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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 출신 섬 전문가, 짠내 밴 섬 희망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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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 출신 섬 전문가, 짠내 밴 섬 희망가 쓰다

입력
2016.04.2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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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걸요. 지리산 아래 산촌 중 산촌인 전남 곡성 출신입니다. 바다와는 전혀 거리가 멀죠. 처음엔 단순히 사회학 논문 소재로 섬을 찾았습니다. 도시연구, 문화연구 이런 게 유행할 때인데 지방 연구자다 보니 그런 걸 따라잡기도, 해내기도 힘들다 싶어서 남들이 안 하는 섬을 연구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1990년대부터 섬에 드나들다 정이 붙어버렸어요. 내 흥에 내 돈 들여 내 발품 파는 거라 고달프긴 한데, 아내도 섬에만 다녀오면 얼굴이 좋아진다 그러고(웃음), 저도 설레고. 나중에 마음 맞는 이들끼리 모여 갤러리나 도서관 같은 걸 갖춘 섬 공동체 같은 것 하나 만들어보고 싶네요.”

그 덕에 우리나라 섬들의 이모저모를 담은 ‘섬살이’(가지 발행)는 글과 사진이 알차다. 어쩌다 한번 가서 마주친 풍경을 그럴 듯 하게 읊은 게 아니라, 오래 드나들며 인연을 맺어온 사람만이 짚어낼 수 있는 사연과 사진들이다. 오랜 시간을 들인 공력은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찍은 인물 사진에서 빛난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시간과 발품이 쓴 책인 셈이다.

무엇보다 꾸미지 않아 좋다. 대안적 삶 운운하려면 뭔가 멋있어 보이기 위해 땀방울을 지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고단한 노동의 주름살이 파도처럼 밀려들고 짭쪼름한 땀냄새가 폴폴 난다. ‘삶과 죽음이 호흡지간’이라는 해녀들의 숨비소리, 유람선으로 둘러보는 홍도 관광에서 해설사들은 그냥 지나치는 미역채취구간 표시, 일일이 물을 뿌려가며 관리하는 곽전(미역밭), 아이들 학비에다 경로잔치와 단풍놀이 비용까지 책임지는 어머니들의 조새질 같은 것들이 매서운 바닷바람을 뚫고 들어온다. 여백을 바다처럼 써서 글과 사진을 맵시 있게 배치해둔 편집도 섬이란 주제에 어울려 뵌다.

그 외진 곳까지 가서 인터뷰하고 글 쓰고 사진 찍으려니 참 고생 많았겠다 싶으면서도, 책은 뒤로 갈수록 배신감만 안겨준다. 전남 강진 가우도에서 받아든 바지락 밥상, 전북 부안 위도의 곰소 젓갈 백반, 전남 신안 증도의 망둑어 밥상, 경기 안산 풍도의 나물밥상…. 대단한 식재료를 쓴 엄청난 요리가 아니라 섬마을 노인들이 자기들 먹던 대로 차려준 밥상일 뿐인데 무척 탐난다. “꼬막을 까서 소주 몇 잔을 마신 노인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깐 꼬막을 얹었다. 붉은 꼬막 핏물이 흰밥 위로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날 최고의 꼬막 비빔밥을 맛보았다.” 아주 약 올려 죽이려는 듯 설명 인심도 박하다.

이 정도면 고생 아니라 완전 호강 아닌가. “하하하 그러니까요. 섬이 불편한 건 에너지, 통신, 접근성 같은 문제 때문인데, 그건 기술이 발달하면 계속 좋아질 문제 아닙니까. 유인도 몇 개가 몇 년 내 무인도가 되네 마네, 하는 연구들을 가끔 보는데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의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김준 연구원의 말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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