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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전설 ‘파판’은 어쩌다 ‘남혐 vs 여혐’의 장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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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전설 ‘파판’은 어쩌다 ‘남혐 vs 여혐’의 장이 됐나

입력
2017.09.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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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판타지14 캡처. 스퀘어에닉스 제공
파이널 판타지14 캡처. 스퀘어에닉스 제공

1987년 일본의 게임 제작사 스퀘어에닉스가 개발한 RPG(롤플레잉 게임)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는 출시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최고의 게임으로 평가된다. 작년까지 시리즈 전체(15편)를 통틀어 1억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개발국인 일본에선 ‘국민 RPG’ 대우를 받는다.

‘파판’ 시리즈 14편은 온라인 전용 RPG(MMORPG)로 출시됐다. 한국에선 2015년 8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파판 14를 두고 게임 리뷰 사이트 ‘메타크리틱’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는 등 온라인에선 “전설의 귀환”, “시리즈의 완벽한 부활” 같은 칭찬이 쏟아졌다.

이런 명작이 최근 국내에서 ‘남성혐오’ 논란으로 시끄럽다. ‘파판 14’의 국내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아이덴티티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5일 운영팀장 명의로 공식 홈페이지에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지 못 해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지난 23일로 시계를 돌려보자. 이날 ‘파판 14’ 일부 유저들은 게임 내 특정 지역을 점령하곤 시위를 벌였다. 아이덴티티가 이른바 ‘친(親) 메갈리아적’ 기조로 게임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메갈리아’는 2015년에 만들어진 여성혐오 반대 커뮤니티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 ‘여혐’ 관련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회적 목소리를 높여온 행동파 단체지만, 일각에선 “남성혐오 커뮤니티”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시위의 구체적 배경은 이렇다. 최근 게임 내에서 한 유저가 특정 이모티콘을 반복해서 쓴다는 이유로 몇몇 유저들이 여혐, 남혐 단어를 써가며 말다툼을 벌이자 아이덴티티는 소동에 연루된 유저 17명에게 ‘게임 이용 정지 3일’이란 징계를 내렸다.

파이널판타지 14 로고. 스퀘어에닉스 제공
파이널판타지 14 로고. 스퀘어에닉스 제공

같은 날, 한 게임 커뮤니티에 문제의 글이 올라왔다. 소동의 핵심 인물인 A유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징계 당일 징계에서 풀렸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일부 유저들이 ‘형평성’을 언급하며 말다툼 당시 A유저가 했던 “한남” 발언을 바탕으로 그가 메갈리아 회원이라 주장하기 시작했다.

A유저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게임 세계를 넘어 트위터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몇몇 트위터 이용자들이 “초코보(시위가 일어난 ‘파판14’의 서버)”, “메갈리안” 등의 해시태그를 실시간 트렌드에 올리며 A유저를 지원 사격했다. 아이덴티티는 24일 공식 홈페이지에 “파판 14 운영팀은 운영 정책에 따라 철저히 중립적 입장에서 대응, 운영하고 있다”는 해명 글을 올렸다.

파이널 판타지 14 공식 홈페이지 캡처
파이널 판타지 14 공식 홈페이지 캡처

그러자 이번엔 남성 파판 유저 측에서 난리가 났다. 이번 논란이 단발성 사건에서 비롯된 게 아니란 게 이유였다.

이들에 따르면, 아이덴티티가 파판을 여성 편파적으로 운영한다는 지적은 출시 초기부터 꾸준히 나왔다. 주로 남혐 발언에 대한 너그러운 징계 등이 문제가 됐다. 이번 소동은 어쩌다 갑자기 터진 게 아닌 오랜 시간 터질 날을 기다려온 시한폭탄이란 것이다.

A유저를 지지하는 유저들과 그 반대편에 선 유저들은 지난 25일 정면충돌했다. 이들은 아이디를 바꾸거나, 공개 대화창을 통하는 식으로 각자 편에 서서 여혐, 남혐 발언을 쏟아냈다. 게임 내에서 공공장소로 통하는 광장 한 편을 점령하고는 서로를 향한 증오의 말을 쉴새 없이 찍어냈다.

아이덴티티가 25일부터 이틀 동안 100명에 가까운 유저들에게 욕설, 작명 정책 위반을 이유로 이용 정지 등의 징계를 내린 끝에 논란은 일단락 됐다. ‘메갈’ 등 특정 용어를 금지어로 지정해 게임에서 쓰지 못 하게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논란에 자사의 책임도 있음을 인정하고, 담당자들에게 감봉 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향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외부세력들이 사건을 키웠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파판 유저는 “(이번 논란은) 메갈리아와 일반 유저의 싸움이 아니다. 메갈리아과 디시인사이드의 싸움”이라며 “일반 유저는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댓글을 남겼다. 논란을 촉발한 ‘23일 집회’의 참가 유저들은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서 활동하는 누리꾼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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