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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부산영화제가 '판도라' 만들었다?

입력
2016.12.1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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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도라'는 상영 9일만에 200만 관객을 모았다. NEW 제공
영화 '판도라'는 상영 9일만에 200만 관객을 모았다. NEW 제공

겨울 극장가 영화 ‘판도라’의 흥행이 눈에 띕니다. 지난 7일 개봉해 15일까지 212만7,356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았습니다. 개봉 뒤 9일 연속 일일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흥행세를 유지하고 있어 다음주 또 다른 겨울 화제작 ‘마스터’가 개봉(21일)하기까지는 흥행 가도에 큰 걸림돌이 없을 듯합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따른 국가적 재난을 소재로 한국사회의 고질을 되짚고 인간애의 가치를 새삼 부각시킨 점이 흥행몰이의 요인으로 꼽힙니다.

100억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김남길 김영애 문정희 등이 출연한 상업영화 ‘판도라’의 제작사는 CAC엔터테인먼트입니다. 영화인들에게도 좀 낯선 이름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설립된 지 3년 밖에 되지 않았고, 한국영화 제작은 ‘판도라’가 처음이니까요.

CAC엔터테인먼트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부산영화제가 2013년 2억원을 출자하며 회사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부산영화제에 소개하려 하거나 소개된 영화들의 한국 개봉을 돕는 게 주요 설립 목적 중 하나였습니다.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중 상당수는 빼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흥행 가능성이 낮아 국내 개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 개봉 통로가 확보되면 해외 수작들이 부산영화제를 더 찾게 될 테니 영화제 입장에선 꼭 필요한 회사입니다. 좋은 영화가 흥행까지 된다면 부산영화제 살림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습니다. 영화사도 기업이다 보니 돈 되는 사업을 찾았고 자연스레 영화 제작까지 겸하게 됐습니다. 부산영화제가 CAC엔터테인먼트의 지분 37%를 보유하고 있으니 부산영화제가 ‘판도라’ 제작에 관여돼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

'판도라'의 제작사가 수입한 프랑스 영화 '그랜드 센트럴'은 원자력발전소 노동자와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해 원전의 치명적인 위험을 묘사한다. CAC엔터테인먼트 제공
'판도라'의 제작사가 수입한 프랑스 영화 '그랜드 센트럴'은 원자력발전소 노동자와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해 원전의 치명적인 위험을 묘사한다. CAC엔터테인먼트 제공

CAC엔터테인먼트는 2013년 칸국제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베레니스 베조)을 수상한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를 비롯해 ‘그랜드 센트럴’, ‘커밍 홈’을 수입했습니다. 세 편 모두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입니다.

세 영화 중 ‘그랜드 센트럴’을 주목할 만합니다. 프랑스의 젊은 스타 레아 세이두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원자력발전소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원전에서 일을 하다가 방사능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고통, 언제 닥칠지 모를 사고에 불안해 하는 인물들의 정신적 방황 등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원전의 위험성을 깨닫게 됩니다. 방사능에 잠시 노출된 여성 노동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삭발을 하고 시간이 흐른 뒤 암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 등으로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우연하게도 ‘그랜드 센트럴’이 품고 있는 소재와 메시지는 ‘판도라’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두 영화는 여러모로 유사하나 ‘그랜드 센트럴’의 영향으로 ‘판도라’가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판도라’의 박정우 감독은 2012년부터 영화를 준비해 왔고, ‘그랜드 센트럴’은 2013년 만들어졌습니다.

부산영화제는 CAC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의 상영 여부를 두고 시작된 이른바 ‘부산영화제 사태’가 적지 않은 영향을 줬습니다. 국고 지원과 기업 후원이 줄어드는 등 안팎의 여러 변수 때문에 부산영화제 입장에선 여러 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부산영화제가 씨를 뿌린 격이라 할 수 있는 ‘판도라’의 흥행을 보면서 뒷맛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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