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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잃고 ‘발라드 랩’? 왜 산이에게만 엄격할까

입력
2016.09.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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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힙합이 국내에 상륙한 지 20여 년 만에 주류 음악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대중화 과정에서 쌓아 온 노력과 실력에 비해 저평가되는 MC(래퍼)들도 생겨나고 있다.

자이언티, 지코를 사랑하지만 주석, 피타입을 모르는 새내기 힙합팬을 위해 준비했다. 여기, 새로운 라임(운율)과 플로우(흐름)를 개발하며 힙합의 발전을 끌어간 MC들을 소개한다.

산이는 데뷔 초 미국 유학파 출신 래퍼로 화려하게 포장됐지만, 사실은 경제적인 문제로 이민을 간 생계형 이민자였다. 산이의 아버지는 15년째 미국에서 고등학교 청소부로 근무 중이다. 사진은 산이 아버지와 산이. 브랜뉴뮤직
산이는 데뷔 초 미국 유학파 출신 래퍼로 화려하게 포장됐지만, 사실은 경제적인 문제로 이민을 간 생계형 이민자였다. 산이의 아버지는 15년째 미국에서 고등학교 청소부로 근무 중이다. 사진은 산이 아버지와 산이. 브랜뉴뮤직

누구보다 바쁜 MC가 있다. 힙합계의 MC로도, 방송계의 MC로도 쉴 틈이 없었다. Mnet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JTBC '힙합의 민족' 등 힙합 관련 방송에는 빠짐없이 얼굴을 비췄다. 음악 활동에 소홀한 것도 아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안주거리', ' 마치 비행기', '달고나' 등 세 장의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래퍼 산이(San E·본명 정산)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오버그라운드에 진출해 받은 사랑만큼 미움도 많이 샀다. 정통 힙합을 하던 언더그라운드의 MC가 자본 논리에 굴복해 대중가요를 지향한다는 화살이 쏟아진다. 산이가 지난해 4월 Mnet '4가지쇼 2'에 출연해 "사람들이 왜 나를 싫어하는지 안다"며 "돈을 벌려고 음악을 만든 건 아니다"라고 적극 해명할 정도다.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메이저 진출이 여느 때보다 활발한 지금, 왜 유독 산이에게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까.

1. 관대한 버벌진트, '랩 지니어스'를 발굴하다

당초 미국 애틀란타 유학파로 포장됐지만 사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 가족이 도망치듯 떠난 생계형 이민이었다. 경제적인 고충과 인종차별로 힘들었던 시기 그는 힙합을 위안 삼았다. 애틀란타에서 몇 차례 공연을 펼쳤고, 대학교 시절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힙합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했다.

대학교 졸업 무렵부터 제대로 음악을 해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산이는 '방구석 래퍼'가 됐다. 마이크와 녹음 장비를 구매해 작업물을 만들어 여러 힙합 관련 사이트에 올렸다. 아마추어의 랩이라 처음엔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래퍼 버벌진트를 디스(Disㆍ음악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한 곡 '재밌쎄요'를 발표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난데없이 공격당한 버벌진트가 "친구가 얘기해서 들어봤는데 솔직히 좀 놀랐다"는 댓글을 남기며 오히려 산이의 실력을 치켜세웠던 것. 2000년대 초반 버벌진트는 크루 오버클래스의 창립 멤버로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저명한 래퍼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버벌진트는 산이를 아예 오버클래스에 영입했다. 산이는 2008년 버벌진트의 정규 2집 '누명'의 수록곡 '2008 대한민국'에 참여하며 공식 데뷔했다.

래퍼 산이는 2010년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맛 좋은 산'으로 오버그라운드에 공식 데뷔했으나, 소속사와 음악적 이견을 문제로 중도 계약 해지를 했다. 사진은 '맛 좋은 산'으로 활동하던 시절 산이. 한국일보 자료사진
래퍼 산이는 2010년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맛 좋은 산'으로 오버그라운드에 공식 데뷔했으나, 소속사와 음악적 이견을 문제로 중도 계약 해지를 했다. 사진은 '맛 좋은 산'으로 활동하던 시절 산이.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버그라운드 진출의 야심도 키웠다. SM, YG, JYP 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에 믹스테입을 돌려 2013년 JYP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발탁되는 쾌거까지 이뤘다. 이 때부터 산이에게 '4050세대도 따라할 수 있는 쉬운 랩을 만들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전국 시장을 돌아다니며 한국 문화를 익혔고, 2년 뒤 발표한 '맛 좋은 산'에서 시장을 연상케 하는 친근한 컨셉을 구상했다.

2013년 3월 31일 만우절을 노린 장난인지, 진심인지 산이가 '노 모어 JYP'(NO More JYP)라 는 곡을 발표했다. "JYP 오해는 하지마. 절대 계약이 끝났다는 게 아니야. 이제 더 이상 회사 이름 아래 빌붙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JYP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듯한 가사였다. 한 달 뒤 음악적 이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는 JYP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중도 해지했다.

힙합 전문 기획사 브랜뉴뮤직과 계약한 후 산이의 프로듀싱 능력이 더욱 빛을 발했다. 2013년 '아는 사람 얘기' '어디서 잤어', 2014년 '한여름밤의 꿀' 등 사랑 노래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주류 가수 대열에 올랐다. Mnet '쇼미더머니'로 예능계에도 인상을 남겼는데, Mnet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 1,2의 진행을 맡아 MC 역량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4월 Mnet '4가지쇼 2'에 출연한 래퍼 산이는 자신을 둘러싼 음악적 정체성 논란에 대해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건 정말 사실"이라면서도 "돈을 벌려고 음악을 만들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제가 소위 돈 되는 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왜 '맛 좋은 산'을 낼 때는 돈 되는 음악을 안 했겠나"라고 토로했다. 사진은 지난 22일 한양여대를 찾은 산이의 모습. 산이 인스타그램
지난해 4월 Mnet '4가지쇼 2'에 출연한 래퍼 산이는 자신을 둘러싼 음악적 정체성 논란에 대해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건 정말 사실"이라면서도 "돈을 벌려고 음악을 만들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제가 소위 돈 되는 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왜 '맛 좋은 산'을 낼 때는 돈 되는 음악을 안 했겠나"라고 토로했다. 사진은 지난 22일 한양여대를 찾은 산이의 모습. 산이 인스타그램

2. 힙합이냐 아니냐 …정체성 논란

동료 래퍼와 오랜 팬 중에는 산이의 음악 성향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들도 있다. 산이의 음악이 힙합이냐, 랩이 가미된 대중가요냐를 두고 벌어진 갑론을박은 3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래퍼 비프리는 2014년 '마이 팀'(My Team)이라는 곡으로 산이를 디스했다. 산이가 '비프리의 곡은 대중이 잘 모른다'는 내용의 맞디스곡으로 대응했지만, 몇몇 동료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듯하다. 개인 SNS에 비프리의 곡명을 해시태그하며 은연중 비프리를 지지하는 행동을 보였던 것. 산이와 같은 소속사로 몇 차례 작업을 같이 한 래퍼 스윙스 역시 지난 1월 방영된 MBC '랩스타의 탄생' 에서 "(산이의 곡) 열 곡 중 한 곡은 힙합이고 아홉 곡은 그냥 그런(대중가요) 장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음악적 정체성을 떠나 그의 랩 실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산이는 정확한 발음과 깔끔한 플로우를 구사해 전달력이 뛰어난 래퍼다. 펀치라인(punch line·힙합에서 사용하는 언어유희)을 짜는 능력이 특출나다. "내 가친 너의 10배 난 세종 너는 이황"('랩 지니어스' 中), "불량식품처럼 니네 엄마가 싫어해. 근데 넌 자꾸 듣고 싶어해. 왜냐면 내 랩은 좀 쫀득쫀득 쫙 달라붙는 본드 본드"('산이 소개하기' 中)와 같이 재치 넘치는 표현을 즐긴다. 다만 사랑 노래를 발표하면서 특유의 익살맞은 펀치라인을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대중화된 프로듀싱으로 기존의 특색을 잃었다는 평도 나온다. 2008년 '산선생님'의 노래를 기억하는 팬들이 산이의 행보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유다.

● 믹스테잎 '재밌쎄요'

● 믹스테잎 '산선생님'

● 2009년 오버클래스 앨범 'Rap Genius'

● 2010년 '맛 좋은 산'

● 2013년 'Rap Circus'

● 2013년 싱글앨범 '어디서 잤어'

● 2013년 싱글앨범 '아는 사람 얘기'

● 2014년 싱글앨범 '한여름밤의 꿀

● 2014년 싱글앨범 'Body Language'

● 2015년 싱글앨범 '모두가 내 발아래' (비프리 디스곡)

● 2016년 싱글앨범 '달고나'

이소라기자 wtnsor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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