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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요즘 젊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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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요즘 젊은 것들…”

입력
2018.01.03 14:1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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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종강기념으로 저희가 드릴 선물이 있어요.” 2학기 마지막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느닷없이 이런 얘기를 꺼내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종강이라고 교수에게 선물을 할 이유가 없거니와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대가성이 있는 관계에서는 커피 한 잔도 처벌을 받는 ‘살벌한’ 시국에 무슨 선물이란 말인가? 기대와 긴장이 잠시 교차하는 사이 학생이 내놓은 선물은 플라스틱으로 코팅 처리된 서류 비슷한 것이었다.

이 수업은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BBC 등 해외 저명한 언론에 보도된 영문기사를 텍스트로 삼아 지구촌의 주요 현안을 학생들과 함께 분석하고 토론하는 강의였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국내라는 좁은 안목에서 벗어나 지구촌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당면한 현안들을 폭넓게 이해하는 글로벌 시민의 자세가 필요해서다. 이번 학기 수업에서 다룬 글로벌 이슈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CNN 방송이 폭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리비아의 난민 경매 기사였다.

가난과 박해 등을 피해 아프리카 각지에서 몰려든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판 노예처럼 거래되고 있는 충격적 현실을 고발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노예노동을 통해 비용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수십 수백 명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찬 낡은 목선이나 고무보트에 의존해 지중해를 건너는 ‘죽음의 항해’에 나서야 한다.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이 항해는 100명 중 두 명 꼴로 사망자가 나올 만큼 위험천만하다. 2016년 한 해만 5,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학생들은 이 참상을 다룬 다큐 영상을 보면서 심하게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MOAS(Migrant Offshore Aid Station)라는 국제적 NGO 단체가 지중해에서 독자적 구조선을 운영하며 위험에 처한 난민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학생들이 나에게 준 선물은 수강생 전원(18명)이 참여해 MOAS에 100 유로를 기부한 영수증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물에 깜짝 놀랐다. 수업에서는 기부에 대한 얘기조차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속 깊은 생각과 행동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기부금은 할당방식이 아니라 각자 형편에 맞춰 낼 수 있는 만큼 냈다고 하니 모금방식도 지혜로웠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받아본 선물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고,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라는 감사 인사와 함께 나도 우리 수업 명의로 MOAS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선물을 받고 보니 민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교수라는 자리로 인해 사회 현실을 개탄하거나 비판할 기회는 많았지만, 정작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작은 행동이라도 한 적이 있었던가 하는 자책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날로 첨예해지고 있는 사회문제가 세대 간 갈등이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각 세대가 경험한 삶의 양식이 전혀 다르다 보니 소통이 되기 어렵고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제자들의 행동이 보여주듯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원론적이고 도덕적인 잔소리에는 질색을 하지만, 가치가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주저 없이 행동에 나서는 특성이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은 흔히 “요즘 젊은 것들”하며 혀를 차기도 하지만 적어도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태도만은 “요즘 젊은 분들”이 나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그들이 알지 못하거나 무관심했던 세상에 눈을 뜨게 하는 정보와 교육이 더욱 가치가 있다. “이 수업이 아니었다면 지중해에서 어떤 비극이 벌이지고 있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학생들이 선물을 준 이유다. 그런 기회를 갖게 된 것에 크나큰 보람을 느끼며 나도 그들에게 배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교육은 스승과 제자가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더불어 성장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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