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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커 “유럽 순풍 탔다… 영국은 브렉시트 후회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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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커 “유럽 순풍 탔다… 영국은 브렉시트 후회할 것”

입력
2017.09.1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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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회의주의 약체화에 낙관 가득

‘다중속도 유럽 통합론’ 비판하며 “솅겐ㆍ유로존 확대”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13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에서 유럽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AP 연합뉴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13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에서 유럽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AP 연합뉴스

직위상 ‘유럽 대통령’인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임기 세번째 국정연설에서 “유럽이 다시 순풍을 받고 있다”며 “영국은 EU 탈퇴(브렉시트)를 후회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연설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충격과 뒤이어 들불처럼 번지던 유럽회의주의에 직면한 지난해에 비하면 훨씬 대담한 모습이다. 융커 위원장은 집행위원장과 상임의장으로 이원화된 집행부 최고 지위의 통합, 유로존ㆍ솅겐지역 확대 등 ‘단일 속도’ 유럽 통합을 강조하는 개혁안을 잔여 임기 2년의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13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의원들 앞에서 영어ㆍ프랑스어ㆍ독일어 등 3개국어로 연설한 융커 위원장은 “영국은 유럽을 떠난 것을 후회할 것”이라면서 “브렉시트 협상이 끝나는 2019년 3월 영국이 떠난 후 EU의 미래를 루마니아에서 열릴 특별 정상회의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9월 국정연설에서는 유럽이 분열의 위기에 빠졌다며 단결을 호소한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네덜란드 총선과 프랑스 대선ㆍ총선에서 극우진영이 꺾이고 독일도 친유럽 정권의 연장이 확실시되는 만큼 EU가 분열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낙관하고 있는 셈이다.

융커 위원장이 2019년 3월 논의를 목표로 제시한 개혁안도 ‘유럽 합중국’의 통합성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연초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논의된 ‘다중 속도 유럽 방안’을 정면 반박하는 듯한 솅겐ㆍ유로존 확대 제안이 눈에 띈다. 융커 위원장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빠르게 솅겐 체제(역내 자유이동 체제)로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동유럽에서 유로존에 가입하기 어려운 국가들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EU 내 서유럽 국가들은 유로존 유지를 위해 동유럽에 막대한 비용을 지원하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 왔으며, 이 비용이 영국의 EU 탈퇴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 때문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은 서유럽과 동유럽의 발전 속도가 다름을 인정하자는 ‘다중 속도 유럽’을 새 청사진으로 제시했으며 융커 위원장도 이에 동참한 바 있었다. 외교전문 연구소 독일외교위원회의 다니엘라 슈바르처 연구소장은 독일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중 속도 제안에 반대하고 구체적인 정책 차원에서 통합을 강조한 점은 인상적”이라며 융커 위원장이 서유럽 지도자에 맞서 중동부 유럽의 손을 들어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13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연설을 듣고 있는 유럽의회 의원들. 스트라스부르=AP 연합뉴스
13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연설을 듣고 있는 유럽의회 의원들. 스트라스부르=AP 연합뉴스

융커 위원장은 대신 ‘유럽 민주주의’는 서유럽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 사법개혁으로 EU 주축과 갈등을 빚고 있는 폴란드를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유럽사법재판소(ECJ)의 결정이 모두의 존중을 받아야 한다”며 “유럽재판소와 각국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은 시민권 침해”라고 사실상 우회적인 비판을 가했다. 또 만년 EU회원국 후보인 터키에는 “언론인을 석방하지 않으면 당분간 터키의 EU 가입은 어려울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나치게 분권화된 EU 집행부의 통합성을 강화하고 위상을 높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EU의 행정부 수장은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하는 EU 정상회의 상임의장(현재 도날트 투스크 의장이 담당)과 집행위원장으로 이원화돼 있는데 융커 위원장은 이를 하나의 직위로 합치자고 제안했다. 또 EU 재무장관회의인 유로그룹이 맡던 역할을 집행위 부위원장에게 맡겨 유로존의 경제정책을 총괄케 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유럽에서 그간 2009년 유로존 위기와 같은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해결책으로 논의됐던 ‘유로존 단일 정부’를 집행위 아래서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폴리티코유럽은 융커의 주장이 유럽이사회(EU 정상회의)-집행위원회-유로그룹(EU 재무장관회의)-유럽의회-유럽중앙은행 등 무려 5개 수장급 기구가 병렬로 늘어선 EU의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융커 위원장의 대담한 “통합개혁” 선언에 유럽 각국의 수장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변인실을 통해 “우리의 ‘보호하는 유럽’ 제안과 겹치는 바가 있다”라며 화답했고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대체로 독일의 유럽 구상과 부합한다”라고 논평했다.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도 동서 유럽을 통합하려는 융커 위원장의 의지를 칭찬하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남겼다.

반면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융커 위원장의 제안대로라면) EU 내 새로운 조약 체결이 필요할 텐데 그런 조약 개정을 논하기는 너무 이르다”라고 평했고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도 “낭만적이지만 실질성이 결여돼 있다”라고 말했다. 크리스티안 케른 오스트리아 총리는 “동유럽 노동자가 저임금 상태로 서유럽의 일자리를 가져가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유로존 확대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의 입장도 엇갈렸다. 독립 싱크탱크 오픈유럽의 피터 클레페 브뤼셀지부장은 DPA통신에 “융커의 구상은 연방주의자의 몽상”이라며 유럽 국가들의 다양한 반발에 직면하게 돼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반면 영국 보수당의 전 외교정책 조언가였던 가번 월셔는 미국 CNN 기고에서 “융커가 브렉시트의 위기를 빌미 삼아 유럽의 통합을 더욱 강화하는 기회로 만들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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