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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창 관리, 수액 주사... 무면허 의료에 맡겨진 요양원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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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창 관리, 수액 주사... 무면허 의료에 맡겨진 요양원 노인들

입력
2018.03.09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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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입소 13만ㆍ방문요양 19만

보호사 52%가 “의료행위 했다”

의료법상 불법이지만 오랜 관행

요양원 등에서 의사나 간호사 대신 자격이 없는 요양보호사가 의료행위를 하는 관행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요양원 등에서 의사나 간호사 대신 자격이 없는 요양보호사가 의료행위를 하는 관행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요양보호사 김윤정(가명ㆍ59)씨는 지난해 사망한 85세 여성 장기요양보험 2등급 수급자에게 재가(在家)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며 가래 흡인(석션)과 욕창 관리, 관장, 산소호흡기 조작까지 의사나 간호사가 해야 할 의료행위를 도맡아 했다. 의료인이 아닌 요양보호사가 이런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이다. 김씨는 “수급자의 욕창이 심해져 병원으로 모시고 가자고 제안했지만 수급자의 보호자인 남편 분이 ‘어차피 마지막 가는 길이라 뾰족한 수가 없다, 지금 병원에 가봤자 고생만 한다’며 부탁을 해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 경력 8년의 김씨는 과거 요양시설(요양원)에서 일할 때 석션 같은 의료행위를 배웠다고 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돌봄시설인 요양원에 맡겨지거나 집에서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는 32만여명의 노인들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최근 대구의 한 요양원에서 불법 의료행위로 노인 환자가 사망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장기요양보험 수급 노인에 대한 의료행위를 의료인이 아닌 요양보호사가 대신 하는 오랜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8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전국의 요양원은 총 3,286곳, 이곳에 입소한 노인들은 13만1,043명에 달한다. 요양원의 공식 의료 책임자는 외부에서 요양원을 들러 환자를 진찰하는 촉탁의와, 노인 입소자 25명당 1명씩 고용해야 하는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다. 하지만 촉탁의는 요양원 전속이 아니어서 한 달에 두 번 요양원을 들러 노인들을 살피는 게 전부다. 간호인력 역시 일손이 부족하고 특히 야간에는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료행위 강요 받는 요양보호사

의사ㆍ간호사 인력 절대 부족해

울며 겨자 먹기식 강요당하거나

보호자 “병원 가 봤자…” 부탁도

요양보호사들도 책임을 추궁 당할 수 있어 꺼리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의료행위를 강요 당한다. 이처럼 의사와 간호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김윤정씨 사례처럼 보호자들도 요양보호사의 의료행위를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행위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만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요양보호사 양성 표준교재’는 ‘(요양보호사는)맥박, 호흡, 체온, 혈압 측정, 석션, 위관영양, 관장, 도뇨, 욕창관리 및 투약 등을 포함하는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인 식사 보조와 옷 갈아 입히기, 씻기기 등 돌봄 서비스가 요양 보호사의 역할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무시되기 일쑤다. 2013년 서울시의 ‘서울시 요양보호사 노동실태와 개선방안’에 실린 요양보호사 1,000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재가 요양보호사의 31.1%, 시설 요양보호사의 51.5%가 의료행위를 한다고 답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요양보호사 노동 인권 개선 정책권고’에도 시설 요양보호사의 56.4%가 관장을 했다고 답했고, 50.9%와 21.1%는 각각 석션과 드레싱(상처나 외상 부위 소독) 등 의료 행위를 했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5.4%는 비교적 고난도 의료행위인 배뇨관 삽입까지 해봤다고 밝혔다.

이런 불법 의료행위는 공립 시설에서는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민간 시설에서는 여전히 빈번하다. 전직 요양보호사 박미희(가명ㆍ65)씨는 “중환자를 돌볼 때는 관장이나 석션은 기본이고, 도뇨관(소변 배출용 관) 삽입과 제거도 예사로 했다”면서 “이런 의료행위는 방문 간호사에게 배우기도 하지만, 대체로 경험과 감에 의지해 한다”고 말했다.

1, 2 등급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재가 요양서비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간호사가 방문해 수급자에게 필요한 의료행위를 해주는 방문간호 서비스가 있지만, 방문간호 30분이 방문요양 3시간과 맞먹는 비용이어서 보호자 대다수는 노인의 식사도 돕고 기저귀도 갈아주는 방문요양을 선호한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방문요양 이용자는 19만8,935명이지만 방문간호 이용자는 5% 수준인 1만203명에 그쳤다.

김호중 노인복지중앙회 본부장은 “요양원에서 무면허 의료행위는 이미 보편화돼 있다“며 “정부가 정해준 인력 기준 상 요양보호사가 의료행위를 맡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박대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사무국장 역시 “요양보호 현장에서는 투약이나 혈압ㆍ맥박 확인, 석션 등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의료행위가 요양보호사에 의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2013년 김포의 한 요양원 노동조합이 단체 교섭에서 ‘요양보호사에게 의료행위를 시키지 말라’는 요구를 내 걸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고 부르는 불법의료행위

콧줄ㆍ수액 등 잘못돼 사망사고도

“보호사도 교육받게 법 개정을”

“방문간호 의무화” 의견 엇갈려

이런 요양보호사의 의료행위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전직 직원의 고발로 경찰 수사로까지 이어진 대구 모 요양원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요양원에서 일했던 간호조무사 등은 “2015년 요양보호사 등 비의료인 직원이 경관식용 콧줄(L-TUBE)을 환자의 식도가 아닌 기도에 잘못 삽입해 음식물 역류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 2016년에는 심장 질환 환자에게 수액을 잘못 주사해 숨지는 일이 있었다”고 경찰에 고발해 현재 대구 서부경찰서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요양원 측은 현재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어 수사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윤종률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석션과 욕창, 관장 등을 실시하면 흡인성 폐렴이나 감염 악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소한 의료행위에 의한 작은 사고는 더 자주 일어난다. 서울의 한 구립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최은희(가명ㆍ59)씨는 이달 초 환자에게 투약을 하는 과정에서 양이 적은 점심 약과 양이 많은 저녁 약을 반대로 줬다가 시말서를 썼다. 최씨의 동료는 “경력이 짧은 요양보호사들은 이런 실수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실제 사건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기요양연구팀장은 “장기요양 서비스에서 일어나는 불법 의료행위 사고는 만성질환이 많은 노인의 특성상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고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조용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안을 두고는 전문가들의 입장이 엇갈린다. 서영준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우선 간호사 확충이 돼야 하지만, 요양보호사가 간단한 의료행위는 어느 정도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일본은 지난 2012년 법 개정을 통해 의료인이 아닌 개호복지사(우리의 요양보호사)가 석션과 경관 영양식 공급 등 일부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허용했다. 반면 이윤경 팀장은 “요양보호사 의료행위의 양성화는 위험할 수 있다”면서 “비싸다고 생각해서 꺼리는 방문간호를 의무적으로 활용하게 하는 식으로 제도를 정착시켜야 간호 인력 유입 등도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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