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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권력은 왜 역사를 장악하려 하는가

입력
2017.06.0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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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ㆍ 보좌관 회의 중에 스스로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고대 가야사의 연구와 복원 사업을 국정과제에 꼭 포함”시켰으면 한다는 것이다.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고구려ㆍ 백제ㆍ 신라에 몰려 있다 보니 가야사 연구가 상대적으로 소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야사가 현재의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를 아우른다면서, 가야사 연구 복원이 “영호남 간의 어떤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는 지시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언론은 새 정부와 밀월 기간이다.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의 적폐 가운데 하나는 권력자 스스로 역사가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역사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냉전 시대의 유산인 반공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맞지 않는다고 여긴 수백여 곳을 멋대로 뜯어고쳤다. 이에 많은 저자들의 반발과 소송이 있었다. 그 뒤를 따른 박근혜 정권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면서 전문 역사가가 아닌 ‘뉴라이트 필자’들을 동원한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에 통과 시켰다.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 채택이 거의 전무한 지경에 이르자, 박근혜 정권은 검인정 강화를 포기하고 아예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 버렸다.

문 대통령이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가야사 연구 복원은 물론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이 모의했던 ‘역사 쿠데타’와는 성격이 다르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가야사 연구 복원 사업이 선의에서 비롯한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기회에 권력은 역사와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최선인가를 점검해 보는 것은 유익하다. 가장 먼저 읽어볼 책은 심용환의 <역사전쟁>(생각정원,2015)이다. 안성맞춤으로 이 책은 ‘권력은 왜 역사를 장악하려 하는가?’라는 부제를 가졌다.

역사학은 인류가 발전시킨 최초의 학문 가운데 하나며, 원래는 정복자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 발전시킨 기록주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던 역사학은 근대에 들어서며 국가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담보하는 학문이 된다. 그런 점에서 역사학은 군주나 왕조에 종속되었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났으나, 역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드러내고 싶은 권력은 여전히 “역사학, 역사교육, 역사교과서를 그들의 의도대로 재구성”하고 싶어 한다. 그럴 때 마다 역사 교과서는 정치권력의 제물이 된다.

세계 각국의 역사 교과서는 세 가지 모델로 구분된다. 서구형 모델은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물론 역사교과서 자체가 국가의 통제에서 자유롭다. 그 결과 역사 논쟁은 학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해석의 다양성이 가져오는 깊은 역사논쟁이 가능해 진다. 교육 시스템 전반을 국가가 담당하고 있는 한국ㆍ중국ㆍ일본 등의 국가에서 지배적인 동아시아형 모델 역사 교과서는 검정제다. 검정 이전의 집필 자유가 보장된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것 같은 착시를 부르지만, 검정 통과를 위해 국가의 지도와 수정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검정제 역사 교과서 역시 권력의지를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김씨 일가 우상화가 유일한 준칙인 북한형 모델은 최악의 역사 교과서이자 역사학이 처음 생겨난 기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재야 역사관 추종 의혹”을 반박하면서, “확실히 싸워야 할 문제가 있으면 싸우겠다”고 말한다.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가야사 연구자가 아니다. 그가 확실하게 싸워야 할 적폐는 검인정 역사 교과서다. 심용환은 역사 교과서 편찬 작업은 보통 일이 아니라며, “작업 기간을 보통 10년 정도”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가야사가 단 몇 년 만에 검정제 교과서 안에 자리 잡게 될지 궁금하다. 참고로 가야사에 대한 필독서로 김현구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창비,2010)를 추천한다. 어느 역사가의 악의적인 오독과 달리, 이 책은 야마토 정권이 임나일본부를 경영했다는 <일본서기>를 조목조목 공박하고 있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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