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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 속 번뜩이는 지성... 두 문학 거장의 ‘편지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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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 속 번뜩이는 지성... 두 문학 거장의 ‘편지 우정’

입력
2016.03.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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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왼쪽)와 존 쿳시.
폴 오스터(왼쪽)와 존 쿳시.

디어 존, 디어 폴

폴 오스터, 존 쿳시 지음·송은주 옮김

열린책들 발행·336쪽·1만3,800원

우정은 대체로 소년의 일이어서 노년의 곡진한 우정이란 형용모순처럼 들린다. 그 자체로 이미 인간사의 아름다움인 노년의 우정을 문학계의 두 거장이 편지교환이라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축조하는 풍경이란. 도회적이고 까탈스러우며 이지적인 미국 작가 폴 오스터와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존 쿳시. 서로의 존재와 명망만 알고 있던 두 사람은, 쿳시의 돌연한 제안을 오스터가 흔쾌히 수락하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열정적으로 편지를 우편 교환한다. 하얀 편지지는 지성과 감성의 황홀한 각축장인 동시에 내면의 조잡한 감정까지 거침없이 드러내는 진솔한 자기고백의 공간. 수시로 “벅찬 포옹을 보내”는 두 지성의 우정을 참관하는 일은 즐겁고 매혹적이다.

‘디어 존, 디어 폴’에 담긴 편지들은 세상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한다. 스포츠부터 금융위기, 중동 전쟁, 문학과 영화, 철학, 죽음과 에로티시즘, 결혼, 우정, 사랑 등 다루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유머와 흥분이 따스한 냉소 속에 번득이는 오스터와 동료 교수가 웃는 걸 본 게 딱 한번뿐이라고 진술할 정도로 과묵하고 진지한 쿳시는 좋은 조합이다. 논쟁으로부터 우정을 지키는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 경청하고 공감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기를 새삼 배우고 싶어지는 관계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쿳시는 우정이 “열애의 희미한 모사”로 잘못 생각되는 것에 반대하며 애정보다 오래 지속되기도 하는 우정의 중요성으로 첫 편지를 시작한다. 오스터는 “가장 오래 지속되는 최고의 우정은 존경에 기반을 둔 것”이라며 “우리는 어떤 사람을 그가 세상을 자기 식대로 헤쳐 나가는 방식 때문에 존경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정과 사랑은 하나인가? 쿳시는 사랑이나 정치와 달리 우정은 “보이는 그대로의 투명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오스터는 우정이 사랑의 일부라며 반대한다. “결혼은 무엇보다도 대화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그 결혼이 지속될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물론 “섹스가 개입되면 (우정이고 뭐고) 다 끝”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오스터는 스포츠에서 심미적 내러티브를 발견하며 열광하는 반면, 쿳시는 스포츠의 극단적 경쟁구조에서 윤리적 혐오를 느낀다. “패배에는 수치스러운 면이 있으므로 패배를 안기는 데에도 수치스러운 점이 있어, 상대에게 이를 삼가는 일본적인 이상”이 쿳시의 마음 한구석에는 있다. 그러나 오스터는 시시껄렁한 출판 편집자들과의 야구경기에서 “공의 궤적을 보자 도저히 못 잡을 공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단지 저 자신을 밀어붙이고 싶은, 공을 잡을 능력이 있는지 보고 싶은 단순한 욕망에서 죽을 힘을 다하고 바보같이 행복해 죽을 지경”에 이른다.

영어를 모국어로 인지하고 사용하는 미국 작가 오스터와 “아프리카에서는 사실상 자기 모국어로는 지식인이 될 수가 없다”는 남아공 작가 쿳시는 모두 영어라는 언어의 최정상에 이른 사람이지만, 사실 같으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수많은 소설가와 그들의 작품을 난도질하는 비평가 사이에 적잖이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세계 문화의 수도 뉴욕과 누가 뭘 써도 그런 가보다 하는 세계의 변방. 많은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는 세계가 기술진보 시대를 맞아 역설적으로 “상상을 이해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진단에 격렬하게 합의한다. “스스로 사물을 보는 기술, 자기 머리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기술이 바로 독서 아닙니까? 독서의 아름다움은 이야기 속으로, 다른 모든 소리들을 배제하고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저자의 음성 속으로 뛰어들 때 우리를 둘러싸는 ‘침묵’이 아닙니까?(폴 오스터)

삶의 아주 소소한 데서도 통찰을 길어 올리는 두 작가의 편지는 지성의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을 환기시킨다. 지성과 통찰이 가져다 주는 노년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디어 존, 디어 폴’과 함께 오스터의 어린 시절 회고록이자 작가의 성장기록인 ‘내면보고서’도 함께 번역, 출간됐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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