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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프리모 레비(7월 31)

입력
2017.07.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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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가 1919년 7월 31일 태어났다.
프리모 레비가 1919년 7월 31일 태어났다.

이탈리아의 화학자 겸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M. Leviㆍ1919~1987)의 에세이 ‘고통에 반대하며’에는 ‘거미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짤막한 글이 있다. 레비는 자신에게 거미 공포증(Arachnophobia)이 있다는 고백과 함께, 특유의 관찰과 추론으로 그 원인을 적었다.

“모든 거미는 내게 완전히 부당하고 대단히 독특한 혐오감과 공포감을 준다. 나는 가능한 위해로부터 안전이 보장된다면 두꺼비도 지렁이도 쥐도 바퀴벌레도 달팽이도 심지어 전갈이나 코브라도 만질 수 있다. 하지만 거미는 절대 못 만진다. 왜일까?”

곤충들과 달리 다리가 여덟 개라서? 하지만 다리 한두 개 떨어진 거미라고 덜 무서운 게 아니며, 여덟 개가 여섯 개나 네 개보다 더 혐오스러울 까닭도 없다. 습성이 잔인해서? 사냥한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는? 더욱이 동물은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털이 많고 추해서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대체로 털을 사랑한다. 적어도 털 때문에 벌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추함의 용어는 인간의 솜씨에 국한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거미줄로 매복하는 음험함? 오히려 찬탄할 일이다. 거미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인이다. 일부 심리학자는 거미의 털을 성적인 의미로 상정해 그걸 혐오함으로써 스스로를 해방하려는 것이라거나, 거미줄(자궁)로 묶고 가두고 복종시키려는 적- 어머니의 상징으로도 설명한다. 하지만 유전적 기억설은 파푸아 뉴기니나 캄보디아, 코스타리카, 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거미가 전통 음식의 재료라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레비는 구스타프 도레의 ‘신곡’ 삽화 ‘아라크네를 보곤 즉각 공포증이 시작됐다고 썼다. 하지만, 그건 원인이 아니라 증상일 가능성이 있다. 인류의 3.5~6.1%가 아라크노포비아를 지녔다고 한다.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다. 파시스트 민병대에 붙들려 수용소로 이송되던 중 그는 어쩌면 철들고 첫 경험이었을 구타를 당한다. 그는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이것이 인간인가’)라고 썼다. 그는 11개월 만에 살아나왔고, 여러 권의 빛나는 책을 쓴 뒤 67세에, 끝내 알 수 없을 이유로 자살했다. 그가 살았다면 오늘(7월 31일)이 그의 98세 생일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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