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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안나 카레니나 방지 위해… 촘촘한 자살 예방망 구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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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안나 카레니나 방지 위해… 촘촘한 자살 예방망 구축을

입력
2018.06.25 23:50
수정
2018.06.30 11:0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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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 기획] ‘한국인은 불안하다’

④김민혁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대표작 ‘안나 카레니나’는 세계 명작 10선에 빠지지 않고 오른다. 이 소설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문장은 또 다른 명저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에 의해 인용되며 ‘안나 카레니아의 법칙’으로 알려졌다. 다이아몬드는 이 문장을 ‘우리는 흔히 성공에 대해 한가지 요소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중요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로 해석한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자살관련 행동을 보여준다. 죽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레빈’부터, 자살시도를 하지만 죽음에 이르지는 않은 ‘브론스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달리는 열차에 뛰어 들어 죽음에 맞이하게 되는 ‘안나 카레니나’까지.

우리나라에서 자살생각이 있는 사람은 500만명/년이고 자살시도자는 15만~30만명/년, 자살한 사람은 1,300여명/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살을 생각해도 시도하지 않도록, 시도는 했지만 사망하지는 않도록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있는 병원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시도자를 퇴원 이후에도 연락해 안부를 살피고 있다. 매주 15여명이 자살시도자가 내원하는데 이들이 자살시도에 이르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비슷하면서도 제각기 다른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

어떤 이는 우울증이 너무 심했는데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가 병이 깊어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어떤 학생은 친구들과 부모님과 너무 소통이 안돼 힘들어하다가 죽음을 택한다. 한 어르신은 돌봐줄 사람 없이 홀로 지내다가 아프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기도 한다. 즉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힘들어하다가 자살시도라는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자살예방에도 적용될지 모르겠다. 즉 우리 사회에서 자살 예방이 성공하려면 여러 요건이 다 같이 들어맞아야 한다. 적절한 정신의학적 치료, 촘촘한 사회복지, 가정ㆍ학교ㆍ직장 등에서 원활한 소통, 타인에 대한 관심과 공감능력 향상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자살 예방이라는 목표는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한 문장으로 돌아가본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가진 건강한 인간인 레빈은 자신의 목을 매지 않도록 끈을 숨기고 자신에게 총을 겨눌까 봐 총을 들고 다니는 것조차 두려워할 만큼 수 차례 자살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레빈은 스스로 목을 매지도 않고 총으로 자살하지 않은 채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가진, 건강한 사람이라도 인생길에 놓인 수많은 역경 앞에서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 순간, 우리가 ‘여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생명 존중 문화와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의학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시스템일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가 죽음을 선택했을 때 주변에 그녀를 도와줄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편도, 아이도, 형제도 심지어 애인까지도 곁에 없었다.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아무도 없을 때 자살 위험은 높아진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1인 가구 수는 가파르게 늘어 2019년에는 가장 흔한 가족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응급실에서는 혼자 왔다가 혼자 퇴원하는 자살시도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현재 전국 응급실에서 시행되고 있는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서비스’는 이러한 사람을 위해 사회적 지지망 역할을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조차 받기를 원치 않는 자살시도자도 40%에 이른다. 또 다른 안나 카레니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도록 우리는 이제 무엇을 더 해야 할까.

김민혁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민혁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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