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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언론사 기획물에 눈길… 기사로 못다 한 전관예우의 실상 폭로

입력
2015.07.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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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비밀해제'
'전관예우 비밀해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원고는 한동안 출판사를 못 찾았다. 줄곧 책을 내던 출판사도 등을 돌렸다. 그만큼 알레고리는 손이 가지 않는 물건이다. 나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임자는 따로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세계는 냉전으로 재편되었고 ‘동물농장’은 가장 근접해 있었다. 문제는 감이었을 거다. 현장이나 심층 탐사라고도 부를 수 있지만 추동력이 약하다.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완전히 의식하면서 쓴 최초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출판사의 첫 책에 가져와 본다. 무슨 책을 만들고 있는지 완전히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모색했다. 어느 날 읽고 있던 신문을 눈앞으로 끌어당겼다.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시끄러웠다. 전관 변호사의 재산 증가 내역은 기록적이었다. ‘지난해 퇴임한 판검사 중에 절반이 로펌에 재취업했다.’ 첫 문장이었다. 전관이 대형 로펌을 매개로 다시 공직으로 돌아오는 ‘전관리턴사회’라는 말도 눈에 띄었다. 한국일보 사회부 법조팀이 마련한 전관예우, 로펌 기획은 썩은 부위에 예리한 칼을 들이미는 시도였다. 책을 내기로 했다. 우리는 일단 자리를 만들어 신문에서 못 다한 뒷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했다.

벚꽃 필 무렵이었다. 모인 곳은 서울 소재 한 지방법원의 세미나실이었다. 법조팀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떠들 수 있는 시간은 주말 아침뿐이었다. 자리를 옮길 틈도 없었다. 녹취를 위해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을 때야 비로소 나는 방 안에 모인 얼굴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법조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되 최대한 자세히, 구체적으로 실상을 밝히기로 했다. 처음엔 다들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발언할 때마다 단독 컷과 그 사람을 중심으로 옆자리까지 나오는 사진을 찍었다. 집담회 형식이었다. 가벼운 느낌이 잘 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각자의 출입처에서 벌어지는 전관 이야기에 너나없이 빠져들었다.

며칠 뒤 전화가 걸려왔다. 녹취 때문이었다. 녹음기 하나와 휴대폰 둘을 준비했지만, 두 개는 녹음이 좋지 않았다. 하나는 집음이 약해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고, 다른 하나는 중간에 배터리가 꺼져버렸다. 마지막 남은 휴대폰이 세 시간 분량의 내용을 건사했다. 본문 편집이 거의 끝나갈 즈음 몇 통의 전화가 급하게 걸려왔다. 자신의 다소 과격한(?) 발언을 누그러뜨리고 싶다는 뒤늦은 바람이었다. 책을 읽을 판검사의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아니 거의 동시에 한국일보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부실 경영을 일삼은 당시 사주와 기자들의 전면전이었다. 용역들이 편집국 문을 막아 섰다. 그해 여름 책의 저자들은 신문을 만들지 못하고 다른 신문에 글을 기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사태는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한 지독한 예감이었다. 북콤마는 그 해가 가기 전 돌아온 기자들과 책을 한 권 더 출간했고, 사법부 판결에 대한 중요한 책들을 연속 기획했다. 밑돌이 되어준 저자의 호의에 손을 포개본다.

임후성·북콤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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