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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비친 세상] 학교 인근 당구장 됐다 안됐다 ‘고무줄 법원’

입력
2018.06.03 20: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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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및 보건위생상 나쁜 영향”

“건전 스포츠 인식 유해성 줄어”

허용여부 놓고 제각기 다른 판결

통학로 등 위치 제한 기준도 모호

“180도 다른 판결 법 안정성 침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그림 1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송파구 A중학교 인근에서 당구장을 개업하려던 배모씨는 생각지 못하게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교육환경법이 금지시설로 규정한 당구장을 학교주변 200m 내에서 운영하려면 해당 지역 교육지원청 심리를 거쳐야 하는데, ‘설립 불가’ 처분을 받은 것이다. 이에 배씨는 “이미 A중학교 인근에 수개의 당구장이 영업하고 있다”며 서울행정법원에 해당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소송에서 “당구장이 금연시설로 운영되고, 성인들만을 대상으로 영업하며 주통학로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학습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사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박형순)는 3일 그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구 자체는 건전한 스포츠 종목임에도, 당구 게임이 행해지는 장소 및 환경은 신체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학업 및 보건위생 측면에서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당구장에 출입하는 학생들이 흡연과 음주를 더 많이 한다는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전, 4개의 중ㆍ고등학교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설립 신청이 거부되자 당구장 업주가 낸 유사 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이 업주 손을 들어준 바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당시 법원은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 건전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며 “당구장 내에서 흡연이나 도박 등 비교육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는 당구가 가지는 본래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당구장의 유해성을 둘러싼 판단이 법관마다 달라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배씨 사건에선 “당구장이 금연시설로 지정됐음에도 흡연자를 위한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으므로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한 반면, 이씨 사건에선 “지난해 12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당구장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흡연을 통한 비교육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었다”고 봤다. 규제가 필요한 당구장 위치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지 않아 “주통학로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통학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이용” 등으로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유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재량이 이처럼 180도 달라질 경우 법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기태 변호사는 “명확하지 않은 법은 혼란을 야기하고,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거나 판결문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 관계자는 “당구장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사안이라 구체적 사안에 따라 결론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입법 취지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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