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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문건 공개로도 끝나지 않을 케네디 암살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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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문건 공개로도 끝나지 않을 케네디 암살 ‘음모론’

입력
2017.10.27 15:2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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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차량 뒷줄 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행진 차량에 탑승해 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차에 타고 행진하던 중 리 하비 오즈월드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케네디 대통령의 오른쪽에 앉은 인물은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 앞줄에 앉은 인물들은 존 코널리 당시 텍사스주지사 부부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차량 뒷줄 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행진 차량에 탑승해 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차에 타고 행진하던 중 리 하비 오즈월드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케네디 대통령의 오른쪽에 앉은 인물은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 앞줄에 앉은 인물들은 존 코널리 당시 텍사스주지사 부부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6일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공개한 미국 국가기록보관소 홈페이지 모습. AP 연합뉴스
26일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공개한 미국 국가기록보관소 홈페이지 모습. AP 연합뉴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즈월드가 피살된 직후 존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오즈월드가 과거 소련 대사관과 통화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음모론의 확산과 외교 혼란을 우려하는 메모를 남겼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 공개자료 캡처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즈월드가 피살된 직후 존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오즈월드가 과거 소련 대사관과 통화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음모론의 확산과 외교 혼란을 우려하는 메모를 남겼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 공개자료 캡처

“내 고민은 우리가 리 하비 오즈월드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진정한 암살범이라고 대중을 확신시킬 만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1924년부터 72년까지 무려 48년간 연방수사국(FBI)을 이끌며 막후에서 정부를 주물러 ‘밤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존 에드거 후버 FBI국장은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발생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암살범인 오즈월드가 암살을 저지른 지 불과 이틀 만에 경찰에 체포돼 호송 도중 잭 루비라는 인물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오즈월드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버는 니컬러스 카첸바크 당시 법무부 부장관과 함께 ‘오즈월드 배후에 누군가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의 우려대로 ‘케네디 암살 음모론’은 미국사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았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는 26일(현지시간) 1992년 제정된 ‘케네디 대통령 암살 기록 수집법’에 의거해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관련해 기밀로 지정된 문건 2,891건을 공개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음모론의 지지자도 비판자도 만족할 만한, 진범을 밝히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은 없었다. 대신 케네디 암살 전후 정보당국의 실패가 있었다는 증거나 소비에트 연방과 쿠바의 우려 섞인 반응 등은 확인할 수 있다.

공개 문건에 따르면 오즈월드는 케네디 암살 전부터 이미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소련ㆍ쿠바와 내통 혐의를 두고 감시한 요주의 인물이었다. 오즈월드는 1959년 러시아 여행 도중 소련에 망명을 요청했다가 정신 이상자 판명을 받고 거부당한 전력이 있고 1963년 범행 2개월 전에는 멕시코시티를 방문해 쿠바ㆍ소련 대사관과 접촉했다. CIA는 오즈월드가 소련 대사관에 연락을 취해 ‘서툰 러시아어’로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 공개요원과 대화한 기록도 도청했다.

FBI 동향보고에 따르면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직후 소비에트 연방의 한 지도자는 극우의 쿠데타를 의심하며 국가보안위원회(KGB)에 상세한 조사를 지시했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 공개자료 캡처
FBI 동향보고에 따르면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직후 소비에트 연방의 한 지도자는 극우의 쿠데타를 의심하며 국가보안위원회(KGB)에 상세한 조사를 지시했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 공개자료 캡처

그러나 소련과 쿠바가 오즈월드의 케네디 암살에 관여했다는 확증은 없다. 다른 문건을 보면 정작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외교로 해결한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하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FBI의 동향 파악 문건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 사건을 접한 소련의 한 지도급 인사는 “(미ㆍ소 화해외교를 반대한) 극우세력의 암살 쿠데타가 아니냐“며 KGB에 사건의 내막을 완전히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KGB는 나중에 케네디 사망 직후 대통령직을 계승해 가장 큰 ‘수혜자’가 된 린든 존슨이 케네디 암살에 관여했을 수 있다는 의심을 제기했다.

쿠바도 마찬가지였다. 쿠바 대사관을 관찰한 CIA 기록에 따르면 당시 주캐나다 쿠바대사는 케네디의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오즈월드가 미국 내 친쿠바 단체와 연관이 있는 인물이라는 정보를 얻자 케네디의 추도식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이 케네디 암살 배후를 쿠바로 지목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CIA 동향보고에 따르면 쿠바 정부는 주캐나다 쿠바대사에게 케네디 대통령을 위한 공식 애도기간이 선포된 후 “행복해 보이는 행동을 삼가라”는 훈령을 내렸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 공개자료 캡처
CIA 동향보고에 따르면 쿠바 정부는 주캐나다 쿠바대사에게 케네디 대통령을 위한 공식 애도기간이 선포된 후 “행복해 보이는 행동을 삼가라”는 훈령을 내렸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 공개자료 캡처

다른 문건에는 오히려 거꾸로 CIA가 미국 마피아를 고용해 당시 쿠바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마피아들을 처벌하기 힘들어진다”며 반대했다고 문건은 밝히고 있다.

CIA와 FBI가 오즈월드를 집중 감시했음에도 케네디 암살을 막지 못한 것은 일시적으로 그의 추적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당국에는 막판까지 오즈월드의 피살을 막을 기회도 있었다. 후버에 따르면 FBI는 오즈월드를 살해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접하고 당시 오즈월드를 붙잡고 있던 댈러스 경찰에 경호를 늘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이 이에 응하지 않아 루비가 오즈월드를 살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공개된 문건이 많은 이들이 기대한 ‘음모론 해소’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바이기도 하다. 버지니아대 정치연구소의 래리 서배토 소장은 미국 CNN방송에 “중요한 진실들은 숨어 있다”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미가공된 정보문건과 수많은 소문들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 대통령 전문 역사학자인 티모시 내프털리는 “암살 배후를 숨기는 것 같은 커다란 은폐는 없지만 정부 당국의 실패를 숨기려는 작은 은폐의 징후들은 보였다”고 평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건도 남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모든 문건 공개를 추진했으나 정부기관들이 국가안보와 법 집행, 정보 수집 등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면서 문건 300여개는 막판 공개가 보류돼 180일간 재검토에 들어갔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은 그 범인인 오즈월드가 범행 의도를 제대로 밝히기 전에 숨졌고, 그를 죽인 루비도 침묵한 채 감옥에서 사망하면서 온갖 억측을 유발해 왔다. 소련과 쿠바는 물론 후임 린든 존슨 대통령, CIA, FBI,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주전파(主戰派) 등도 배후 가능성이 있다고 지목됐다.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의 1991년작 ‘JFK’를 비롯해 여러 대중문화 작품들이 케네디 암살의 진범을 추적하는 내용을 다뤘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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