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배우 김영애, 46년 연기인생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

알림

배우 김영애, 46년 연기인생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

입력
2017.04.09 14:01
0 0
‘국민 엄마’라 불렸던 배우 김영애가 9일 별세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민 엄마’라 불렸던 배우 김영애가 9일 별세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배우답게 마지막까지 연기를 하다가 무대에서 쓰러지고 싶다.”

배우 김영애가 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 말대로 살았다. 생이 서서히 사그라지던 순간에도 카메라 앞에 섰고, 자신을 오롯이 연기에 바쳤다. 마지막까지 연기 열정을 불태웠던 김영애는 9일 오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

김영애의 사인은 췌장암에 따른 합병증이다. 2012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대왕대비를 연기하던 도중 처음 이상 신호를 느꼈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기 위해 복대를 두르고 연기했다. 주변에 전혀 내색하지 않아 아무도 몰랐다. 드라마를 끝내고 독립영화를 찍던 중 병원에 실려갔다가 췌장암이란 걸 알았다.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건강은 호전됐다. 완치는 아니었다. 때때로 고통이 찾아왔다. 그래도 연기 열정을 내려놓지 않았다. 영화와 드라마를 바쁘게 오갔다. 영화 ‘변호인’(2013)과 ‘우리는 형제입니다’ ‘카트’(2014) ‘허삼관’(2015)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판도라’(2016), MBC ‘메디컬 탑팀’(2013) ‘킬 미 힐 미’(2015), JTBC ‘마녀보감’, SBS ‘닥터스’(2016) 등이 그가 투병 중에 출연한 작품이다. 그를 필요로 하고, 부르는 곳이 그만큼 많았다. ‘변호인’에서 시국사건에 연루된 아들을 둔 국밥집 주인 순애를 연기해 2014년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도 받았다. 청룡영화상 시상식 때 “매년 영화 시상식에 초대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제2의 전성기였다.

지난해 8월 KBS2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시작한 뒤 다시 병마가 덮쳤다. 병세가 가볍지 않았다. KBS, 제작사, 작가까지 모두가 말렸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미 시작됐다. 김영애는 “드라마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물리쳤다. 가족조차 어쩔 수 없었다. 지난 연말부터는 아예 입원한 상태로 촬영했다. 촬영 때면 진통제도 먹지 않았다. 정신이 맑지 않아 정확한 연기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영애와 25년 우정을 쌓아온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뜯어 말리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드라마만 완주하게 해달라’던 그 절실함을 꺾을 수 없었다”며 흐느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4회 연장됐지만 제작진은 김영애가 맡은 역할 최곡지가 남편과 지방으로 요양을 떠난 설정으로 대신했다. “원래 50회 출연계약만 맺었다”며 김영애를 배려했다. 제작사 관계자는 “종방연에라도 모시려 했지만, 복수가 찬 쇠약해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셔서 종방연 전날 감사패만 드렸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 ‘로열 패밀리’(2011)와 ‘해를 품은 달’ 등에서 함께 일한 김도훈 PD는 “중년 여성 배우로서 모성애뿐 아니라 강인한 카리스마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였다”면서 “3주 전 병문안 때만 해도 ‘다음에 딱 세 작품 더 함께 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되니 너무 애통하다”고 말했다. 김영애는 드라마 50회 완주를 앞둔 무렵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연기를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덕분에 좋은 연기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을 예감한 작별 인사였다. 1971년 데뷔 이래 이미 명배우였음에도 오직 배우이기만 갈망했던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1일.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 메모리얼 파크.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2011년 MBC 드라마 ‘로열 패밀리’에서 특권의식을 지닌 재벌가 회장을 연기하며 어머니나 할머니 역할에 한정되던 중년 여성 배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2011년 MBC 드라마 ‘로열 패밀리’에서 특권의식을 지닌 재벌가 회장을 연기하며 어머니나 할머니 역할에 한정되던 중년 여성 배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2012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촬영을 마치던 무렵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이후로도 김영애는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열정을 불태웠다.
2012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촬영을 마치던 무렵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이후로도 김영애는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열정을 불태웠다.
영화 ‘변호인’에서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의 단골 국밥집 주인 순애 역을 맡아 시국사건에 연루된 아들에 대한 절절한 모성애를 연기해 관객을 울렸다.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영화 ‘변호인’에서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의 단골 국밥집 주인 순애 역을 맡아 시국사건에 연루된 아들에 대한 절절한 모성애를 연기해 관객을 울렸다.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영화 ‘카트’에선 해고된 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에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한 강순례를 연기했다.
영화 ‘카트’에선 해고된 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에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한 강순례를 연기했다.
김영애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KBS2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에 마지막까지 참여했다. KBS 제공
김영애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KBS2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에 마지막까지 참여했다. KBS 제공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