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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일 수 없는 야릇한 몸짓.. 태민, K팝의 공식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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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일 수 없는 야릇한 몸짓.. 태민, K팝의 공식을 깨다

입력
2017.11.14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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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 태민의 신곡 ‘무브’

로봇 군무, 포인트 안무 대신

우아한 손짓과 야릇한 눈빛

동작 아니라 분위기에 열광

중성 이미지로 性 경계도 넘어

노래 '무브'로 주목 받고 있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인 태민은 미국 유명 음악 전문지 빌보드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K팝의 전형성을 뛰어 넘고 싶었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노래 '무브'로 주목 받고 있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인 태민은 미국 유명 음악 전문지 빌보드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K팝의 전형성을 뛰어 넘고 싶었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의 한 대학 익명게시판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 온 '무브병' 호소글.
서울의 한 대학 익명게시판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 온 '무브병' 호소글.

‘전복죽을 야릇하게 먹고 있다’ ‘무브병’의 증세

대학생 A씨는 ‘병’에 걸려 읽어야 하는 전공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험 기간인데 대략 낭패다. 그의 증상은 일상에서 치명적이다. 도서관에 앉아 책장 넘기는 손길에도 요염을 듬뿍 담아야 해 도통 진도가 안 나간다.

국민대 서강대 서울대 등 대학교 익명 게시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무브병’이란 제목으로 최근 흔히 올라오는 글들의 유형이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태민이 지난달 낸 솔로 앨범 ‘무브’ 동명 타이틀곡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본 후 생긴 중독 증세에 대한 하소연이다. ‘무브병’은 태민의 곡명과 병(病)이 합쳐진 말로, 한 번 빠지면 그의 춤과 표정을 일상에서까지 따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온라인엔 ‘무브병’이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 SNS엔 ‘전복죽을 ‘야릇하게’ 먹고’ 있거나, 반쯤 감긴 눈으로 건조대에서 빨래를 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이 굴비 엮이듯 올라온다.

연예계는 ‘무브병’ 말기에 접어 들었다. 방송인 이국주는 태민의 ‘무브’ 춤을 따라 한 영상을 이달 초 유튜브에 올렸고, 아이돌그룹 트와이스 멤버인 모모도 최근 서울 상암동 인근에서 연 팬미팅에서 ‘무브’춤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많은 분이 ‘무브병’을 앓고 있다고 들었어요. 좋은 병이니 고치지 마시고 더 많은 분이 즐겨 주셨으면 좋겠네요, 하하하.”(태민)

온라인엔 '무브병'이 창궐했다. 방송인 이국주(사진 맨 위부터) 등 연예인을 비롯해 네티즌까지 '무브' 패러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무브' 놀이에 빠졌다. '무브병'은 국경을 초월한다. 브라질에 사는 외국 여성도 '리듬 질병을 얻었다'는 글과 함께 '무브' 패러디 영상을 올려 화제다. 각 유튜브 영상 캡처
온라인엔 '무브병'이 창궐했다. 방송인 이국주(사진 맨 위부터) 등 연예인을 비롯해 네티즌까지 '무브' 패러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무브' 놀이에 빠졌다. '무브병'은 국경을 초월한다. 브라질에 사는 외국 여성도 '리듬 질병을 얻었다'는 글과 함께 '무브' 패러디 영상을 올려 화제다. 각 유튜브 영상 캡처

‘말춤’과 달리… 이름 없는 춤의 파격

태민의 신곡이 입소문을 타게 된 데는 파격적인 춤의 영향이 크다. 태민은 ‘무브’로 K팝 아이돌 춤의 전형을 깬다. 묵직한 베이스 라인과 쓸쓸한 곡의 분위기를 살리는 건 그의 노랫말처럼 ‘우아한 손짓과 은근한 눈빛’이다.

태민의 춤엔 ‘칼군무’가 없다. 그는 로봇처럼 정확하게 대열을 맞춰 각 잡힌 춤을 추는 대신, 가볍게 어깨를 흔들고 손을 털며 리듬을 탄다. ‘무브’엔 포인트 안무도 없다. 곡 후렴구에 춤을 각인시키기 위해 작정하고 어려운 기술을 선보이거나 가사에 맞춰 작위적인 동작을 하지 않고 3분 30여 초 동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을 쓴다. 태민의 ‘무브’가 걸그룹 트와이스의 ‘TT춤’처럼 특정 춤 동작으로 이슈가 되지 않고, ‘치명적인’ ‘야릇한’ 같은 분위기로 회자되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무브’의 춤엔 쉼표가 많다. 요란한 동작이 없어 몸짓의 빈 공간을 감정적 서사가 파고 든다. 이효리가 지난 7월 낸 앨범 ‘블랙’에서 기계적인 춤을 버리고 현대 무용으로 무대를 누빈 것과 비슷한 행보다.

태민의 ‘무브’춤은 그간 유행했던 기존 남성 솔로 댄스 가수의 공격적이고 남성적인 안무와도 결이 다르다. 비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심장 박동(‘잇츠 레이닝’ㆍ2004)을 춤으로 표현한 묵직함을 드러내거나 싸이가 양다리를 쩍 벌리고 ‘말춤’(‘강남스타일’·2012)으로 호방함을 강조한 것과 비교하면 태민의 춤은 여성적이다.

태민의 춤에 대한 관심은 “틀에 갇히기 싫어하는 문화적 흐름에 따라 개인의 표현을 중요시하는 어반(Urban) 댄스의 세계적인 유행”(박준희 안무가)에서 비롯됐다. ‘브레이크 댄스’나 ‘팝핀 댄스’처럼 춤 이름에 동작이 들어가지 않고, 도시적인이란 분위기로 뭉뚱그려 자유로움을 강조한 게 특징이다. ‘무브’의 안무는 일본 여성 안무가 스가와라 코하루와가 짰다.

태민 신곡 '무브' 뮤직비디오 한 장면. 뮤직비디오 캡처
태민 신곡 '무브' 뮤직비디오 한 장면. 뮤직비디오 캡처

캣워크에서 첫 무대, 성 경계 흐린 의상

태민은 ‘무브’로 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깬다. 태민의 ‘무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젠더리스’(성 구분이 없는)다.

태민은 자주색 운동복 바지에 줄이 가느다란 여성 벨트를 매고 스카프를 허리춤에 길게 늘어뜨린 차림으로 춤을 추며 성의 경계를 흐린다. 여느 남성 아이돌과 달리 태민은 패션쇼의 캣워크에서 신곡의 첫 무대를 펼쳤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해 주류 K팝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남성 아이돌의 이례적인 도발이다.

그동안 가요계에선 걸그룹 에프엑스 멤버 엠버 등이 소년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주목 받은 적은 있지만, 여성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품은 남성 아이돌은 찾기 어려웠다. 여성 보다 남성의 무성, 즉 중성적 이미지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이다. 주류 대중 문화에서 남성 아이돌이 젠더리스로 역풍을 맞지 않고 오히려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건 무성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옅어졌다는 뜻이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를 “젠더 감수성이 문화적 화두가 되면서 가능해진 변화”라고 봤다. 한국에서 10여 년 동안 길거리 패션 사진을 찍으며 시각사회학을 연구한 마이클 허트 서울시립대 교수는 “중학생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패션에서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며 “K팝의 젠더리스 코드는 일본과 유럽 등 해외에서 더 큰 차별화를 줄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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