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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아이들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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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아이들도 안다

입력
2016.12.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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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말마다 열린 촛불집회에 몇 번 나가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저 아이들은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를 얼마나 알며,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런 생각 뒤에는 은연 중에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알까’라는 무시가 깔려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더러 자유발언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은 아이들의 이야기나 일부 인터넷 매체들의 현장 인터뷰 영상을 들어보면 화들짝 놀라게 된다. 아이들의 발언이라고 무시하기에는 날카롭기가 송곳 못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를 졸라 집회에 나왔다는 한 초등학생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잘못한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러다가 우리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했다. 충청도에서 올라왔다는 한 초등학생은 “인터넷에서 하야라는 말이 많이 나와서 나와 봤는데 사태가 훨씬 심각하다고 느꼈다”고 어른스런 소리를 했다. 다른 초등학생도 “지금 시국을 좋지 않게 보는 친구들이 많으니 이쯤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쓴웃음을 자아냈다. 발언자만 가리면 아이들의 의견이라고 선뜻 생각되지 않을 만큼 제법 의젓한 소리들이다.

물론 이런 발언들 속에 아이들다운 순수한 시각도 묻어 있다. 촛불 집회 광장에 선 한 초등학생은 “이 시간에 메이플스토리(게임) 하면 레벨이 올라간 텐데 이러고 있으니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저에게 자괴감이란 단어를 가르쳐 준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해서 모인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의 발언이나 행동은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소신과 주관이 뚜렷하다. 지난 6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참여해 ‘할머니는 당당하다’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그렇기에 촛불 집회 때 나온 방송인 김제동은 아이들의 자유 발언을 들은 뒤 “초등학생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아이들이 이토록 조숙한 것은 달라진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 어른들의 얘기를 귀동냥하는 것이 전부였던 아이들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세상 돌아가는 정황을 어른들 못지 않게 빠르고 정확하게 알고 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에 뜨는 단어들을 바로 찾아보고 관련 주제에 대해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단체대화방을 통해 또래들과 의견을 나눈다. 그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높이도 올라갔고 의식 수준도 높다.

얼마 전 만난 모 기업체 직원은 밥상머리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인 아들이 “국민들이 이렇게 원하는데 왜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고 계속 버티느냐, 아빠의 의견은 뭐냐”고 물어서 잠시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직원은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처럼 산타클로스가 정말 있느냐 같은 질문을 하지 않고 사드가 뭐냐, 왜 중국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느냐 등을 물어 아빠를 공부하게 만든다”며 웃었다.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을 보며 “제법 어른스럽다”며 “대견하다”고 웃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사실 어른들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어느 초등학생 말마따나 게임 해야 할 시간에 집회에 나오게 만든 박근혜 대통령은 특히 더 부끄러워 해야 한다. 대통령 뿐 아니라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 아이들 소견으로도 알만한 일을 벌여 놓고 그렇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를 떼는 사람들은 더더욱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달째 매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이어지는 촛불 집회에 참여해 보면 점점 아이들이 커 보인다. 미래가 밝다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과 부끄러움도 함께 커진다. 최연진 디지털뉴스부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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