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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 무대는 새벽 2시래”… 말도 탈도 많은 ‘사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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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 무대는 새벽 2시래”… 말도 탈도 많은 ‘사녹’

입력
2018.07.05 04:40
수정
2018.07.05 08:5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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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3사ㆍ케이블 음악 프로들

대부분 새벽 시간에 사전녹화

소속사는 앨범구매 증명서 등

팬등급 매겨 선착순 번호 배정

“방송사가 현장감을 원해서…”

“기획사들이 알아서 방청객 모아”

청소년들 새벽 사녹 참가 싸고

서로 책임 회피에만 급급

올 상반기 앨범을 내고 컴백한 인기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왼쪽 시계방향으로), 샤이니, 아이콘, 워너원. AP연합뉴스,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한국일보 자료사진
올 상반기 앨범을 내고 컴백한 인기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왼쪽 시계방향으로), 샤이니, 아이콘, 워너원. AP연합뉴스,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한국일보 자료사진

“5월ㅇㅇ일 아이돌그룹 ㅇㅇ 컴백 사녹 동행 구합니다. 경기도 살아서 막차 못 타면 첫차까지 밤새야 합니다. 같이 밥도 먹고 놀고 해요.” ”6월ㅇㅇ일 새벽 2시 시작하는 아이돌그룹 ㅇㅇ의 사녹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 ㅇㅇ동 공개홀에 3시간 일찍 도착. 입장 순번을 정하는 것만 두 시간째.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ㅜㅜ”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다. 아이돌그룹 행사에 대한 글이라는 건 알 만한데 ‘사녹’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사녹’은 방송사 음악프로그램 ‘사전 녹화’의 준말이다. 순위를 위주로 한 음악프로그램은 생방송이 원칙인데, 아이돌그룹의 바쁜 일정을 고려해 방송 분량 일부는 사전 녹화로 만들어진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사녹’이지만 요즘 방송가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방청객 대부분은 청소년들이어서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벽친구’를 찾아야 하는 팬덤의 현실

최근 복귀한 한 인기 아이돌그룹 A는 새벽 2시 서울의 한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사녹을 진행했다. 녹화시간 한참 전인 전날 밤 9시부터 공개홀 앞에는 팬 500명 가량이 모였다. 사녹에 선착순으로 입장하기 위해 몇 시간 기다리는 건 열성 팬들에겐 예삿일이다. 이날 입장 순번은 밤 11시부터 배정됐다. 이날 사녹을 볼 수 있었던 팬은 300명 내외. 200명 가량이 스타를 ‘알현’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언뜻 보면 먼저 온 사람 누구에게나 우선권이 주어지는 듯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팬 등급에 따라 ‘선착순 번호 배정 순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돌그룹의 팬들은 대개 1~5등급(혹은 6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등급별 기준은 이렇다. 신분증 지참 여부에 해당 가수의 소속사에서 지급하는 팬 카드와 해당 가수의 최신 앨범, 온라인 음원 구입 증명서(출력해서 지참)를 소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등급이 정해진다. 팬 카드가 있어야 1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고, 앨범이나 음원 구입만 하면 5~6등급으로 분류된다. 아이돌그룹A 사녹에선 1등급을 받은 팬들이 300명 가까이나 돼 2등급 팬들조차 입장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날 입장 순번 배정에만 2시간 넘게 걸렸다.

다른 사녹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새벽 6~7시에 이뤄진 아이돌그룹B의 사녹을 보기 위해 모인 팬들은 심야에 방송사 앞에 집합했다. 400여명이 모인 이날 사녹의 선착순 번호 배정은 새벽 3시쯤 끝났다.

심야나 새벽에 이뤄지는 사녹 때문에 ‘새벽친구’를 찾는 팬들도 다반사다. 지방에서 올라온 팬들은 오전 첫 차를 타기 전까지 밤을 지새워야 하기에 함께 있어줄 동료가 필요하다.

성인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10대 청소년들의 ‘새벽 사녹’ 참가는 사회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주부 이한솔씨는 중학생 딸의 ‘사녹 바라기’에 고민이 많다. 이씨는 “아이돌그룹 기획사가 사녹을 공지하고, 방송사는 굳이 새벽에 녹화를 잡으면서 어린 학생들까지 입장시키고 있다”며 “팬심을 이용한 횡포 같아 부모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방송사 생방송 시간 때문에” VS “기획사 팬 관리가 원인”

방송사의 횡포 또는 기획사의 갑질처럼 보이는 ‘새벽 사녹’은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

순위제를 도입한 음악프로그램은 컴백하는 인기 가수들에게는 2~3곡의 신곡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준다. 가수들은 이때 1~2곡 정도는 사녹, 나머지 곡은 생방송 무대로 꾸민다. 10여년 전만 해도 사녹은 방청객 없이 진행했다. 그러나 생방송이다 보니 방청객 호응 없는 무대는 활기가 떨어져 보일 수 밖에 없다. 방송사는 사녹에도 현장감을 담을 수 있으니 방청객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이돌 소속사들은 팬 서비스 명목으로 사녹 방청석을 팬들에게 제공하길 원한다.

하지만 생방송 시간이 점점 앞당겨지면서 ‘새벽 사녹’이라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SBS ‘인기가요’는 낮 12시 10분, MBC ‘쇼 음악중심’은 오후 3시 35분, KBS2 ‘뮤직뱅크’는 오후 5시, Mnet ‘엠카운트다운’은 오후 6시가 정규 편성시간이다.

사회문제화 될 여지가 있지만 방송사와 기획사는 책임을 회피한다. 기획사들은 “방송사의 생방송 시간 때문에 새벽 사녹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방송사를 탓한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사녹 공지나 팬 등급제에 대해선 “팬 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팬 등급제 등도 팬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라고 주장했다. 팬클럽에서 자체 기준을 정해 팬덤을 고취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사녹의 방청객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기획사들이 알아서 사녹 공지를 하고 방청객을 모은다는 주장이다. 기획사가 팬들을 초청하게 해도 자신들이 적극 나서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각 방송사의 음악프로그램 홈페이지는 생방송에 대한 방청 신청만 받고 사녹에 대한 공지는 없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새벽 사녹에 참석하는 팬들은 방송사와 무관하다”며 “새벽 사녹도 컴백하는 아이돌그룹이 많거나, 신곡 수 무대를 늘릴 때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밝혔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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