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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사민당 ‘슐츠 효과’ 사그라들어 결국 ‘메르켈의 선거’가 될 듯

입력
2017.09.0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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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론 고성장ㆍ저실업에

밖으론 ‘독일=유럽 맏형’ 굳혀

메르켈 12년 동안 안정감 과시

대세로 떠오르던 슐츠는 능력 의문

“친기업 아니냐” 의심도 받아

극우정당 AfD도 힘 못쓸 듯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지지자들이 지난 29일 옛 동독지역 작센안할트주 비터펠트볼펜에서 열린 선거유세 현장에서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비터펠트볼펜=EPA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지지자들이 지난 29일 옛 동독지역 작센안할트주 비터펠트볼펜에서 열린 선거유세 현장에서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비터펠트볼펜=EPA 연합뉴스

“고민할 게 없어요. 메르켈이 내 표를 받을 겁니다.”

연령ㆍ수입ㆍ교육ㆍ결혼 상황 등 모든 면에서 독일 평균의 인구구성을 지닌 독일 중남부 소도시 하슬로흐. 9월 24일 총선거를 한 달 앞두고 이 도시를 찾은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주민 앙겔리카 슈나이데(46)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우린 (그의 통치에) 불만을 품을 수가 없어요. 부동산 담보대출도 대부분 갚았고, 남편의 직업은 안정적이고, 애들도 공부를 하죠. 비록 우리가 한 푼 한 푼 아끼는 형편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총선은 메르켈 총리의 12년 통치를 승인하느냐 마느냐로 귀결된다. 올해 초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 의장이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출사표를 던지면서 야당 사회민주당(SPD)이 일시적으로 ‘슐츠 효과’를 누리기도 했지만, 차별성을 부각하는 데 실패하면서 총선은 ‘메르켈 선거’로 회귀했다. 내치는 고성장과 저실업으로 안정됐고 국제사회에서도 독일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졌다. 상대적 불평등과 이민자 문제 등이 변수로 남아 있지만 메르켈 정권을 흔들 결정타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내외에서 절대적인 안정감

하슬로흐에 거주하는 은퇴한 기업인 울라 코프는 메르켈 총리를 지지하는 핵심 이유로 ‘안정감’을 지목했다. “메르켈은 차분하다. 절대 성급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 프랑스와도 긴밀하고, 영국에도 잘 대응했다. 트럼프가 모든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둘 정도로 똑똑하다. 그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도널드 트럼프, 레지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등 제멋대로인 남성 ‘스트롱맨’들이 국제질서의 판을 흔드는 시기에 함부르크에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관한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EU)의 맹주’이자 ‘자유 세계의 새 지도자’로서 전후 세계질서의 기둥 역할을 자임했다.

내치에서도 메르켈의 안정감은 빛을 발했다. 메르켈은 집권 내내 점진적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보수 기독민주당(CDU)을 범중도 실용주의 정당으로 변화시켰다. 2009년까지만 해도 확실한 친원전론자였던 메르켈 총리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를 계기로 국민 불안이 높아지자 탈원전으로 돌아섰다. 올해 4월에는 부모를 위한 복지지원을 확대하면서 ‘아버지는 일하고 어머니는 집을 지키는’ 보수 기독교 가족관념을 깨고, 남성의 육아와 여성의 사회진출을 지지하는 정책을 내놨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지난 6월 30일 연방의회에서 동성 결혼 허용 법안이 통과된 것을 메르켈식 실용주의의 결정적 장면으로 꼽았다. 메르켈 본인은 끝끝내 동성 결혼 허용에 동의하지 않겠다며 반대표를 던졌지만 기민당 의원들에게는 “신념대로 투표하라”며 사실상 통과를 방조했다. 이는 총선 경쟁자인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이 9월 총선에서 결혼 평등 문제를 쟁점화하지 못하게 선수를 친 셈이 됐다. 가디언은 “동독 출신 메르켈 총리는 서독 기민당의 오랜 보수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중도좌파를 착실하게 공략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자 마르틴 슐츠가 지난 29일 라이프치히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라이프치히=EPA 연합뉴스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자 마르틴 슐츠가 지난 29일 라이프치히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라이프치히=EPA 연합뉴스

‘사회 정의’ 내세웠지만 무기력한 슐츠

메르켈 총리의 ‘중도 공세’에 사민당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올 초 유럽의회 의장까지 지낸 경력으로 독일 국내 정가에는 생소한 마르틴 슐츠가 사민당의 신임 대표에 선출되자 사민당은 일시적인 ‘새 얼굴 효과’를 누렸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한 유권자는 가디언에 “그의 인기 절정이 너무 일찍 왔다”라며 “그의 구호(더 많은 사회 정의)가 실제로 메르켈의 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슐츠의 구호인 ‘사회 정의’는 독일이 경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슐츠가 지적한 대로 독일의 잘 짜인 복지제도가 절대적 빈곤 문제는 해결했지만 상대적 빈부 격차는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탄광 산업이 주력이었던 도시 겔젠키르헨은 연방 평균 실업률 6%보다 월등히 높은 14.7%가 실업 상태다. 이 도시 주민인 은퇴한 간호사 도리스(71)는 “발레 공연은 물론 영화 티켓값 10유로도 지불할 수 없다. 가장 힘든 건 손주들에게 선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사민당은 분명 불평등 해소 정책만큼은 기민당보다 신뢰를 받는 정당이다. 그러나 구호와는 별개로 슐츠와 사민당이 실제 집권해 ‘사회 정의’를 구현할 적임 정당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때 친시장적 ‘하르츠 개혁’을 추진한 ‘원죄’가 아직도 사민당에 남아 있다. 좌파 일각에선 슐츠도 친기업주의자가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선거 기간 독일 자동차업계의 담합과 정경유착 의혹이 언론에 집중 보도됐지만 슐츠는 이상할 정도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유럽회의주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총리후보 중 한 명인 알리체 바이델이 지난 28일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유럽회의주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총리후보 중 한 명인 알리체 바이델이 지난 28일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생명력 잃은 AfD의 ‘반이민 의제’

원내 거대 양당의 위치는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자유민주당(FDP)ㆍ녹색당ㆍ좌파당ㆍ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소수정당은 제3당 지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기민당과 사민당 모두 단독 과반은 어렵기에 제3당은 연정 파트너 1순위다. 기민당과 자민당의 보수 연정은 메르켈 집권 2기에도 실현된 바 있는 유서 깊은 연정이다. 사민당 대신 자민당이 연정 파트너가 될 경우 메르켈 4기는 3기보다 우파적인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

기민당이 대연정을 피하기 위해 녹색당까지 끌어들여 흑(기민당)ㆍ황(자민당)ㆍ녹 연정,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는데, 이 경우 자민당과 녹색당 중 3위를 차지하는 정당이 내각 지분 협상을 주도할 수 있다. 나머지 두 정당인 좌파당과 AfD는 훨씬 전망이 어둡다. 두 정당 모두 기민당에서 연정 가능성을 배제했으며, 노선갈등 내분을 봉합하기 위해 총리 후보를 둘씩 내세우면서 지지세를 제대로 규합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유럽회의주의와 반이민 정책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킨 AfD의 지지율은 잠재하는 ‘반이민’ 여론의 가늠자가 될 수 있다. 2016년 초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과 크리스마스 직전 베를린 트럭 테러 사건 등은 그 해 내내 메르켈 정권을 괴롭혔으며, 기민당과 연합한 바이에른주 지역정당인 기독사회당(CSU) 사이 마찰마저 불렀다.

그러나 실용주의자답게 메르켈 총리는 난민 장벽을 높이고 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는 즉각 추방하는 등 발 빠르게 문제점을 보완해 여론을 달랬다.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흔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가 흩어지던 유럽의 결속을 강화하면서 유럽회의주의의 힘은 줄어들었다. 네덜란드 자유당과 프랑스 국민전선 등 비슷한 반유럽주의 정당의 성과가 미미했던 것도 AfD에는 부정적인 요소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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