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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죽은 음악가의 아내

입력
2017.11.17 14:5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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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죽음이었다. 존 레논은 비틀즈의 팬이라 주장하는 남자가 쏜 네 발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그의 아파트 바로 앞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 남편의 마지막을 지켰던 요코는 실의에 잠겨 한동안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남편의 피격을 방조했다는 소문, 심지어는 유산을 노리고 살해를 사주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레논과 요코는 공교롭게도 비틀즈가 해체하기 전 해에 결혼했다. 그 결혼이 비틀즈 해체의 이유라는 추측성 기사가 타블로이드지 1면을 장식했다. 고인의 생전을 추억하는 주변 지인들의 발언이 교묘히 편집되어 요코가 악녀라는 주장의 근거로 둔갑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만삭의 몸으로 비틀즈 스튜디오에 찾아온 요코가 누워있게 해달라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몇몇 언론은 레논이 결혼생활 내내 불행했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결혼 후 평화운동가가 된 레논은 한때 미국에서 추방될 뻔했으며 체류를 위한 소송에 몇 년을 허비했는데, 이 일이 아내로부터 이상한 정치의식을 배운 탓이라는 얘기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레논이 사망 전 5년 이상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한 사실을 두고는 요코가 그의 재능을 억눌렀다며 한탄했다. 오노 요코의 이름은 이윽고 악녀를 넘어 마녀의 대명사가 됐다.

요코를 향한 온갖 억측들은 그녀가 톱스타의 유산을 가로챘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어떤 이들은 비틀즈 해체의 원인으로 지목된 여자가 그 위대한 밴드의 저작권을 갖게 된 데에 불만을 가졌다. 또 어떤 이들은 레논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여자가 레논을 계승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요코가 레논의 물건을 경매에 내놓을 때마다 유품을 함부로 처분한다며 분노했다. 수익금을 레논이 생전 설립한 자선재단을 위해 사용했는데도 말이다.

코트니 러브 또한 남편이 죽은 뒤 심한 미움에 시달렸다. 그녀의 남편 커트 코베인은 문 잠긴 방 안에서 엽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첫 자살시도 이후 한 달이 지나서였다. 경찰은 유서가 발견된 점, 타인의 지문이나 침입흔적이 없는 점, 저항흔적이 보이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자살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뚜렷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소문이 번졌다.

어떤 전기작가는 아예 러브를 범인으로 단정짓는 책을 출간했다. 러브가 코베인을 죽였다는 주장의 근거는 그녀가 10대 시절 행실이 나빴다는 점, 가끔 친정아버지에게 대들었다는 점, 남편 사후 다른 남자와 잠시 교제했다는 점 등이었다. 어떤 것도 살인의 증거가 아니었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음모론을 진실로 믿었다. 그러나 코베인 사망 당시 러브는 치료시설에 입원해있어 집에 올 수도 없는 상태였다.

러브가 뒤집어쓴 누명도 그녀가 톱스타의 유산을 가로챘다는 가정에서 시작됐다. 어떤 이들은 불량소녀 출신 여자가 결혼 1년 만에 너바나의 저작권을 가져간 것에 분개했다. 또 어떤 이들은 러브가 코베인의 유명세를 이용했을 뿐이라며 그녀의 음악을 평가절하했다. 그녀는 남편보다 5년이나 앞서 데뷔했으며, 결혼 한참 전부터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말이다.

결혼한 사람이 사망하면 부모형제가 아닌 배우자가 우선 유산을 상속받는 이치는 자명하다. 고인은 이미 자기가 태어난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라 독립해 자기 가족을 꾸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인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경우, 결혼 기간도 짧았으므로 뒷말이 생기는 모양이다. 만일 고인이 유명한 음악가였다면 뒷말이 지나쳐 미망인에게 큰 고통이 되기도 한다. 떠난 이의 음악세계를 공유해온 팬들 중 더러는 그 음악가를 갑자기 잃은 책임을 미망인에게 묻는다. 오노 요코와 코트니 러브도 빗나간 팬심으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 너무 많은 비난을 통과해야 했다. 남은 사람을 동반자나 정당한 상속자가 아닌 죄인의 모습으로 표상하는 모습은 달갑지 않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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