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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간 톱 셰프들.. 광어를 이탈리아 소스에 쏙

입력
2017.05.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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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년째 열린 푸드 앤 와인 축제

국내외 유명 요리사 20명 참가

제주 곳곳 식재료 모아 요리 창작

#2

흑돼지에 폴란드 김치 곁들이고

말고기로 조선 설야멱적 재현

“한라봉 가장 부드러운 감귤” 극찬

“막걸리는 스파클링 와인-요거트 칵테일 맛"

이탈리아 셰프 마리아 송치니와 폴란드 셰프 알렉산더 바론이 17일 5일장이 선 제주 동문재래시장에서 말린 가오리를 살펴보고 있다.
이탈리아 셰프 마리아 송치니와 폴란드 셰프 알렉산더 바론이 17일 5일장이 선 제주 동문재래시장에서 말린 가오리를 살펴보고 있다.

바람, 돌, 여자가 많은 삼다도.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삼무도. 그런 제주에 세가지 보물이 있다. 자연, 민속, 언어.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제주편’에서 “그 세가지 보물을 모르면 제주도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썼다. 한가지, 음식이 빠졌다.

제주는 소박한 미식의 섬이다. 음식 맛도 조리법도 간결하다. 척박한 땅, 거친 바다에서 난 귀한 식재료에 함부로 손대거나 맛을 여러 겹 보태지 않는다. 식재료의 맛이 곧 제주 향토 음식의 맛이다. ‘제주’ 간판을 단 육지 식당에서 영 다른 맛이 나는 이유다.

제주 식재료를 맛보고 연구하러 국내외 톱 셰프 20명이 모였다. 2년째 열린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에서다. 사단법인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과 제주관광공사, 제주한라대학이 주관한 비영리 문화 행사다. 17일부터 나흘 간 섬 전체가 맛과 멋으로 달아 올랐다.

요리는 용기다

셰프들은 17일 아침 제주 식재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곳부터 찾았다. 5일장이 선 제주시 동문재래시장. 상인들의 인심은 넉넉했고, 셰프들은 겁이 없었다. 셰프들은 시장을 돌아본 2시간 내내 식재료를 거침 없이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았다.

서울 가회동의 한식 파인다이닝 ‘두레유’의 유현수 오너셰프가 제주 생고사리를 사고 있다. 유 셰프는 18일 제주 식재료 요리 시연에서 말고기 구이에 고사리를 곁들여 냈다.
서울 가회동의 한식 파인다이닝 ‘두레유’의 유현수 오너셰프가 제주 생고사리를 사고 있다. 유 셰프는 18일 제주 식재료 요리 시연에서 말고기 구이에 고사리를 곁들여 냈다.

민물 생선 요리 전문가인 이탈리아 셰프 마리아 송치니는 “생물과 말린 것을 가리지 않고 해산물이 이렇게 많은데도 신선한 냄새가 나는 시장은 처음 봤다”며 “말이 통하지 않아도 상인들이 웃으며 푸근하게 맞아 주는 게 인상적이다”고 했다. 송치니가 3대째 이어 받은 해산물 레스토랑 라 까빠나 디 에라끌리오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500㎞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 페라라에 있다. 테이블은 11개, 의자는 26개뿐이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없는 작은 식당인데도 15년 연속 미슐랭 1스타를 받았다. 송치니는 “해산물 본연의 풍미를 해치지 않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정직한 레시피가 비법”이라며 “자연 그대로의 맛을 지향한다는 점이 제주 음식을 닮았다”고 말했다. 수셰프로 동행한 송치니의 딸 엘렉트라는 “해녀들과 함께 제주 바다에서 직접 딴 전복을 즉석에서 회로 떠서 먹었다”며 “전복과 기름장, 소주가 잘 어울렸다”고 했다. 송치니와 엘렉트라가 사는 지역엔 전복이 나지 않아 이날 처음 맛봤다고 한다. 역시나 맛엔 국경이 없는 걸까.

송치니 셰프와 딸 엘렉트라가 한라봉을 맛본 뒤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셰프들은 “한라봉의 부드러운 단맛에 반했다”고 했다.
송치니 셰프와 딸 엘렉트라가 한라봉을 맛본 뒤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셰프들은 “한라봉의 부드러운 단맛에 반했다”고 했다.

셰프들은 한라봉을 극찬했다. 하와이 할레쿨라니 호텔 총괄셰프를 지낸 인도 출신 비크람 가르그는 “먹어 본 감귤류 중에 가장 부드럽게 달고 단 맛의 여운이 입에 오래 남는다”며 “샐러드에 쓰고 싶다”고 했다. 송치니 셰프는 “과즙은 많지만 맛이 신 시칠리아 레몬과 시지는 않지만 과즙은 적은 소렌토 레몬의 장점만 섞어 놓은 듯 하다”고 했다.

셰프들은 번데기와 어묵, 떡볶이를 파는 상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상인이 알려 준 대로 이쑤시개로 번데기를 찍어 망설임 없이 입에 넣었다. 발효 음식 전문가인 폴란드 셰프 알렉산더 바론은 “셰프가 식재료와 음식 앞에서 겁을 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로, 세상의 모든 먹거리에 도전해 봐야 한다”며 “번데기에서 달달한 꿀과 고소한 훈제 향이 난다”고 했다. 가르그 셰프는 어묵 국물을 맛보고 “공짜로 퍼 주는 수프에서 어떻게 이렇게 먹고 싶은 맛이 나는지 궁금하다”며 “술과 잘 어울릴 듯한 맛”이라고 했다. 셰프들은 장터 식당에서 고기 국수와 몸국, 순대를 안주로 제주 막걸리 몇 병을 순식간에 비웠다. “막걸리는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인 모스카토 다스티와 불가리아 요거트를 섞은 듯한 오묘한 맛이다. 첫 맛은 톡 쏘고 끝 맛은 부드러워 입에 붙는다.”

하와이 할레쿨라니 호텔 총괄 셰프를 지낸 비크람 가르그가 동문재래시장에서 파는 게장을 맛보고 있다. 그는 “훌륭한 술안주가 될 것 같다”라고 했다.
하와이 할레쿨라니 호텔 총괄 셰프를 지낸 비크람 가르그가 동문재래시장에서 파는 게장을 맛보고 있다. 그는 “훌륭한 술안주가 될 것 같다”라고 했다.

요리는 재료다

셰프들은 18일 본업으로 돌아가 조리대 앞에 섰다. 흑돼지, 말고기, 딱새우, 녹차, 감귤, 고사리 등 제주 식재료를 활용한 창작 레시피를 선보였다. 요리 시연장인 한라제주대학 컨벤션센터는 전국에서 몰려든 음식 애호가와 셰프 지망생들로 꽉 찼다. 바론 셰프는 흑돼지를 오븐에 구운 뒤 폴란드식 김치를 곁들였다. 양배추를 말린 청어로 발효시켜 담근 폴란드 김치는 푹 삭힌 묵은지와 식감과 맛이 비슷했다. 바론 셰프는 “돼지고기와 김치가 입 안에서 어우러져 내는 맛을 싫어할 사람이 지구상에 있겠느냐”며 “제주 흑돼지는 근육 사이사이에 지방이 많아 육즙과 향이 풍부하고 익힐수록 쫄깃해진다”고 했다.

폴란드 출신 알렉산더 바론 셰프의 흑돼지 요리.
폴란드 출신 알렉산더 바론 셰프의 흑돼지 요리.

한식 파인다이닝인 서울 가회동 두레유의 유현수 셰프는 조선시대 고서에 나오는 설야멱적(雪夜覓炙)을 말고기로 재현했다. 설야멱적은 눈 오는 밤 소고기를 화로에 굽다가 눈 또는 찬물에 담그는 과정을 반복해 육질을 부드럽게 만든 구이. 유 셰프는 “눈 대신 액화 질소를 사용해 고기 표면을 냉각시키는 레시피를 개발했다”며 “지방이 적은 고기를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말은 내장 이외의 부위엔 지방이 거의 없어 고기가 퍽퍽하다. 제주에선 다리 부위를 주로 육회나 초밥으로 먹었다. 유 셰프는 “말고기는 담백하고 스태미나에 좋다”며 “소고기, 돼지고기만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식재료에 도전해 보길 권한다”고 했다.

'두레유' 유현수 오너셰프가 말고기로 만든 설야멱적. 더덕 소스에 잣, 동충하초, 제주 생고사리를 곁들였다.
'두레유' 유현수 오너셰프가 말고기로 만든 설야멱적. 더덕 소스에 잣, 동충하초, 제주 생고사리를 곁들였다.

송치니 셰프는 자연산 광어를 포 떠서 기름에 살짝 구운 뒤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뜨거운 소스인 바냐카우다를 곁들여 냈다. 제주 마늘과 당근도 썼다. 광어 요리를 처음 해봤다는 그는 “달짝지근하고 식감이 좋은 생선”이라며 “식재료가 훌륭하면 소스와 양념은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셰프들은 요리 시연을 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요리 철학을 꺼내 보였다. 바론 셰프는 “음식은 에너지이고, 셰프의 의무는 그 에너지를 먹는 이에게 정성껏 전달하는 것”이라며 “결국 요리는 사랑이다”고 했다. 가르그 셰프는 “지금 내 앞에 놓인 식재료를 사랑하면 누구나 셰프가 될 수 있다”며 “셰프가 하는 일은 식재료를 서로 조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셰프 지망생들은 유 셰프에게 셰프가 되는 법을 물었다. 그는 “요리는 그 자체로 힘들기 때문에 즐기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다”며 “주방 경험을 직접 해보고 결정해야 후회가 없다”고 했다.

제주=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사진=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제공

이탈리아의 마리아 송치니 셰프가 만든 바냐카우다 소스를 곁들인 광어 요리.
이탈리아의 마리아 송치니 셰프가 만든 바냐카우다 소스를 곁들인 광어 요리.
에드워드 권 셰프의 제주 전복과 조개 쌈장 요리.
에드워드 권 셰프의 제주 전복과 조개 쌈장 요리.
이현희 셰프의 제주 녹차 에끌레르.
이현희 셰프의 제주 녹차 에끌레르.
비크람 가르그 셰프의 코쿰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인 광어 요리.
비크람 가르그 셰프의 코쿰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인 광어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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