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선택한다... 그리고 고통스런 삶은 지속된다

입력
2017.05.18 04:40
0 0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누굴 만날지, 누구와 통화할지, 밥은 어떤 걸 먹을지, 바다로 갈지 산으로 갈지, 그 사람을 용서할지 복수할지… 하루에도 수백 개의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망설이다 어렵게 결정한다. 중요한 선택을 하고 난 후에는 문득, 되묻게 된다. 과연 그 선택은 옳았을까? 우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소설을 쓰거나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현실뿐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도 수많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소설은 어차피 거짓말이니까 작가 마음대로 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이야기가 벌어질 장소를 정하고 나면 작가의 선택이 시작된다. 작가는 주인공의 모든 선택을 일일이 챙겨주어야 한다. 옷의 스타일도, 신발 사이즈도, 음식의 종류도 하나하나 골라주어야 하고 심지어 화를 낼지 웃을지도 충고해주어야 한다. 세상에 이런 하인이 따로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사춘기의 청소년이 부모에게 대드는 것처럼) 주인공이 작가의 말을 무시한 채 자기 멋대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쉽게 선택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작가의 마음대로 모든 걸 정할 수 없다. 주인공과 상의해야 하고, 만들어진 세계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상상 가능한 미래 중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짜릿하지만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소설가 보르헤스는 그런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허구에서 인간은 수많은 가능성들을 앞에 두고 하나만을 선택하며, 나머지는 지워버린다.” 보르헤스는 묻는다. 우리가 지워버린 모든 가능성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땅 밑 어딘가의 비밀 서랍에는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들이 쌓여 있으며, 거기에는 현실에서 버려진 가능성과 소설이나 이야기 속에서 버려진 가능성이 마구 뒤엉켜 있지 않을까.

인간이 이야기를 상상하고, 소설과 영화라는 방식을 발명해낸 것은 비밀 서랍에 든 수많은 가능성들이 아까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소설과 영화를 통해 가보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고, 고르지 못했던 가능성을 검토하며, 앞으로 하게 될 수많은 선택을 미리 점검한다. 허구의 가능성을 통해 우리는 폭력적인 시간을 이해해 나간다.

영화 '세일즈 맨'.
영화 '세일즈 맨'.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최근 개봉한 영화 ‘세일즈맨’(2016)의 감독 아스가르 파르하디는 ‘폭력적인 시간과 인간의 선택’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는 인간과 시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실험실 같다.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해 현재는 두 가지 길로 갈라지게 되었고, 우리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파르하디 감독은 자신의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를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추리소설 같다고 했다. 이혼을 앞둔 부부의 드라마처럼 시작한 영화는, 수많은 반전과 이야기의 골목을 거쳐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결말에 이르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판사는 딸에게 묻는다. “(이혼 때문에 엄마와 아빠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데) 결정했니, 안 했니?” 이 대사는 감독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느 쪽의 현재를 선택할지 결정했습니까?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답이 없어 더욱 어려운 문제다.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2013년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원제는 ‘Le passé’, 즉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드는 4년째 별거 중인 마리와 이혼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오랜만에 찾아간 그녀의 집에는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두 명의 딸, 곧 마리와 결혼하는 사미르, 그리고 사미르의 불만투성이 아들이 함께 살고 있다. 마리의 집은, 말하자면 과거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이다. 주방의 수도꼭지는 4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새고, 며칠 전에 칠해놓은 페인트는 마르지 않은 상태다. 덜 마른 과거가 여전히 현재에 묻는다. 아마드는 친구 앞에서 과거의 일을 후회한다. “4년 전에 내가 안 떠났더라면….” 친구는 딱 잘라 대답한다. “그럼 1년 후에 떠났을 거야. 아님 2년 후라도.”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나쁜 선택을 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좋은 선택을 하면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고,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으면 맥없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현실에서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 역시 우리가 계속해서 나쁜 선택을 하기 때문일까? 영화가 끝나고, 우리의 삶이 시작된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던졌던 질문은,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질문을 품은 채 계속 되묻는다. 과연 나의 선택은 옳았을까? 되묻지 않고 있다면, 선택에 대한 회의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다면, 우리는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김중혁 소설가·B tv ‘영화당’ 진행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