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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부터 메뉴판까지… 그 식당만의 이야기를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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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부터 메뉴판까지… 그 식당만의 이야기를 만들죠”

입력
2018.08.17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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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관련 기획ㆍ브랜딩이 업무 

 미쉐린 스타 ‘밍글스’ 등서 작업 

 “유행 트렌드 무작정 좇기보다 

 주인의 음식철학이 중요해요” 

국내 생소한 ‘푸드 콘텐츠 디렉터’란 직함을 가진 김혜준씨는 “제가 잘 하는 일은 맛집을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맛집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국내 생소한 ‘푸드 콘텐츠 디렉터’란 직함을 가진 김혜준씨는 “제가 잘 하는 일은 맛집을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맛집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1, 2년 후 한반도에서 유행할 외식 트렌드가 궁금하면 이 사람을 찾아가면 된다. 푸드 콘텐츠 디렉터 김혜준(38)씨. 제과제빵사, 교수, 작가, 대기업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쳐 3년 전 자신의 이름을 딴 ‘김혜준 컴퍼니’를 세우고 음식 관련 기획, 이벤트, 브랜딩 작업을 한다. 미쉐린 1스타를 받은 한식레스토랑 ‘밍글스’를 비롯해 역시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이탈리아 레스토랑 ‘톡톡’, 우유크림빵 열풍을 일으킨 ‘브레드 랩’ 등이 그의 손을 거친 가게다. 떡 연구가 신용일 셰프와 함께 동네 디저트 가게 제품을 소개하는 대규모 행사 ‘윈도우베이커리컬렉션’을 2009년부터 선보여 동네빵집 붐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 연남동 브레드 랩에서 만난 김혜준 대표는 “단순히 ‘우리 빵집 오라’고 홍보하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건 빵집의 일과와 갓 나온 빵의 향기 같은 빵집을 둘러싼 이야기”라면서 “그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저의 일”이라고 말했다. “식기 고르는 것부터 인테리어 공사, 메뉴판 디자인까지 식당에 관한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음식은 전문가가 만들지만, 가게 콘셉트에 맞게 계절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도 있습니다.”

김혜준 대표의 첫 직업은 프랑스 레스토랑 홀매니저. 딱 1년간 일한 후 ‘르 꼬르동 블루 숙명아카데미’에 입학해 제과를 공부하고 ‘나폴레옹 과자점’에 입사해 빵과 샌드위치를 만들고, 브런치 메뉴를 개발했다. “퇴사 전 1년 간 새 매장 개업 준비를 담당했어요. 가게 근처 부동산은 다 돌아다니면서 타깃 고객층에 맞는 가게 조건, 시세를 공부했고 홍보도 담당하면서 유명 빵 동호회도 알게 됐죠. 그때 경험이 지금 하는 일이 큰 자양분이 됐어요. 음식점은 인테리어, 제품 진열뿐만 아니라 상하수도 설치부터 매장 동선까지 총체적인 구상을 해야 된다는 걸 배웠거든요.”

김혜준컴퍼니 김혜준 대표. 고영권 기자
김혜준컴퍼니 김혜준 대표. 고영권 기자

빵 굽는 기술을 배웠지만 빵집에 취직해서 마케팅과 메뉴 컨설팅을 담당했던 김씨는 이후 2년 간 인천문예전문대 전임교수로 제빵 기술을 가르치며 자신의 진로를 고민했다. 그러던 차 맡았던 일이 샘표식품의 ‘글로벌 장(醬) 프로젝트’ 매니저. 학창시절을 미국에서 보내 “영어가 됐던” 김씨는 해외 유명 요리사를 초청해 우리나라의 염전, 시장, 사찰, 김치 명인 등을 소개하며 한국의 맛을 전하는 이 프로젝트에서 일정을 짜고, 요리사 의전을 담당했다. “시판 중인 콩 발효 천연조미료(샘표 ‘연두’)를 국내에서는 조미료로 분류하지만 유럽에서는 ‘장 소스’라는 개념으로 유명 식당, 심지어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도 써요. 콩 단백 특유의 묵직한 맛 때문에 ‘제 6의 소스(5대 소스는 브라운 소스, 벨루테 소스, 토마토 소스, 베샤멜 소스, 홀란다이즈 소스)’로도 불리죠.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해외 미식 트렌드와 국내 격차가 크다는 걸 깨달았고, 역으로 이런 흐름을 한국 외식 산업에 접목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씨가 새 음식점 브랜딩을 시작하면 자비 들여 해외 시장조사부터 하는 이유다. 올 상반기에도 일본, 스페인, 마카오 특구를 다녀왔다.

앞으로 유행할 식문화 키워드는 ‘영혼이 있는 공간’이란다. 일례로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도쿄 등지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티 바(tea bar)’는 젊은 미술 작가들의 작품과 여백의 미를 접목해 “얄미울 정도로 딱 떨어지는 일본적 분위기”를 통해 일본 젊은층에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 도쿄 북부의 숨은 동네 야네센(야나카, 네즈, 센다)은 게스트하우스 방문객에게 ‘현지인 맛집’이 표시된 지도와 대중목욕탕 입장권을 함께 나눠주는 ‘현지인 체험’ 이벤트로 인기 산책로로 부각됐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종이빨대와 재활용 가능한 식기를 쓰는 서브스턴스(substance) 레스토랑도 외식계 화두다.

“직업상 하루 한 끼 이상 반드시 외식을 하는데, 맛집 다니면서 알게 된 건 트렌드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콘셉트만 좋은 가게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주인의 음식철학, 좋은 식재료 선별하고 맛있게 만드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죠. 막 식당 시작하려는 분들께 항상 말씀드리는 게 ‘자신의 손을 믿으라’는 겁니다. 맛집을 찾는 분들께도 드리고 싶은 말이죠. 입소문 탄 식당이 맛집인지 궁금하면, 셰프의 손을 보세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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