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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랏돈은 쌈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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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랏돈은 쌈지돈?

입력
2016.06.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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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오뉴월이면 각 부처 공무원들은 이듬해의 정책추진과제를 기획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한 예산안을 짜느라 분주하다. 예산이란 일정기간 동안 정부가 어떤 정책이나 목적을 위해 얼마만큼을 지출하고 이를 위한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액수로 풀어 표시한 것이다. 예산을 뜻하는 영어 단어 ‘버짓(budget)’의 어원은 12세기경에 사용됐던 옛 프랑스어 ‘부제트(bougetteㆍ가죽으로 만든 작은 손가방)’에서 유래했다. 예산이 버짓으로 불리는 것은 영국의 재무장관들이 의회에 재정계획서(예산안)를 제출할 때 늘 작은 가죽가방에서 꺼냈기 때문이다.

어원을 찾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부제트는 불어의 원류인 라틴어 ‘불가(bulgaㆍ가죽가방)’에서 파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불가라는 원조어는 아일랜드 등 북유럽 일부에서 사용되었던 켈트어로 ‘부즈(bouge)’가 되었다가 이후 ‘버스(burseㆍ작은 주머니)’, ‘파우치(pouchㆍ돈지갑, 주머니에 넣다)’등으로 변화되었으며, 아주 소수 주장이지만 가방의 불룩한 모양과 연결지어 ‘버저(buzzerㆍ알림기)’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예산을 의미하는 버짓이란 단어는 현재 영어와 불어에서 같이 쓰인다.

우리 속담 중에 ‘쌈짓돈이 주머닛돈’이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한복에는 원래 주머니가 없어 오늘날 지갑과 같은 쌈지에 돈을 담아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그 쌈지는 유럽처럼 주로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한참 동서를 넘나들며 어원을 풀다 보니 나랏돈이나, 주머닛돈이나 쌈짓돈이나 어원이 한 통속이 돼버리는 것 같아 신기하고 재밌다. 짧게나마 공직을 맡아 보니 굳이 ‘목민심서’나 ‘김영란법’을 들추지 않더라도 국민의 혈세로 충당하는 예산을 얼마나 꼼꼼하게 편성하고 쓰임새 있게 사용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아울러 이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공직자들의 자세는 또 얼마나 엄중하고 청렴해야 하는지도 재삼 절감하게 된다.

저성장과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은 무거운 어깨의 짐을 내려놓고 싶어한다. 왜 그렇게 내고 또 내도 부족하냐고 다그칠 국민들의 모습이 선하다. 그럼에도 왜 실효성 없는 전시행정과 과시적 사업이 여전한지 아쉽기만 하다.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 정보공개와 고객만족도 등 투명성을 중요 평가요소로 삼은 까닭을 곰곰이 살펴봐야 한다.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도 결국은 국민들과 바르게 소통하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국가재정법’ 제100조에는 우리나라 국민 누구든 예산집행에 책임 있는 중앙관서의 장 또는 기금관리주체에게 불법지출의 증거 제출과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재정지출에 대한 국민의 직접적 감시권’이 보장되어 있다. 예산을 의미하는 단어 ‘버짓’이 ‘버저’와 어원이 닿아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민의 혈세인 ‘가죽가방의 돈’이‘주머니’나 ‘쌈지’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다 함께 감시하는 경고의 버저시스템이 필요할 거라는 탁견(卓見)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살기가 팍팍한 국민들의 예산낭비 경고음은 언제든 울릴 수 있는 상황이다. 국가재정 손실의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정책실명제’를 뒷받침할 법안제정요구도 있지 않은가.

SNS 등 사회적 미디어가 발달하고 비밀이 없는 시대에 예전처럼 대충 허투루 예산을 낭비하고 유착해오던 관행을 끊어내지 못하면 누구든 국민의 철퇴를 맞게 될 것이다. 일부 공직자들과 나랏돈이 쌈짓돈이라 여기고 이들과의 관계로 이득을 보려는 철없는 사업자들의 빠른 현실자각이 중요해졌다.

한국인터넷진흥원장 백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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