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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국인이 불행한 이유

입력
2017.10.18 15:3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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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착취로 지탱하는 불안정 사회

무한경쟁이 휴식 없는 노동을 불러

이윤보다 행복 ‘사람중심 경영’ 중요

서울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등 의료진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기관 수는 OECD 회원국 평균의 3배 가까이 되지만,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신규 간호사 3명 중 1명은 박봉과 잦은 밤샘근무를 견디지 못해 1년도 안돼 이직한다. 외환위기가 몰고 온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은 노동 전 영역에서 낮은 급여와 휴식 없는 노동을 일반화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한국일보)
서울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등 의료진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기관 수는 OECD 회원국 평균의 3배 가까이 되지만,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신규 간호사 3명 중 1명은 박봉과 잦은 밤샘근무를 견디지 못해 1년도 안돼 이직한다. 외환위기가 몰고 온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은 노동 전 영역에서 낮은 급여와 휴식 없는 노동을 일반화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한국일보)

최근 1~2년 사이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머리카락이 조금만 웃자라도 지저분해 보인다. 그러니 갈수록 이발주기가 짧아진다. 숭례문 사무실 인근 이발소 세 곳을 다녀봤다. 계산할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발 노동의 가치가 너무 헐값이다. 세 곳의 이발료는 고작 6,000원, 8,000원, 1만원이다(할아버지가 지하1층에서 하던 6,000원짜리 이발소는 최근 재개발로 문을 닫았다). 20년 전 머리를 자르던 비용과 별 차이가 없다.

“이발사라는 직업은 변호사 직업과 똑 같은 가치를 지닌다. 모든 사람은 제 직업으로 제 살아갈 것을 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였던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소득재분배가 잘되는 서구 복지국가는 이발사와 변호사 노동가치에 큰 차이가 없다. 사무직 전문직 급여가 많아야 청소부 건설노동자 급여의 2~3배 수준이다. 사람 몸을 빌리는 노동과 지식노동을 모두 소중히 여긴다.

목욕탕에서 일하는 50대 이발사 A에게 수입을 물어봤다. 평생 이발로 가족을 부양했다는 그는 “20년 전 종로 목욕탕에서 일할 때보다 소득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이발 손님이 하루 10명을 넘지 못해 임대료를 제하면 월 100만원 조금 넘는 액수란다. 국세청 국감 자료를 보니, 소득 신고자 중 절반이 월 172만원 이하였다. 상위 10% 월평균 소득은 하위 10%의 72배나 됐다. A와 같이 몸을 쓰는 직업은 대부분 172만원 이하 구간에 있을 게다.

그 많은 알바 등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고 집배원 소방관 등 몸 쓰는 노동에 종사하는 정규직의 삶도 다르지 않다. 낮은 급여와 휴식 없는 노동에 신음한다. 7월 자살한 집배원 W는 살인적 과로에 시달렸다. 자살 전날 새벽 4시 반에 집을 나서서 밤 10시 반에 퇴근했다. 같은 시기 졸음운전을 하다가 7중 추돌을 일으킨 버스운전사 K는 사고 전날 19시간 가까이 일했다. 밤 11시 반까지 639㎞를 운행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또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간호인력난도 노동 착취의 한 단면이다. 우리나라 병상 수는 OECD 평균보다 2.37배 많은 반면,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2.29명)는 OECD 평균(7명)을 크게 밑돈다. 신참 간호사 세 명 중 한 명이 박봉과 잦은 밤샘노동을 견디지 못해 1년도 안 돼 이직한다.

한국사회는 유독 몸 쓰는 노동을 천대한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수록 경제적 보상이 박하다. 사농공상을 차별했던 유교문화와 노동을 억압하고 배제해 온 권위주의 정치 탓이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하층 노동자들 삶은 더욱 힘겹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 효율만 따지는 무한경쟁이 확산되면서 이들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더 줄었다.

정당한 대우를 못 받는 노동의 질이 양호할 리 없다. 월 130만원을 받으며 1분도 쉴 틈 없는 어린이집 교사가 애들에게 화풀이 안 하는 게 비정상이다. 밤늦도록 하루 19시간 운전하고 다음 날 새벽에 또 버스를 몰아야 하는 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하지 않는 게 비정상이다. 걸핏하면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간호사가 의료사고를 내지 않는 게 비정상이다. 대한민국은 몸 쓰는 노동자의 임금 착취로 지탱하는 비정상 사회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불행하다. 노동 소외를 지속하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생명이 경시되고 안전은 훼손된다. 세계 10위 경제규모에도 한국인 행복지수가 낮은 까닭이다. 이발사는 제 직업으로 제 살아갈 것을 벌 수 있어야 한다. 집배원은 자녀에게 “커서 집배원이 되어라”고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간호사는 병상에 누운 환자 손을 잡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여유를 가져야 한다. 방법은 있다.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윤보다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중심 경영’에 나선다고 한다. 제도적으로 소득 격차를 줄이든 세금으로 일자리를 지원하든, 그 부담은 우리 모두가 나눠 져야 한다. 나는 기꺼이 임금을 양보하고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테니.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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