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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저지에 밀려...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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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저지에 밀려...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무산

입력
2017.10.31 16:3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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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조선통신사’

3건은 세계기록유산 등재

전남 함평군 대한민국 함평 국향대전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함평군 제공
전남 함평군 대한민국 함평 국향대전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함평군 제공

한국과 중국 등 9개국에서 공동으로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보류됐다. 유네스코가 막대한 분담금을 내세워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적극 저지해 온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보류(postpone)한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지난 24~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제13차 회의를 열어 기록물의 가치를 심사했다.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당사자간 대화 필요’를 이유로 보류를 결정했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은 위안부 운영 사실을 증명할 사료와 위안부 피해자 조사 자료, 치료 기록, 피해자의 상세한 증언 등 총 2,744건으로 구성됐다. 앞서 중국은 단독으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를 신청했다가 유네스코로부터 다른 피해국과의 공동등재를 권고 받았다. 이후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네덜란드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의 14개 단체로 구성된 국제연대위원회와 영국 런던 왕립전쟁박물관이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라는 명칭으로 지난해 등재를 재신청했다. 이 기록물들은 등재소위원회(RSC)에서 지난해 “대체불가하고 유일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일본이라는 ‘실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일본 정부는 분담금 지급 거부를 빌미로 유네스코를 압박하면서, 당사국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저지해왔다. 유네스코 자료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일본은 유네스코 전체 예산의 9.7%에 달하는 6,320만3,870달러(약 709억원)를 내 최근 탈퇴한 미국(22%)을 제외하고 1위에 올라있다. 중국이 7.9%로 뒤를 이었고, 독일(6.4%%), 프랑스(4.9%), 영국(4.5%), 브라질(3.8%) 등의 순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2%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2015년 유네스코가 중국의 난징대학살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자 분담금 지급을 연말까지 보류하며 강력 반발, 끝내 심사과정 중 관련국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몰아간 것이다. 당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이 결여됐다. 우리는 중국 측 자료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며 제도 개혁을 요구한 바 있다.

유네스코가 이처럼 정치적 싸움판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월 유네스코는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 구시가지를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이스라엘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건설하는 등 20%를 점령하고 있으며,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으로 종교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지역이다. 지난해 10월엔 또 다른 분쟁지역인 동예루살렘의 이슬람과 유대교 공동성지 관리 문제에서도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러한 유네스코의 친 팔레스타인 정책을 문제 삼아 미국과 함께 탈퇴를 선언했다. 이와 관련 영국 주간지 뉴스테이츠먼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유산이 정치적 입지를 확장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했던 국제연대위원회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에서 세부사항에 대한 이견을 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사실을 증명하는 문건의 등재를 보류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국제연대위원회는 향후 유네스코가 보류 이유로 든 ‘당사자 간 대화’에 성실하게 임하면서 등재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여성가족부(여가부) 역시 논평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 보류 권고 및 사무총장의 보류 결정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왜곡하는 어떠한 언행에도 반대한다”고 전했다. 여가부는 그동안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가 민간단체의 주도로 이뤄진 만큼 이들 및 관련부처와 긴밀히 협의하여 대응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위안부 기록물과 함께 등재 신청 목록에 올랐던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조선통신사기록물’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총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은 조선왕실에서 책봉이나 존호 수여를 위해 금 은 옥에 새긴 의례용 도장과 금동판에 책봉 내용을 새긴 금책 등이다. 조선 건국 초부터 57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작돼 왔고 시대적 변천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 받았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은 국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1907~1910년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수기 기록물, 일본 정부 기록물, 언론 기록 등 총 2,470건의 방대한 기록물이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1607~1811년 일본 막부정권 요청으로 일본에 12차례 파견된 외교사절인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기록 일체를 일컫는다. 유네스코는 1992년부터 세계사와 세계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준 자료 등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있다. 이번에 125건을 심사해 78건을 새롭게 등재해,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427건이 됐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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