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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등판일 아침식사는 아내의 소고기 뭇국 먹어요

입력
2018.08.01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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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박종훈은 상대 타자를 상대하기 전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가 내뱉는다. 그의 왼쪽 손목에는 팀 동료 서진용이 선물한 건강팔찌가 있다. 6월21일 삼성전 선발 등판 전에 서진용이 ‘팔찌를 차면 승리투수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실제 선발승을 거두자 그 이후 꾸준히 착용 중이다. SK 제공
SK 박종훈은 상대 타자를 상대하기 전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가 내뱉는다. 그의 왼쪽 손목에는 팀 동료 서진용이 선물한 건강팔찌가 있다. 6월21일 삼성전 선발 등판 전에 서진용이 ‘팔찌를 차면 승리투수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실제 선발승을 거두자 그 이후 꾸준히 착용 중이다. SK 제공

야구는 루틴과 가장 밀접한 스포츠다. 쳇바퀴 돌 듯 매년 같은 시기에 스프링캠프를 하고, 시즌을 치르고, 마무리 훈련을 한다. 시즌 중엔 월요일 하루를 쉬며 매일, 매일 경기를 한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선수에게 루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감독 출신 염경엽 SK 단장은 “시즌을 치러나가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망주 잠수함 투수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성장한 SK 박종훈(27)도 풀타임 선발 자리를 꿰찬 2016년부터 루틴을 지킨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당당히 태극마크를 단 그를 따라 루틴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보통 선발 투수는 팀이 5선발 로테이션을 돌릴 때 6일 간격으로 등판한다. 예를 들면, 이번 주 수요일에 선발 등판하면 다음 주엔 화요일에 나간다. 다만 화요일 등판 때는 4일 휴식 후 그 주 일요일에도 나가 주 2회 투구를 한다.

박종훈은 6일 간격의 선발 등판 준비를 위한 첫 날 홈 구장인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 오전 11시쯤 출근한다. 출근 시간은 선발 등판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똑같다. 박종훈은 “하루에 7~8시간은 자려고 한다”며 “경기가 늦게 끝나 식사하고, 경기 영상을 보면 새벽 2시쯤 잠들어 오전 10시 정도에 기상한다”고 말했다. 출근 이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상체, 고관절 운동을 두 시간 반 정도 한다. 오후 1시30분쯤 식사를 하고 쉰 다음 사이클을 30분 가량 탄다. 이후 가볍게 캐치볼을 하고, 보강 운동을 마치면 마사지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둘째 날은 훈련 강도를 높인다. 출근 후 웨이트트레이닝을 세게 한다. 전날 하체 운동을 덜했으면 하체까지 강도 높여 하고, 러닝도 많이 해서 몸 전체를 다운시킨다. 셋째 날은 가볍게 손목, 발목 보강 운동을 하고 거울 보며 모션을 취하는 연습인 쉐도우 피칭을 100~150개 정도 소화한 뒤 휴식에 초점을 맞춘다. 넷째 날엔 이틀 후 선발 등판을 위한 불펜 피칭을 15~20개 가량 실시한다.

박종훈은 경기 전날 매운 음식을 피하고 간이 안 된 음식만을 섭취한다. SK 제공
박종훈은 경기 전날 매운 음식을 피하고 간이 안 된 음식만을 섭취한다. SK 제공

그리고 등판 하루 전인 다섯째 날엔 매일 꾸준히 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가볍게 한 뒤 충분히 쉰다. 이날부터 식단 관리도 들어가 간이 안 된 음식만 섭취한다. 박종훈은 “매운 음식은 절대 안 먹는다”며 “바나나, 삶은 달걀 등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는 편”이라고 했다. 박종훈 외에도 많은 투수들이 등판 전날 음식을 먹는데도 루틴을 갖고 있다. 박종훈 동료인 메릴 켈리는 소고기를 챙겨 먹고, NC 로건 베렛은 햄버거를 먹어야 한다.

등판 당일 날은 긴장감에 예민해지는 편이다. 때문에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까지 지키는 루틴이 많다. 기상 시간은 평소처럼 10시다. 이날은 경기장이 아닌 집에서 식사를 한다. 등판 일에 꼭 먹는 음식은 아내 박나영씨가 끓여준 소고기 뭇국이다. 박종훈은 “와이프가 결혼(2016년 12월) 이후 여러 가지 음식을 해줬는데, 소고기 뭇국이 나하고 가장 잘 맞았다”며 “경기 날은 말을 안 해도 뭇국을 끓여놔 눈 뜨면 바로 밥 먹고, 딸이랑 30분 정도 놀아준 다음 30분을 더 잔다”고 설명했다.

출근 시간은 평소보다 늦은 오후 3시다. 운전을 할 때도 루틴이 있다. 운전대를 잡을 때 왼손으로 잡고 운전을 한다. 출근길도 야구장까지 바로 가는 길이 아니라 특정 편의점을 지나 조금 돌아간다. 그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는데, 시즌 초반 편의점에 들렀다 간 날 팀이 이겼다”며 “팀이 매일 이겼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그 편의점을 지나가는 길로 간다”고 웃었다. 또 이날만큼은 평소에 차지 않던 손목 시계를 착용한다. 경기장에 도착해서는 신발 끈을 왼쪽부터 묶고, 양치도 왼손으로 한다.

그는 신발 끈을 왼쪽부터 먼저 묶는다. SK 제공
그는 신발 끈을 왼쪽부터 먼저 묶는다. SK 제공

마운드 위로 향할 때도 그만의 의식이 있다. 박종훈은 그라운드 내 1루 라인을 넘기 전 주심에게 공을 받고 마운드에 올라간다. 심판이 공을 던져주기 전까지는 1루 라인에서 기다린다. 또 타자 한 명, 한 명을 상대하기 전엔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가 내뱉는다. 박종훈은 “이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제구가 더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심적으로 안정을 찾기 위해 하는 나만의 방법”이라며 “다른 루틴들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6월21 삼성전을 앞두고 팀 동료 서진용이 “이걸 차면 승리투수가 될 거야”라며 건네 준 건강팔찌를 차고 등판해 실제 5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를 따낸 다음부터 계속 팔찌를 착용한 채 마운드에 오른다.

그는 현재 루틴이 많이 줄어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혼 전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루틴을 갖고 있었지만 아내를 만난 뒤 ‘쓸 데 없는 행동’을 줄였다고 했다. 박종훈은 “와이프도 공연 쪽 일(비올리스트)을 하다 보니까 루틴과 관련한 공통 분모가 있었다”며 “원래 결혼 전 부모님을 경기장에 오시지 못하게 하는 징크스 같은 것도 있었는데, 아내가 ‘그런 게 어디 있냐. 세계적인 선수들도 가족 앞에서 잘하는데, 마음 편히 해보자. 나랑 있으면서 깨보자’고 했다. 이후 심적으로 안정되고, 성적도 좋아졌다”며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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