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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서는 안될 역사를 품은 공간, 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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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서는 안될 역사를 품은 공간, 소록도

입력
2017.11.2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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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소록도의 처연한 역사를 관광 자원으로 개발할 움직임이 있습니다. 자본은 세월이 담긴 공간을 팔기 위해 건축물을 화장하고 포장하고 수술할 준비를 끝냈습니다.”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역사문화전공 교수가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1916년부터 한센인을 강제로 이주시켜 수용했던 ‘소록도’의 보존과 재활용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움’에서다. 그곳은 오랜 시간 가치의 보존을 꿈꾸며 소록도가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 고민을 나누고 해결안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 모든 일은 소록도가 망가지는 것을 멈추게 만들고,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합리적이고 정당하게 소록도를 기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소록도 보존 작업. 최소한의 개입으로 기존의 건축물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보호하는 수준으로 진행했다.
소록도 보존 작업. 최소한의 개입으로 기존의 건축물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보호하는 수준으로 진행했다.

연륙교가 놓이며 이제는 섬이 아닌 섬이 된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반도 녹동항에서 남서쪽으로 400m 더 떨어진 지점에 있다. 소록도는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16년 설립된 자혜의원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강제 이주된 한센인들이 격리 수용되어 스스로를 치료하고 노동을 통해 마을을 만든, 일종의 수용소이자 식민 도시다. 해방 후에도 정부에 의해 같은 방식으로 유지됐기에 식민지와 군부 통치 시대로 이어진 한 세기에 걸친 역사의 기억이 생생하게 보존된 장소다.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하다' 1차 심포지움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하다' 1차 심포지움

지난 11일에 열린 첫 심포지움은 ‘소록도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앞서 진행한 두 번의 세미나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소록도가 지닌 가치와 의미를 되짚는, 이를테면 ‘진정한 보존과 복원의 정의, 사람과 장소의 기억, 소록도의 치유 디자인, 공간과 기억이 만나는 방식, 소록도의 유산적 가치’ 등을 넘나들며 쉴새 없는 숙의를 펼쳤다.

심포지움은 지난 5년 동안 소록도를 기록하고 보존해온 조성룡 건축가와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의 영상 발표로 시작됐다. 25분 가량 상영된 영상은 조성룡 건축가와 일행이 소록도를 돌아보고 세미나를 통해 논의하는 기록물로 심포지움에 모인 사람들에게 현재의 소록도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서생리 마을에 먼저 진행된 보존 작업은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개입만 했다고. 아직 어떤 방식으로 보존하고 복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성룡 건축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공적인 것 없이 그 안에서 순환되는 것 만으로 보존 작업을 진행합니다. 백 년이 넘도록 소록도 안에서 살아왔던 이들은 모든 걸 직접 만들고 손본 것들을 다시 활용하고 습니다. 가능한 모든 건물의 원상태를 유지하고 모자라 생기는 공백들은 굳이 억지로 채우지 않고 남겨 두고 있습니다.”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역사문화전공 교수는 소록도의 건축물들의 배치를 분석해, 소록도가 식민 도시이자 병점 기지 그 자체로 일제시대 식민 도시화의 기록이라 설명했다. 이는 마땅히 보존되어야 하는 역사적 기록으로, “그대로 보존하고 주민들의 주거 공간만을 보수하며 ‘길’을 통해 소록도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소록도의 유산적 가치는 세계 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는 조인숙 건축가, 공간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소록도의 가치를 되짚은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 등 소록도를 생각하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 됐다.

소록도에서 진행중인 건축물 보존 작업. 건축물이 더이상 무너지지 않게 보호하는 수준에서 진행됐다.
소록도에서 진행중인 건축물 보존 작업. 건축물이 더이상 무너지지 않게 보호하는 수준에서 진행됐다.

심포지엄에 모인 모두가 한 목소리로 ‘보존’과 ‘최소한의 개입’을 말했다. 건축물은 시간을 공간에 담는다. 사람보다 오래 남는 건축물은 기억의 매개체가 된다. 소록도의 집과 마을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일은 소록도를 기억하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다. 사람들은 떠나지만, 집과 마을은 삶이 기록된 저장소이자,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로 남을 것이다. 100년에 걸쳐 한센인들이 갇혀 지낸 소록도의 건축물은 역사의 기억이자 상흔의 징표로 보존해야 한다.

아직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소록도를 생각하는 모임’이 전라남도 끝자락의 소록도를 서울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소록도를 생각하는 이들의 진정성을 느끼고 싶다면 오는 11월 28일까지 서울 통의동에 위치한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 전시를 관람해보자. 25일 토요일에는 ‘근대 문화 유산의 보존과 활용’, ‘최대한의 고려, 최소한의 개입’, ‘소록도의 미래와 비전’ 등을 주제로 한 2차 심포지움이 열릴 예정이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며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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