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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직접 찾아나선 출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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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직접 찾아나선 출판사들

입력
2017.12.01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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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두면 알아서 산다’

암묵적 약속 깨지면서

책 살 ‘진짜’ 독자 찾아 나서

축구선수 네이마르 평전을

축구장에서 판매하기도

‘독자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출판계 장기불황으로 인해 출판사들은 좋은 책을 만드는 것에 더해 독자를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독자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출판계 장기불황으로 인해 출판사들은 좋은 책을 만드는 것에 더해 독자를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리조아는 축구책만 내는 1인 출판사다. 올해 3월에 출간된 ‘K리그 직관 가이드’는 전국 축구장 12곳의 즐길 거리를 소개한 책이다. 2014년에 나온 ‘네이마르’는 ‘삼바 축구의 계승자’로 불리는 브라질 축구선수 네이마르의 평전이다. 빈민가에서 보낸 유년시절부터 브라질 축구의 별이 되기까지의 감동적인 일대기가 펼쳐진다. 이 책들이 과연 얼마나 팔릴까, 싶은 염려가 무색하게 그리조아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출간한 책들 중 한 권을 빼고 모두 중쇄를 찍었다. 한 번은 2시간 동안 50여권을 판 적도 있다. 책을 판 장소가 축구장이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수년째 계속되는 출판사들의 고민이다. 종이책 시대가 저물면서 그나마 있던 독자도 사라져 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책을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이 때문에 최근 출판계에선 ‘발견성’이란 말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과거 출판사와 독자의 만남은 서점에서 이뤄지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그 암묵적 약속이 깨지고 출판사가 독자를 찾아 나서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요즘 독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말한다. “독자를 연령, 직업, 사는 지역으로 분류해 관심사를 예상하고 책을 만들어 서점에 두면 독자가 사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죠. 그러나 인터넷 발달로 정보 비대칭이 완전히 해소되면서 독자들도 책에 대한 기호가 뚜렷해졌습니다. 출판사는 서점이 연결해주는 독자 말고 진짜 자기들의 책을 살 독자를 찾아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됐어요.”

요즘 출판사 편집자들의 고충은 책을 내고 나면 일이 끝나는 게 아니라 출간 후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출간소식을 알리고, 출판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이벤트를 하고,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의 책 소개란에 노출될 방법을 고민한다. 장 대표는 “출판사가 독자를 발견하는 비용이 너무 커졌다”며 “가능하면 독자를 미리 확보하고 책을 내는 모델이 매력적으로 떠오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올해 하반기 출간된 에세이들. 트위터의 영향력 있는 유저들이 저자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올해 하반기 출간된 에세이들. 트위터의 영향력 있는 유저들이 저자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트위터 같은 SNS를 특히 주목

파워 유저들을 저자로 섭외

책이 가벼워진다는 비판 있지만

“독자와의 연결점을 혁신해야”

독자를 미리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리조아처럼 단일한 소재로 계속 책을 내는 것이다. 김연한 그리조아 대표는 2년 전 잠실 주경기장에서 프로축구팀 이랜드FC의 제안으로 관객 입장 때 1시간, 경기 후 1시간, 총 2시간 동안 책을 판 경험을 이야기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축구도 좋아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이(축구책) 시장은 정말 마니아 위주입니다. 서점에선 한 달 동안 10권도 안 팔릴 때가 많지만 축구팬들 사이에 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김 대표는 “축구장 판매는 일시적 이벤트”라며 평소엔 페이스북과 인터넷 축구 관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책을 알린다고 말했다.

지난달 고양이 에세이 ‘히끄네 집’으로 교보문고 인터넷 판매 1위에 올라 화제가 된 야옹서가 역시 고양이책만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다. ‘히끄네 집’의 독자는 고양이 히끄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10만여명을 비롯한 전국의 애묘인들이다.

여러 SNS 중에서도 트위터는 최근 출판사들이 가장 주목하는 매체다. 9월에 출간된 ‘도대체’ 작가의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최지은 전 아이즈 기자의 ‘괜찮지 않습니다’, 8월에 나온 이다혜 씨네21 기자의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7월 김하나 카피라이터의 ‘힘 빼기의 기술’의 공통점은 저자가 트위터에서 수 천명의 팔로어를 가진 유저라는 것. “책이 출간됐다”는 트윗을 올리면 기본적으로 수 천회씩 리트윗 되는 이들이다.

위고, 코난북스, 제철소 등 1인출판사 세 곳이 협업한 에세이 문고 ‘아무튼’을 통해서도 여러 명의 트위터 유저가 첫 책을 낼 예정이다. 코난북스 이정규 대표는 “리트윗 수를 독자 수로 볼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저자가 출간이나 북콘서트 일정을 알리며 독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니, 특히 마케팅력이 없는 1인 출판사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출판사가 글 잘 쓰는 사람을 발굴하는 건 늘 있는 일이었지만, 최근엔 매체의 특성이 중요해졌습니다. 어떤 매체에 쓰느냐에 따라 저자가 어떤 태도를 갖고 있고 어떤 독자층에 소구할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판의 주체가 출판사에서 독자로 넘어가는 현상에 대해 ‘책이 너무 가벼워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장 대표는 “초연결사회의 근원적 변화로, 장단점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사실 출판사들의 바람은 좋은 책을 내면 독자가 알아서 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발견이 안 되면 소용이 없어요. ‘가벼운’ 책도, ‘무거운’ 책도 마찬가집니다. 책을 비롯한 모든 종이 매체는 콘텐츠 혁신이 아닌 독자와의 연결점을 혁신해야 하는 도전에 맞서고 있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초연결사회에서 출판사는 서점이 연결해주는 독자만으론 매출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SNS, 커뮤니티, 팟캐스트 등을 다양한 매체에서 독자를 확보하고 책을 내는 모델이 유력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초연결사회에서 출판사는 서점이 연결해주는 독자만으론 매출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SNS, 커뮤니티, 팟캐스트 등을 다양한 매체에서 독자를 확보하고 책을 내는 모델이 유력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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