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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중 FTA는 그저 돈인가

입력
2015.11.1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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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당장 비준하지 않으면 1조 5,000억 원이 손해라는 압박이 거세다. 얼른 비준해야만 12월 31일 전에 중국 관세 감축 1차년도를 시작하고, 내년 1월 1일에 다시 2차년도 감축을 또 시작해서 수출을 앞서 돈 만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중국 경제는 장밋빛 전망이 무색하도록 차갑게 식고 있다. 게다가 감축 1년 차에 관세를 즉시 없애야 하는 상품 숫자는 한국이 훨씬 더 많다. 4,125개 대 958개이다. 상품 개수가 아니라, 수입액을 기준으로 살펴도 중국측 수입액이 현저하게 더 많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산 기저귀나 화장품 등 중국에서 점유율이 높은 일부 제품은 한중 FTA 관세가 현행 중국 관세보다 더 높아 우스꽝스럽다. 예를 들면 한중 FTA에서는 한국산 기저귀에 중국이 7.5% 관세를 붙이는데, 중국은 이미 지난 6월 1일에 각국 기저귀 관세를 2%로 내렸다.

결국 당장 한중 FTA를 비준하지 않으면 1조 5,000억 원이 손해라는 이야기는 한국의 희망 사항이고, 매우 과장된 말이다. 1차년도 관세 즉시 철폐가 어느 나라에게 더 이로울 지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

한국이 중국과 FTA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화장품이나 기저귀 관세를 내리는 데에 있지 않다. 한중 FTA는 한국과 중국의 법치주의의 문제이다. 중국 모델은 중국이 선택한 중국 고유의 길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법치주의가 지향할 목표는 아니다.

한국 경제에는 더 합리적이고 투명한 중국의 법치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중국은 김치와 같은 비멸균 발효 식품에서도 대장균 기준을 적용하는 방법으로 한국산 김치의 중국 수출을 막았었다. 인삼이나 삼계탕도 마찬가지다.

지난 달 31일에 리커창 중국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의 회담을 위해 중국이 한국과 체결한 삼계탕 합의서를 읽어 보았는가? 삼계탕에 사용하는 인삼은 중국의 ‘신 자원식품 관리 규정’에 부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중국은 인삼을 ‘신 자원식품’으로 분류하고 하루 식용량을 3g이하로 제한했다. 결국 중국으로 수출되는 삼계탕에는 3g이 넘는 인삼을 넣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한국이 항상 더 합리적이고 투명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국영무역으로 수입하는 쌀을 보면 미국 쌀이 늘 중국 쌀 대비 일정 비율을 차지한다. 여기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입장에서 한중 FTA에서 중요한 것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법치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한중 FTA를 통하여 개선이 되어야 하는 중국의 현행 법령과 제도를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단위로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중국의 각 지방정부마다 보이지 않는 사실상 강제성을 띠는 표준들이 많다. 2011년의 미국 자료이지만, 강제성을 띠는 4,000여개의 산업 표준이 비공식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더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개선하도록 같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과연 지금 그럴까?

‘한중 FTA 관련 중국측의 법령 등 제ㆍ개정 사항에 대한 자료는 보유하고 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015년 11월 1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답변한 공문이다. 한중 FTA가 중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법령과 제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기초 자료조차 없으면서, 어떻게 올해 안 비준을 국회에 압박하는가?

이런 식으로는 반듯한 나라를 만들지 못한다. 한중 FTA는 매우 중요하다. 당장 비준하지 않으면 1조 5,000억 원 손해를 본다는 과장 광고로 덮고 가려는 정부는 참으로 게으르다. 이런 식으로 국회 탓하면서 FTA 10년을 허송세월 해도 공무원들은 좋은가?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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