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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딸, 투사가 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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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딸, 투사가 된 엄마

입력
2015.10.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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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딸과 백화점 외출

승강기 5대나 보내고 진땀 탑승

동영상 찍어 유튜브에 올리자

"민폐·생떼" 충격적 댓글에 상처

무정한 세상에 맞서는 이야기

포털 독자 참여 뉴스에 연재

지난 18일 홍윤희씨가 휠체어를 타는 딸 지민이와 함께 리프트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역 계단 앞에 서 있다. 홍씨는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가 많이 확충됐다고 하지만 지하철역 승강기가 특정 출구에만 있어 길을 여러 번 건너야 하는 등 좌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 18일 홍윤희씨가 휠체어를 타는 딸 지민이와 함께 리프트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역 계단 앞에 서 있다. 홍씨는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가 많이 확충됐다고 하지만 지하철역 승강기가 특정 출구에만 있어 길을 여러 번 건너야 하는 등 좌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휠체어를 탄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도착한 승강기는 이미 만원. 승객들은 여자아이를 멀뚱멀뚱 바라본다. 이에 여자아이와 동행한 남성이 조심스럽게 “내려 주시면 안될까요”하고 요청해 본다. 머뭇거리던 두 명의 승객이 내리자 아이 엄마는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좁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휠체어를 힘겹게 밀어 넣는다. 지난 6일 호주 한인 동포 스티븐 박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아시안 보스’에 올라온 동영상 ‘장애인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의 한 부분이다.

영상의 주인공은 전자상거래 업체에 다니는 직장인 홍윤희(42)씨와 10살 딸 지민이. 지민이는 소아암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2급 지체장애인이다. 홍씨는 지난 8월 딸과 함께 서울의 한 백화점을 찾았다가 자리를 양보해 주는 이가 없어 엘리베이터 5대를 그냥 보낸 경험을 인기 유튜버(YouTuber)인 스티븐 박에게 전했고 우리의 배려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아시안 보스측과 이 동영상을 찍었다.

배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실험 동영상의 일부 댓글은 충격적이다. ‘장애인이 민폐를 끼치고 돌아다니며 생떼를 쓴다’ ‘한국을 비하한다’ ‘타인에게만 배려를 바라는 이기적인 사고’라는 등의 댓글에 큰 상처를 받았다. 홍씨는 “장애인을 ‘공존 공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 세상의 부담으로 느끼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 장애인을 대하는 한국사람들의 태도

홍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배려 없는 사회를 깨는 전사를 자임한다. 절실한 경험은 2011년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난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서 했다. 고장 난 리프트에 남겨진 지하철 당국의 안내문은 가관이었다.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났으니 휠체어 이용자는 다시 9호선을 이용해 동작역으로 가서 4호선을 타고 이수역에서 내려 7호선을 타라’는 것이다. 그는 “공공시설조차 배려가 없으니 장애인은 외출하지 말라는 뜻이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홍씨는 요즘 대중교통 이용의 어려움 등 딸과 함께 세상과 싸우는 이야기를 인터넷 포털의 독자 참여형 뉴스 서비스에 연재하고 있다.

홍씨 사례는 선진 한국을 떠들지만 배려는 박제 상태에 머물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가 경제성장에 집중하는 동안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문화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데 따라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홍씨는 “지민이의 유치원 학부모들이 동영상을 본 뒤 ‘우리 아이가 지민이와 어울리며 자란 덕분에 배려심이 남다른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는 감사 인사를 보내왔다”며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용기를 존중해 주는 주변 사람들의 의지와 말이 배려 사회를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이 기사는 갈수록 팍팍한 한국 배려 문화를 다룬 기획 시리즈의 세 번째 기사입니다.

규칙 지키기에만 급급해 양보가 줄어드는 현실을 다룬 '임산부 끙끙대도 배려석 보며 딴청만'을 보려면 여기(http://goo.gl/zPIBTD)를 누르시고, 외국인이 본 한국사회를 다룬 "맹인이 왜 밖을 돌아다녀"를 보시려면 이곳(http://goo.gl/dblrn0)을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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