저를 봐주던 언니가 있었거든요. 책은 그 언니가 읽어줬던 최초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김= “책이라는 게 처음부터 그렇게 좋던가요?”

손= “네, 무조건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처음으로 문학이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다 중2였나 중3이었나 학교 도서실에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빌려 읽었는데 엄청 강렬하더라고요. 너무 재밌는 거예요. 언어적인 것에도 엄청 끌렸던 것 같아요. 언어의 보고 같은 책이잖아요.”

김= “독서의 폭이 참으로 넓고도 깊군요. 합치면 별처럼 반짝이는 민초들을 본 거잖아요.”

손= “중학교 3학년 때 엄마가 권한 건 릴케와 마르틴 부버의 책들이었고요,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는 호기심에 제가 찾아 읽었던 건데요, 훗날 생각해보니까 다 독일어권 작가들이었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독일로 유학을 갈 줄은 꿈에도 몰랐었는데 말이죠.”

김= “전작을 다 읽었다 할 만큼 귀하게 여기는 작가가 있을까요?”

손= “토마스 만이요. ‘파우스트 박사’가 사실 음악 이야기잖아요. 감히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다음 생에서라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그런 생각도 한 적이 있어요. 독일어본이 번역본보다 훨씬 읽기 간단하다고 해서 작정하고 펼쳐본 적이 있는데요, 아 간단하구나, 하는 사실 그 자체는 알겠더라고요. (웃음) 정말 돌아가는 거 없이 딱딱 떨어지는 느낌이랄까요.”

김= “피아노는 그 가려진 속을 뜯어보면 더욱 냉정하기 짝이 없는 악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런 악기에 몸을 실었단 말입니다. 열음씨에게 피아노가 어떻게 처음 왔는지 궁금해요.”

손= “피아노는 사실 치고 있는 행위 자체가 되게 환상 같은 거거든요. 누르면서 날아가잖아요. 다른 악기들이나 노래들은 계속 음을 쥐고 있잖아요. 일찌감치 운동하듯이 피아노를 몸으로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피아노에 소질이 있다? 그런 건 잘 몰랐어요. 피아니스트가 되기에 피아노를 너무 못 친다, 그게 저에 대한 저의 지배적인 생각이었으니까요. 다만 피아노 앞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다른 애들은 잘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또 제가 원주 사람인데요, 당시 제 선생님이 원주에서 절대음감을 처음 보신 거예요. 이런 게 진짜 있구나 하신 거죠.”

김= “내가 피아노에 소질이 있구나, 하는 인정을 하긴 했을 거 아니에요.”

손= “중학교 갔을 때쯤이었을 거예요. 그전에 국내 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아마 당시의 기준으로 제가 잘 치는 학생이 아니었을 거예요. 입시나 대회의 기준에 따르면 한 음도 안 틀려야 하고 빠르기 조절 같은 것도 다 정해져 있다시피 했는데 전 따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열두 살에 차이콥스키 청소년 콩쿠르에서 2등을 하고 되게 의아했어요. 안으로의 내적 스케일이 크다고 한 심사평이 기억이 나요.”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때 연주하던 손열음. 1997년 청소년 대회 출전 뒤 다시 성인으로 이 무대에 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 “빤하지만 어쨌든 묻고 가야 할 질문이요, 좋아하는 작곡가들 얘기 말이에요.”

손=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좋은 건 모차르트요. 모차르트는 뭐가 있냐면요, 보통 영감이라는 게 사람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모차르트라는 사람은 천상에서 그냥 뚝 떨어진 느낌이에요. 천의무봉의 솜씨랄까. 또 슈만이요. 슈만은 되게 다른 향이죠. 어떤 사조에도 포함시키기 힘든, 정말이지 개인적인 언어를 창조했다 싶은 사람 같아요. 또 한 사람이 베토벤인데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그에 대한 개인적인 연민이 남들보다 적은 편이었어요. 만인의 연인인 것도 제 취향은 아니었고 타고난 기질도 제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요즘 부쩍 다가오네요.”

김= “음악을 일찍 시작한 만큼 슬럼프도 무시무시할 것 같거든요.”

손= “연주를 1년에 한 50회 정도 해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하는 편이고, 2주 정도 건너뛰면 많이 쉬는 거고, 연주 안 잡히면 불안하고 그래요. 사실 어릴 때는 피아노 생각만 했으니까요, 내가 이거 안 하면 뭘 하겠어,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니까요, 다른 건 절대로 못 할 걸 알았으니까요, 그냥 하라면 하는 거지 그러고 했거든요. 워낙 무대 체질인데다 진짜로 무대 위에서 떨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저는 무대만큼 편한 곳이 없어요. 정말 무대에만 오르면 수백만 볼트의 전기가 빠빠박 하고 와요. 근데 요즘은 피로할 때도 종종 있더라고요. 보통 공연을 저녁에 하니까요, 당일 아침이 가장 힘들어요. 지금 하지, 아 지금 하고 끝내는 거면 좋겠다, 저녁이 언제 오냐, 막 이러면서 온몸을 쥐어짜요(웃음).”

김= “피로하다더니! 이번에 제15회 평창대관령음악제 음악감독을 맡았잖아요.”

손= “하하 제가 원주를 좀 사랑하긴 하나봐요. 초등학교 때는 막연히 서울 아이였으면 좋겠다 꿈꾼 적도 있었는데요, 무서운 엄마한테 치이고 성적에 비관하고 연습량 어마어마한 서울 아이들 보면서요, 그들처럼 자라지 않았다는 데 일찌감치 안도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또 원주는 작잖아요. 그래서인지 고향에서 부르면 무조건 가는 것 같아요. 아, 연주자가 음악감독 하는 거요? 유럽에서는요 연주자들이 자기 고향의 음악 축제 같은 데 많이들 참석해요. 프로그램 짜고 음악가들 섭외하고 지금은 프로그램 책에 들어갈 글을 실컷 쓰고 있어요. 이거 리플릿 하나 드릴까요? 행사는 7월 23일부터 8월 5일까지 하는데요, 저는 공연 네 번 해요.”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위촉식장에 선 손열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 ‘”수요예술무대’ 사회자로도 나선다는 뉴스를 봤어요. 분명 일관된 행보 같아 보이긴 하거든요.”

손= “사람들이 음악을 좀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하는 욕구가 제게 있는 것 같아요. 피아노는 혼자 치잖아요. 그 감동의 파이를 공유한다지만 좁잖아요. 뭔가 이 파이를 확장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다가 제가 하노버에 살잖아요. 거리를 두고 한국을 보니까요, 우리가 참 잠재력이 큰 시장인데 외국에서 잘 알아주지 않는 것에도 막 분한 거예요.”

김= “하노버라……”

손= “하노버는 엑스포로 유명한 도시지요. 두 달에 한 번은 엑스포가 펼쳐져요. 거기 가면요? 그냥 가만히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해요. 글은 좋아하니까 뭐라도 읽으면서 심심하게 지내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요,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라는 임경섭 시인의 시집이에요. 경섭 오빠와 아주 친해요. 어렸을 때 원주에서 같이 컸거든요. 경섭 오빠 아버지가 음악 선생님이셨는데 제가 음악에 대한 기본 상식을 그분께 배웠어요. 오빠의 첫 시집 ‘죄책감’도 다 읽었어요. 이 오빠, 시를 쓰는 건 알았지만 정말 시인이 될 줄은 몰랐어요. (웃음) 어쨌든 원주가 느껴지니까 그걸 상상하면서 읽으니까 시집인데도 어렵지 않게 잘 읽히더라고요.”

밥 사길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인터뷰가 끝나자 밥 먹으러 가자고 외쳤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 “시집도 많이 읽는군요.”

손= “워낙 독일 시를 좋아했어요. 단연코 하이네겠죠. 쉴러도 고트프리트 벤도 읽긴 했는데요, 더듬더듬 원어로 시를 읽으니까 발음 자체에서 오는 더 예쁨, 더 좋음이 분명 있더라고요. 단어를 발음할 때의 리듬감이 번역으로는 잘 표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음악제 프로그램 북 때문에 처음으로 번역을 작정하고 해봤는데요, 영어나 독일어에 비해 한국어는 참 사무적이지가 않은 거예요. 대신 퍽 수사적인 거예요. 그런 의미로 한국어가 얼마나 문학적인 언어인지 깨닫고 있어요. 앞으로 시집 더 많이 읽으려고요.”

김= “외로움의 스밈, 그거 분명 있을 텐데요.”

손= “저는 항상, 주로, 혼자 있거든요. 그걸 너무 좋아하거든요. 보통 연주자들이 공연 끝나고 호텔에 돌아왔을 때 막 외롭다고 하잖아요. 스포트라이트 꺼졌을 때 무지 공허하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순간이 젤로 좋거든요. 나를 증명해내야 하는 순간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잖아요. 그렇게 새까매져야 스스로에게 새하얗게 돌아올 수 있는 걸 테니까요.”

김= “2018년 오늘, 피아니스트로서의 손열음에 스스로는 만족을 하시는지요.”

손= “노력의 방향성이 재능이고, 재능을 사수하는 게 노력인 거잖아요. 제 안에 그 둘이 팽팽한 균형을 잡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로 보자면 전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 맞고요. 맞다, 저 좋아하는 게 있는데요, 사람들에게 밥 사는 거요. 돈 개념, 아니 수 개념이 완전 없어서 그렇지 제가 사람 좋아하는 그 좋음의 개념은 있거든요. 우리 밥 먹으러 가요!”

김민정 시인ㆍ난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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