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미국엔 매튜 셰퍼드 법, 한국엔 차별금지법

알림

미국엔 매튜 셰퍼드 법, 한국엔 차별금지법

입력
2016.06.20 16:43
0 0
12일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동성애자 클럽 펄스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난사가 발생한 후 미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발상지인 뉴욕의 ‘스톤월 인’ 앞을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12일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동성애자 클럽 펄스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난사가 발생한 후 미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발상지인 뉴욕의 ‘스톤월 인’ 앞을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세계 각국 정부가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금지하는 입법을 해 오고 있지만 이에 반하는 목소리나 행동도 더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12일 발생한 미국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사건도 마찬가지다. 무려 49명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테러 행위이자 증오 범죄” 라고 규정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뿌리깊은 혐오정서가 비극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본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동성애자 클럽 펄스는 지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하루 전날 서울에서 있었던 게이 퍼레이드에서도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축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반대에 적극 나선 세력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자’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취지의 법안에 반대하는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반대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집요했다. 이들의 반대를 뚫고 차별금지법이 미국에서 통과된 과정과 국내에서 지속된 좌절의 역사를 알아본다.

미국선 1998년 매튜 쉐퍼드 살해 후 11년 만에 법제화

인종과 피부색, 종교, 국적 등의 이유로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미국의 ‘증오범죄 피해자 보호법’은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 피살을 계기로 제정됐다. 그러나 여기서도 성소수자는 빠져 있었다.

그러다 한 사건이 발생한다. 1998년 10월, 와이오밍대 정치학과 학생이었던 매튜 웨인 셰퍼드(21)가 구타당한 상태로 라라미시 외곽의 한 울타리에 묶인 채 발견된 것이다. 그는 동성애 혐오자인 두 남성에게 폭행을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며 수술을 받은 지 닷새 만에 숨지고 말았다. 그의 장례식장과 재판정 밖에서는 일부 기독교 교인들이 반 동성애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고, 셰퍼드의 친구들은 하얀 천사 복장으로 그들을 에워싸는 ‘엔젤 액션(Angel Action)’ 을 벌였다.

매튜 셰퍼드. 유튜브 캡쳐
매튜 셰퍼드. 유튜브 캡쳐

1999년 와이오밍 주 의회는 성소수자를 포함시킨 증오범죄 예방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표결에서 부결됐다. 2007년 ‘매튜 셰퍼드법’이 상ㆍ하원을 통과했지만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기도 했다. 2009년 10월에야 오바마 대통령은 ‘매튜 셰퍼드-제임스 버드 주니어 증오범죄 금지법안’에 서명할 수 있었다. 제임스 버드 주니어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1998년 살해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이 법에서는 성별과 성 정체성, 성적 지향, 그리고 장애인이 포함됐다.

한국에선 차별금지법이란 이름으로 수 차례 제정시도가 이뤄졌다.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지난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시민단체회원들이 정부의 반인권적 여성대상범죄대책 전면 재검토와 차별금지법 재정을 요구 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지난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시민단체회원들이 정부의 반인권적 여성대상범죄대책 전면 재검토와 차별금지법 재정을 요구 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첫번째 시도 : 2007년 법무부의 입법예고

2006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1년여가 지난 2007년 10월 2일,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당장 기독교 단체들과 보수 시민단체들이 '성적 지향'을 문제삼았다. 거센 항의가 이어지자 법무부는 △병력 △출신국가 △성적지향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등 7개 항목을 삭제했다. 2006년 인권위안에 포함됐던 시정명령권과 이행강제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은 입법예고 당시부터 빠져있어 실효성 논란이 있던 참이었다. 결국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2008년 5월 17대 국회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두번째 시도 : 2010년 법무부의 특별분과위 출범

2010년 4월, 법무부에서는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출범시켰다. 10월까지 위원회를 운영하며 성적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0년 12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개신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는 “사회적 소수자 인권보호를 빌미로 ‘동성애차별금지법’과 같이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사상적 근간과 사회적 통념을 무너뜨리는 입법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결국 2011년 1월, 법무부는 “사회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원만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한 법 제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답변하며 사실상 제정을 포기했다.

세번째 시도: 2012년~2013년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

이번엔 법무부 주도가 아닌 국회의원들의 차별금지법안 발의가 이어졌다. 2012년 10월 유엔인권이사회가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 심의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냈다. 2012년 11월에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등 10명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2013년 2월 12일엔 민주통합당 소속 김한길 의원 등 51명이, 2월 20일엔 민주통합당 최원식 의원 등 12명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독교 보수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차별금지법 반대 1,000만명 서명운동’을 진행했고, 의원실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의원들뿐만 아니라 법안에 서명한 의원들까지 항의전화에 시달렸다. 결국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은 같은 날인 4월 24일 “차별금지법안의 취지에 대해 지나친 왜곡과 곡해가 가해져 합리적 토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안 발의를 철회했다. 김재연 의원안 역시 19대 국회가 회기 만료되면서 폐기됐다.

20대 국회, 차별금지법 제정 가능성은 ‘글쎄…’

지난달 30일 개원한 20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을까. 현재는 전망이 어둡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난 3월 초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공개한 ‘지속 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위한 핵심 젠더 과제’ 질의서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 입장을 보인 정당은 정의당과 노동당, 녹색당 뿐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처음부터 답변 유보 입장을 밝혔고 새누리당은 질의서 자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국민의 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에서 ‘유보’로 입장을 바꿨다. 3월 29일 국민의당은 홈페이지 브리핑을 통해 “한국여성단체연합에 보낸 답변은 실무자의 착오로 당의 공식 입장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국민의당은 이 사안에 대해 헌법에 기초해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이다. 유권자에게 혼선을 일으켜 유감”이라고 밝혔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펼쳐 온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나라 사무국장은 “기존 정치권이 반대 세력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며 “더불어민주당 등 주요정당은 이번 총선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도 넣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이 꽤나 성공적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민사회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주요 입법 과제로 등장했다. 지난달 강남 살인사건으로 드러났듯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정서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해결책 중 하나로 가장 근본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참여연대가 발표한 ‘20대 국회에서 우선 다뤄야 할 입법ㆍ정책과제’에서도 69개 입법과제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포함됐다. 나라 사무국장은 “지금으로서는 당장 법안 발의보다 거센 반대 세력을 거스르고 대응하면서 이 법안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지키려는 정치적인 의지가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워낙 반대론자들의 거짓정보와 왜곡이 많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금지법을 제대로 알리고 제정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최근에는 여성단체 등 다른 단체들과도 지난 18대, 19대 때 운영된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의 재가동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