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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한강ㆍ불꽃 투혼 이세돌… ‘올해의 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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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한강ㆍ불꽃 투혼 이세돌… ‘올해의 뜬별’

입력
2016.12.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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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우병우, 일그러진 엘리트의 표상으로

온 국민 웃긴 ‘막둥이’ 구봉서 하늘 무대로

되돌아보면 올해만큼 몰락한 인물이 많았던 해도 드문듯하다. 하지만 힘들고 화나는 일만 이어졌던 것 같은 나날들 속에도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인물들이 적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2016년 환하게 떠오른 별, 초라하게 진 별 그리고 역사의 저편으로 떠난 별들을 모아 봤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소설가 한강, 이재명 성남시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 이세돌 9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소설가 한강, 이재명 성남시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 이세돌 9단

뜬 별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영국에서 세계적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받고 남긴 수상 소감이 5월 새벽 한국에 전해졌다. 이 소감은 지구 반대편 시차를 배려한 인사로만 들리지 않았다. 문화계는 당시 블랙리스트 사태 등으로 암울했다. 그의 쾌거는 우리 문화계에 새로운 희망과 자극이 됐고, 채식주의자 미국과 영국 주요 36개 매체 중 11개 매체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며 한국 문학의 저력을 입증했다.

4월 치러진 20대 총선은 16년 만의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며 박근혜 정부 몰락의 서막을 알렸다. 이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제1당으로 이끈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다시 한번 선거의 달인으로 주목 받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두 번째 국회의장이 됐다. 12년 전 정 의장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발의를 저지키 위해 의장석을 점거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설마’의 상황으로 머물던 2년 전 처음으로 정유라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끈질기게 추적해온 안민석 민주당 의원도 올해 주목받는 별로 떠올랐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탄핵정국 잇단 ‘사이다 발언’으로 유력 대선후보가 됐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좌천당한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가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석파견검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윤 검사는 특검 수사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입증 수사를 맡고 있다. 박준영 변호사는 삼례슈퍼 살인사건 누명 3인조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이끄는 등 힘없는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재심 전문 변호사’로 추락하는 법조계에 등불이 됐다. 특히 돈 안 되는 변론에 메달리다 파산위기에서 몰렸으나, 독지가들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3억원 모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제계에서는 고래 대우증권을 합병해 1위 증권사로 도약하는 데 성공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돋보인다. 승진할 때마다 ‘고졸’이란 이유로 화제가 되는 LG전자 조성진 부회장은 명실공히 LG전자 사령탑에 올라 40년 한 우물을 판 집념의 기술인으로 자리매김했다. 3월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에서 1승4패를 기록한 이세돌 9단은 진지하고 성숙한 자세로 진정한 승자로 떠올랐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발의로 시작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4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9월 본격 시행되며 김영란 전 위원장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됐다.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당선 확률 5%’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지만, 그 만큼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그는 부자 과세, 최저임금 15달러 단계적 도입, 의료보험 범위 확대, 기후변화 정책 등 획기적인 정책으로 인해 ‘샌더스 열풍’을 일으켰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50년 넘게 이어진 내전을 종식한 공로로 201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80%가 넘는 지지율을 등에 업고 6월 당선된 후 돈키호테 같은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소설가 박범신,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총리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소설가 박범신,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총리

진 별

올해는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탱하는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진 한 해였다. 4월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의 변호를 맡다가 정 전 대표로부터 상해를 당해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흔히 벌어지는 전관예우 법조비리 중 하나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 사건의 불똥은 역시 정 전 대표 변호사였던 홍만표 전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튀었다. 검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에서 졸지에 전관 영향력을 사건 로비와 돈벌이에 이용한 인물로 전락한 홍 변호사는 ‘정운호 게이트’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홍 변호사 수사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변호사 시절 정식 수임계를 내지 않고 정 전 회장을 변론했다는 의혹으로 확산되며, 우병우 게이트의 문이 열린다.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이 표면화되면서 우 전 수석은 사법시험을 통과해 얻은 공적 힘을 사적으로 이용 권력과 돈을 동시에 움켜쥐면서도 별 죄의식도 없는 이 시대의 일그러진 엘리트의 표상이 되고 말았다. 한편 우 전 수석과 친분이 두터운 진경준 전 검사장은 재산공개 내역에 넥슨의 비상장 주식 매입을 통한 ‘120억원대 주식 대박’을 터뜨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김정주 NXC 대표의 자금으로 주식을 구입, 결국 공짜로 받았으면서도 해명 과정에서 거짓말을 일삼았다. 넥슨 주식은 뇌물죄 무죄 판단이 내려졌지만 다른 뇌물죄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틀을 만든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은 뒤늦게 대우조선 비리에 발목 잡혀 영어의 몸이 됐다. 현 정부에서는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등이 경제정책 지휘자가 아니라 비선 실세 청탁 해결사 노릇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나 국민을 실망시켰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운전기사에 대한 가혹 행위로 지난해 온 국민을 분노시켰던 갑질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도 7월 기자들과 저녁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고 파면됐다. 조양호 한진 회장에게 올해는 한진해운 사실상 청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사퇴 등 수난의 한 해였다.

문화계에선 원로 소설가 박범신을 비롯해 무려 40명의 예술가가 성 추문에 휩싸였다. 연예계에서도 박유천 등 한류스타의 추문이 이어졌고, 홍상수 영화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설로 구설에 올랐다.

해외에서는 지난 6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영국인들이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총리직과 의원직을 사퇴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가장 극적으로 진 별이다. 브라질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기대를 모았던 지우마 호세프도 정부 회계장부조작 혐의로 8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패하면서 사퇴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코미디언 구봉서, 신윤복 전 성공회대 교수, 이인원 전 롯데그룹 부회장,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코미디언 구봉서, 신윤복 전 성공회대 교수, 이인원 전 롯데그룹 부회장,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떠난 별

광화문 촛불의 민심은 이제 소위 ‘87년 체제’ 너머 보다 진전된 민주주의 체제를 원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군사독재에 목숨을 걸고 맞서며 ‘87년 민주화’를 실현한 큰 별들이 세상을 떠났다. 1월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가 타계했다.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갇혀있던 고인은 1988년 광복절 특별가석방을 받아 출소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묵직한 저서들을 발표하며 우리 시대의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5ㆍ18 민주화운동 최전선을 끝까지 지켰던 민주화의 큰 별, 조비오 신부가 9월 선종했다. 조 신부는 1980년 5월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고 이후 5ㆍ18기념재단 초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또 통일과 소외된 이들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박정희 독재 정권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의 거목 박형규 목사도 12월 운명했다. 박형규 목사는 이른바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것을 비롯해 전두환 정권까지 6차례나 투옥되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빈민선교와 인권 운동,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길 위의 목사’였다. 4ㆍ19 혁명 당시 학생운동 지도자로 시작해 제도권 정치인으로 민주화에 헌신해 온 이기택 전 의원은 2월 별세했다.

재계에선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사망이 충격을 던졌다. 신격호 총괄회장에 이어 신동빈 회장까지 2대에 걸쳐 롯데그룹 이인자로 일한 경영인이었다. 롯데그룹 비리 수사가 시작되고 검찰 소환일정이 잡히자 소환 하루 전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범LG가 마지막 1세대 기업인이자 정치인이었던 구태회 LS 명예회장은 5월 별세했다.

문화계에서는 막둥이라는 별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가 90세를 일기로 8월 별세했다. 국립극단 창단 멤버로 한국 연극사의 증인인 배우 백성희가 1월 세상을 떴다. 한국전쟁에 인민군으로 동원돼 포로가 됐다 풀려난 후 홀로 월남해 평생 남북 분단문제에 천착한 분단문학의 큰별 소설가 이호철이 9월 타계했다. 12월에는 전세계 유명 공쿠르를 휩쓸며 세계적 음악인으로 발돋움하던 31세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가 공연을 앞두고 돌연사해 음악계에 충격을 줬다.

해외에서는 피델 카스트로 국가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월 25일 90세로 삶을 마감했다.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은 그를 스승으로 여겼지만 일당 독재와 반대파 탄압으로 전제군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세기 최고의 복서이자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사회운동가 무하마드 알리가 지난 6월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현존하는 세계 최장기 군주였던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도 10월 13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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